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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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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라는 말이 어떤 의미일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그건 아마 우리 시대의 수많은 예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할 테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사실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는 다른 수많은 개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일 테다. 물론 이것은 미술 자체를 해체하려는 것은 아니며, 단지 우리가 막연하게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해보도록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과거의 산물들 중 일부를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단절시켜 미술관에 위치시키는 것이, 얼마나 당시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고 오직 현대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는지 같은 것이 있다. 어쩌면 미래에는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이동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현대성의 의례로서 받아들여지며 도로에 자동으로 돌아다니는 차들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실제로, 근대에 형성된 미술의 개념은 어떤 의미에서 종교를 대체하고 있었다. 모든 가치관으로부터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으며 합리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예술과 그 매개자인 예술가는 일종의 세속적 종교였으며, 종교적 가치관이 허물어짐에 따라 점차 힘을 얻으며 현재의 수준에 도달했다. 예술적 모더니즘의 계보는 그러나 실패했고, 형이상학적 언어로 보편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은 표현주의는 이를 표현하고 있는 미술이 단지 "캔버스 위의 물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이게 되었고, 예술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아방가르드와 다다주의는 장 콕토의 <퍼레이드>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혼합된 예술 대신 할리우드와 TV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중예술에 완전히 패배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 모든 세부적인 가지들을 잃고 오직 신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현대의 신학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이것은>은 이 우리에게 익숙한 미술이라는 것이 현대의 미술 유통 체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미술과 미술관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만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현대의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보는 시간은 미술관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내부의 카페에 가거나, 기념품점에서 뭔가를 사는 시간보다 더 짧다. 이것이 미술 유통 체계에서 미술이 비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그런 체계와 완전히 독립적인 미술이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어떻게 적당히 저렴한 가격에 '분위기'를 판매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관계에서 커피 자체는 분명 어느 정도 중요도를 갖고 있기는 하겠지만, 핵심은 아니다. (개인적인 감상에 적는 개인적인 잡설-스타벅스는 이제 슬슬 한국에서도 '커피천국'이 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지만, 이 책은 그렇기에 미술은 허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미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싶을 뿐이다. 이 모든 계보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순수예술이라는 기획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의 디자인, 철학, 그리고 온갖 대중적인 요소에 이따금 존재감을 드러낸다. (흥미롭게도 그것은 서브컬쳐의 존재감에 가깝지만.) 저자는 우리에게 이 책을 익숙한 미술 교과서나 다른 책들과 함께 일종의 보조재 역할로 읽기를 권한다. 대안적 시각은 대안적일 뿐,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할 테다. 하지만 이런 점을 전제로 읽어보기에는 확실히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