테마 : 자살

읽은 책 : 구사카 요코의 탄생과 사망

 

일본의 구사카 요코라는 작가의 자서전입니다. 유서라고 할 수도 있겠고 세상에 남기는 편지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자신이 쓴 모든 글을 매장시키고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하고있습니다. 작가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독 이 시기 일본작가들의 자살이 연이어 지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누군가 자살의 유행을 선도하기라도 했던걸까요? 그녀의 삶을 주욱 읽어보면 죽어야할 이유가 곳곳에 보입니다. 문학에 재능이 없다고 했습니다. 죽어야죠. 연인에게 버림 받았다고 합니다. 죽어야죠.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죽음을 선택하는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구사카 요코가 쓴 소설 <도미노의 알림>이라는 작품이 아쿠타가와 상 최종후보에 올라갑니다. 이것만 보면 재능이 아주 없던건 아닌거 같아요. 별 생각 없이 써왔고 쓴다는 것에 아무런 이론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그저 쓰고 싶은걸 써서 그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면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후에 주목 받지 못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죠. 운도 따르지 않습니다. 연재 도중에 잡지가 폐간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아예 재능이 없었더라면 적당히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도 애매하게 재능이 있었기에 흔들리고 좌절하여 죽음으로까지 갈수 있었던게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 <무명작가의 일기>라는 일본 소설을 읽었습니다. 주인공은 정말로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무명작가였습니다. 정말로 재능이 없으면 사람은 초탈해집니다.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거니까요. 그는 재능이 있는 다른 작가들을 심하게 질투하며 자신을 갉아먹기도 했지만 나중에서는 초탈해집니다. 문학상이니 출판이니 하는 것에 대해 부질없음을 깨닫고 비웃을 수 있는 여유마저 생깁니다. 구사카 요코가 계속해서 문학에 도전한 것은 아쿠타가와 상의 최종 후보까지 들어갔던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 또한 그 경험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자살은 참으로 위대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을 포기하고 계속 살아갔더라면 어땠을까요? 자신의 과거가 혐오스럽거나 불명예스럽게 여기며 평생을 살아야 했을겁니다. 모든게 끝장이죠. 책은 팔리지 않았고 연재되던 잡지는 폐간되어 돈 한푼 받지 못했어요. 좋은 추억으로 남길거라면 애초에 도전하지를 말았어야죠. 작가로써 확실하게 실패한겁니다. 그것만큼 한심한 인생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아쿠타가와 상의 최종후보까지 올라갔었던 일은 이미 과거가 되었어요.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누구나 잘 나가던 한때가 있어요. 언제까지나 잘 나갔던 시절을 떠벌리고 다는건 추한 어른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1등만 기억합니다. 성공가도만 주구장창 달려도 모자를 판인데 입상도 못한 최종후보따위를 기억하는 인간은 없을겁니다. 어쩌면 실패한 경험을 쌓아올려서 더 좋은 결과를 미래에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죽어버렸죠. 역사 속의 일이 되어버렸고 그런 미래는 이제 없는겁니다. 인생은 휙 지나가버리고 사라지는것이지 쌓아나가서 미래를 만드는게 아닙니다. 뻔뻔하게 계속 살아있었더라면 그저그런 무명작가에 불과했지 이렇게 한국에까지 책이 나와 소개되는 작가로 남을 수 없었을겁니다. 자살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저도 제 삶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세이브 데이터를 모두 날려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자격지심에 몰려서 확 그냥 자살해버리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그런 생각 말이죠. 근데 저는 너무 아플 것 같아서 못하겠더라구요. 대한민국에 인구가 5천만명이라는데 저 하나쯤 살아간다고 해서 뭐 크게 민폐끼치는 일도 아닐겁니다.

 

세상에는 죽어야할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건 언제나 소수예요. 다수는 그저 이끌려갈 뿐이죠.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더라도 무리의 우두머리는 단 한 명입니다. 서열에서 완전히 밀린 개체들은 무리에서 떨어져나가 혼자서 살아가죠. 완전히 도태된 것이고 자손을 남길 수도 없겠죠. 그래도 뻔뻔하게 살아간다는게 참 우습지 않습니까. 그런점에서 저는 사마귀의 생존 전략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암컷 사마귀는 교미를 시도해오는 수컷의 머리를 뜯어서 먹어치우죠. 수컷도 교미를 시도하면 자신이 죽는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영리하게 먹이로 시선을 돌리고 살아남는 수컷도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마는 개체는 멍청하고 쓸모없으니 죽어도 그만이겠죠.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히 변치않은 자연의 진리니까요. 장애인마저 보호하려는 현대의 인간사회가 오히려 저는 너무 기형적인 것인게 아닐까합니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도 장애인을 두둔하기보다는 제거하자고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어느 시 한 구절 떠오르네요.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핵심을 찌르는 말입니다. 스포츠 종목 '컬링'에서는 패배가 명확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것도 비매너로 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합니다. 가야할 때를 분명히 알고 떠나간 일본의 문인들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닐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