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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포문학을 재밌게 보고 있는 중이라 이쪽 관련해서 문학 이론적인 내용도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환상문학 서설>을 읽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 공포문학은 환상문학의 하위 장르이긴 하지만 아무튼. 사실 좀 만만한 책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빡센 이론서적이었다. 덕분에 이해 못한 내용이 좀 많은 듯... 그래도 인상 깊게 읽은 만큼,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들로다가 조금은 자세하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서설>은 환상장르를 정의하고, 인접장르와 비교하며, 환상장르의 표현상의 특징과 주제상의 특징을 정리하는 책이었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저자는 환상문학을 자연과 초자연 사이에서 망설이는 이야기라고 정의한다. 많은 환상 문학은 공통적인 서사구조를 따라 펼쳐진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인물들은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이 사건이 자연법칙을 따라 해석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개입한 일인지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서설>은 바로 이런 혼란을 '환상적인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런 정의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독자의 망설임이다. 독자는 이야기에 몰입해서 인물들과 함께 자연적 해석과 초자연적 해석 사이의 망설임을 경험해야 한다. 둘째는 독자와 등장인물의 동일시이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특히 화자)는 독자의 대리인으로서 독자에게 망설임을 전달해야 한다. 마지막은 이야기 속 기이한 사건을 시적인 표현이나 알레고리고 해석하지 않도록 독자의 태도를 통제하는 것이다. 독자가 기이한 사건을 그저 시적인 언어표현으로 여기거나 다른 의도를 가진 알레고리로 이해한다면, 망설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짜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니까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라면 이야기 속 사건이 자연법칙으로 설명되는 '현실'인지, 아니면 '초자연적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기 마련이다. 그런 판단을 내리는 순간, 망설임은 사라지며 환상문학은 두 가지 인접 장르로 구분된다. 



첫째는 '기이장르'로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작품 마지막에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케이스이다. 저자는 기이장르를 또다시 환상-기이 장르와 순수 기이장르로 구분한다. 이 구분은 합리적 설명의 그럴듯함을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환상-기이 장르에서는 초자연적 현상들이 꿈, 광기, 환각제 등의 산물로 밝혀지거나, 우연, 속임수, 환영 등에 의한 사건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너무 작위적이어서 차라리 진짜 환상이라고 믿는 게 나아 보일 때도 있다. 이렇듯 환상-기이 장르는 환상적인 것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기이장르의 영역으로 들어간 경우로 여겨진다. 반대로 순수 기이장르에서는 사건을 이성의 법칙으로 아주 그럴싸하게 설명해 낸다. 그저 그 사건이 예사롭지 않고 너무나 괴기스럽기 때문에 환상적인 감성을 획득하는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포의 <어셔가의 몰락>이 있다. 



둘째는 '경이장르'로 초자연적인 존재를 인정하고 사건을 합리화하지 않은 채로 마무리되는 케이스이다. 저자는 경이장르 역시 환상-경이장르와 순수 경이장르로 구분한다. 여기서는 초현실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 같다. 환상-경이장르에서는 초현실적인 것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애쓰다가, 마침내 자연법칙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바라보고 초현실적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순수 경이장리는 초현실적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정한다. 이쪽에서는 초현실적 존재를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등장인물이나 독자에게 아무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판타지물에서 마법을 쓰는 걸 트집잡지 않는 그런 느낌인 것 같다. SF의 경우에는 어떤 현상을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대 과학에서 인정하지 않는 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순수경이장르에 속한다.




저자는 이렇게 장르를 정의한 뒤 환상적인 것의 표현상 특징과 주제상 특징을 정리한다. 



