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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어쩌면 위치 없는(displacement) 이들로부터 올 것이다.


구르나의 소설을 다 읽고 나면 항상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인다. 그가 써내려간 작품들에는 일종의 '부드러움'이 스며들어있고, 나는 그의 작품에서 마치 '결'처럼 흘러내리는 이 부드러움을 좋아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부드러움은 내 감상만으로는 절대 그려볼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말 너머에 있는 무언가이기에, 나는 그걸 말의 형태로는 평생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종종 이와 비슷한 평을 듣는 작품을 볼 때마다 그것들을 읽었을 사람들에게 전해진 무언가를 상상해본다. 뭐, 이것들은 사실 작품 자체와는 그다지 상관 없는 이야기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바닷가에서』는 두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가 작품에서 가장 강하게 만날 목소리는 살레 오마르라는 노인의 것인데, 그는 늘그막이 고국 잔지바르를 떠나온 난민이다. 작품의 첫 단락에서 그는 티켓팔이의 조언에 따라 영어를 못하는 척 하는데, 그가 침묵하는 상황은 그를 자꾸만 낯선 곳으로 밀어넣는다. 낯설고도 불가해한 곳. 그가 살아온 이전의 삶의 아이러니가 밀어놓은 머나먼 곳, 영국에서.


우리는 그가 영어를 못하는 척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는 걸 지켜보았듯, 그가 기억 저편에 숨겨놓은 이야기들을 조금씩, 아주 천천히 마주할 것이다. 그가 떠나온 고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하나씩 알아가야 할 것이다.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그는 하나씩 하나씩 훌훌 풀어놓을 것이다. 중간에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담소처럼 그 긴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그 단계는 너무 멀고 험해서,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한다. 소설은 대부분 살레 오마르와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마일 라티프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들의 삶은 복잡미묘하게 얽혀있는 것이어서, 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마주치고 또 마칠 때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고국을 떠나온 난민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나는 이들 대부분이 난민이다. 아프리카와 유럽 곳곳에서, 위치 없는 이들로부터 수많은 이야기들이 뒤엉키며, 이야기는 이어진다. 바로 여기, 바닷가에서. 바닷가에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일종의 항로와도 같다. 실제로 작중에선 인도양에서 동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류, '무심'이 매우 중요하게 언급되는데, 이 무심을 타고 남아시아 등지에서 찾아온 상인들의 서사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르나 작품 대부분에서 이러한 '난민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겪고 있는 것은 (내 표현대로 바꿔보자면) 일종의 '뱃사람의 실존'이다. 정착할 곳 없는 그들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항상 떠나있는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 구르나가 그려내는 인물들의 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고, 그렇기에 아무것도 아닌 곳으로 떠나며, 거기에서 비로소 '그후의 삶'이란 것을 찾아낸다.


한편 『바닷가에서』, 우리는 '이야기'에 대한 일종의 리스펙, 내지는 헌사를 볼 수 있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필경사 바틀비의 이야기. 아랍인들을 잇는 공통 서사로 언급되는 천일야화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는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안식을 주는 쿠란 속의 이야기들. 그들에겐 이야기가 필요하다. 작품이 끊이지 않는 그들의 대화로 이루어지듯, 그들은 이야기를 통해 '하나'의 의식을 형성한다. 여기서 이야기란 단순히 '문학'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바틀비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소설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무함마드와 예수와 오직 한 명뿐인 위대한 그분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 가장 밑바닥에서 그들 스스로를 구원케한다. 그들에게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실재로써, 하나의 삶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과연 내가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사랑한다. 이 소설이 또 다른 이야기를 계속해서 암시하고, 그들의 삶이 이어졌고, 이어지고, 이어질 것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가 여기, 바닷가에 정착할 때, 소설은 끝이 난다. 그러나 여기 어딘가에서 어느 누군가는 또 끊임없이 바다를 떠돌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것이고, 나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다. 그의 이야기 또한.


하지만 나는 아마 오래도록 이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