먼저 환상적인 것의 표현상 특징 세 가지를 먼저 살펴보자. 첫째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한 것 같았다. ~처럼 보였다. 마치~ 등 같은 비유적 표현들이 환상 문학 전반에서 나타나는데, 이 비유적 표현이 이야기 속에 글자 그대로 실현되면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여준다. 이런 양태적 표현은 화자의 지각능력에 의심을 불러 일으키면서 자연과 초자연 사이의 망설임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는 1인칭 화자이다. 많은 환상 문학에서 화자는 보통 '나'라고 하는 1인칭 시점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화자가 작품의 등장인물로 등장한다는 말인데, 이는 환상적인 것을 드러내는 데 적합하다. 화자의 입으로 초자연적인 사건을 전해 들었을 때, 독자들은 화자의 지각능력을 의심하며 망설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1인칭 화자는 독자에게 초자연적 현상의 진위여부를 의심하게 만들고, 부차적인 효과로 독자가 자신을 등장인물(화자)과 동일시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몰입을 통해 독자는 환상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마지막 셋째는 시간성이다. 모든 환상 문학은 시간에 대한 지시사항을 명시하고 있고, 시간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리는 이 시간성에 따라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환상적 효과가 전부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말을 먼저 읽고나서 다시 처음부터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환상적인 것의 인상을 깊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환상 문학은 첫 번째 독서의 인상과 두 번째 독서의 인상이 크게 다르다. 첫 번째 독서에서는 이야기의 매력에 끌려가는 반면, 결말을 알게 된 두 번째 독서에서는 환상 장르의 기법들을 찾아 헤매는 메타독서를 하게 된다. 이런 불가역적인 시간성은 환상 문학 전반에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서설>은 환상문학의 두 가지 테마를 정리하며 각각 '나의 테마', '너의 테마'라고 이름붙인다. '나의 테마'는 정신에서 물질로 이동하는 테마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 테마에서는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 관념 속에만 머물던 상상이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물질세계에 이뤄진다. 이 테마는 환상문학 전반에서 나타나는 '범결정론적 신념'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범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에는 자연적 원인이든 초자연적 원인이든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일반화된 결정론을 뜻한다. 사람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 혹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미신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때가 있는데, 이런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인과관계가 환상문학에서는 초자연적 존재를 통해 현실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너의 테마'는 성적 욕망과 사회적 금기를 다루는 테마이다. 많은 환상문학에서 극단적인 성적 욕망과 사회적 금기를 어기는 사랑 등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악마, 뱀파이어, 요정 등 초자연적 존재가 나타나 억눌린 욕망을 실현시켜 준다. 이러한 욕망과 욕망의 실현은 매우 잔혹한 행위로 이어지게 되면서 죽음이나 사후 세계같은 주제로 확장되기도 한다.



끝으로 <서설>은 '나의 테마'와 '너의 테마'의 대립관계를 보여준다. 나의 테마는 주로 개인과 세계의 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들이고 등장인물의 고립된 상황을 묘사한다. 간단히 말해 나의 테마는 개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로 나의 테마를 다룬 환상문학은 지각의 오류, 광기, 정신병 등 한 개인의 혼란을 다룬 이야기들이다. 반면에 너의 테마는 타인을 향한 욕망을 다루고, 각 인물들은 명확한 대상과의 관계를 갈망한다. 다시 말해 너의 테마는 사회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너의 테마를 다룬 환상문학은 위에 설명한 것처럼 뒤틀린 욕망이나 사회적 금기를 어기는 사랑을 다룬다. 사실 더 많은 설명이 있었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니 뭐니 하는 내용이 꽤 나오는 터라 이해 불가능임...




정리하자면 환상문학은 현실세계와 상상세계 사이의 경계를 넘어 현실과 비현실의 대립을 허문다. 저자에 따르면, 문학은 모든 이분법적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경계를 뛰어 넘어 연속적인 관계를 맺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환상문학은 문학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좀 뇌절인 것 같지만, 저자의 이 연구서 덕분에 당시까지만 해도 이류문학이었던 환상문학이 진지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게 됐다고 하니, 나름 의미 있는 평가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꽤나 인상 깊은 책이었고, 나름대로 공포문학과 환상문학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서설>의 분석 대부분이 18, 19세기 환상문학만 다루는 것 같아서 이 부분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물론 책 마지막에 카프카의 <변신>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 분량도 너무 짧고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내가 알기로 이 책이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에 쓴 걸로 알고 있는데, 조금 앞세대나 동시대 환상문학도 조금 다뤘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서설>이 나온 지가 벌써 50년이 넘은 만큼 20세기, 21세기 환상문학을 연구한 책도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책은 내가 모름...



그리고 이건 책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내 지식에 대한 아쉬움에 가깝지만, <서살>에서 환상장르를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론이나 문학이론 등을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 조금 안타까웠다. 이쪽으로 배경지식이 없다보니까 읽어도 뭔 소린지 모르겠던데, 아무래도 문학이론쪽도 조금 읽어봐야 할 때가 됐나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