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정말로 빛이 되나요?"
여자가 재우쳐 물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빛이 돼요? 누구든, 어떻게 살았든?"
사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고통도 없이 말이죠?"
여자가 뭔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또 물었다.
"그래요. 육신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환희를 느끼면서."
"그러니까 말하자면..."
"네, 천국의 문을 연 것처럼." (p.34)
<천국의 문>은, 아버지를 요양병원 치매병동에 모시고있는 '여자'와 간호사인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기별을 들은 여자는 병원으로 향하지만, 도착한 병원에서는, 여자에게 그런 연락을 한 적이 없다고 황당해합니다.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 여자는 옆에서 잠깐 잠이들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아버지는 미소를 띈 채 죽어있었습니다.
여자는, 천국의 문 이라는 혈을 깊숙히 찌르면 단잠에 빠져 미소를 지으며 저세상으로 간다는 말을 했던 남자를 떠올립니다.
아버지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기별을 들었을 때 여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화장을 고치는 것이었다. (p.12)
"에버그린이 아니라 그레이스네. 그레이스 요양병원."
운전수가 거 보라는 듯 소리쳤다.
여자는 아차, 싶었다. '에버그린'은 요양병원에 딸린 장례식장 이름이었다. 이상하게도 병원과 장례식장 이름이 달랐다. (p.16)
여자는 아버지의 기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화장을 고치고 입고 갈 옷을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합니다. 병원으로 가기위해 탄 택시에서는 요양병원의 이름이 아닌 장례식장의 이름을 운전수에게 말합니다.
소설의 도입부부터, 여자는 아버지의 죽음에도 태연하고, 오히려 죽음을 바라고있는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여자를 나쁘게만 생각 할 수는 없을것같습니다.
외출 준비를 마친 여자는 싱크대로 가서 머그잔 가득 보리차를 따랐다. 북유럽 신화 속 상상의 동물이 그려진 커다란 찻잔은 여자가 북극의 오로라 여행을 꿈꾸며 산 것이었다. 여자는 시간을 들여 여러 모금 마셨지만 보리차를 절반이나 남겼다. 애당초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는 반 잔이면 충분했다. 나머지는 아버지 몫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뭐든 여자부터 먹어보게 했는데 독을 탔을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p.12)
여자가 숄더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엊그제 한 달 치 입원비를 치르고 받은 영수증이 있을 텐데. 한참을 뒤져도 보이지 않던 영수증은 여권 갈피에서 나왔다. 여자가 늘 지니고 다니는 여권은 유효기간이 몇 달 안 남았지만 도장 한 번 찍힌 적 없이 깨끗했다. (p.16)
여자는 오로라 여행을 꿈꾸며 북유럽 신화의 동물이 그려진 머그컵을 쓰고 항상 여권을 들고다니지만, 그 머그컵으로는 물을 반 밖에 마시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한 채 유효기간이 다 된 여권에서는 아버지의 병원비 영수증이 나올 뿐 입니다.
여자는,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것을 감추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병원이름과 장례식장 이름이 다른것이라고 설명해 준 '남자'를 떠올립니다.
사과를 깎던 여자에게서 칼을 뺏어든 아버지는 여자의 목을 겨누고 병원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소리쳤지만, 남자는 아버지의 혈을 찔러 그를 고꾸라뜨립니다.
그 후로 여자는 면회를 갈 때마다 남자와 얘기를 나누게 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검고 긴 구름이 몰려와요.
천국의 문을 두, 두, 두드려요.
운전수가 켠 라디오에서 학창시절 여자가 곧잘 흥얼거리던 팝송이 나오고 여자는 '죽음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며 남자와의 대화를 떠올립니다.
죽음이란 빛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사내였다.
"흐르는 강물은 바다를 만나는 순간 가장 고요하죠. 근원으로 돌아가니까. 아니, 근원의 일부가 되니까. 죽는 순간 우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에 흽싸여 깃털처럼 날아올라 거대한 빛의 일부가 돼요. 무한한 빛의 입자들이 먼지처럼 떠 있는 그 거대한 빛은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며 아름답게 물결치죠"
"오로라 처럼요?"
"네.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바다가 햇살에 반짝이는 것처럼."
사내의 말을 떠올리면 여자는 마음의 갈피마다 꾸깃꾸깃 접힌 자리가 말끔히 펴지는 듯했다. 고통과 억울함과 죄의식 속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남몰래 상상하던 순간 접혔던 자리까지도. (p.20)
여자는 죽음이, 자신이 꿈꾸던 오로라 같은것이냐는 질문에 긍정으로 답하는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억울함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듯 보입니다.
남자의 말을 들어서 일까요? 여자는 요양병원에서 자신이 일하는 어린이집의 냄새를 맡습니다.
여자의 주의를 끈 것은 익숙한 냄새였다. 놀랍게도 어린이집에서 날마다 맡던 냄새였다. 여자는 의아했다. 둘 중 하나였다. 요양병원에서 생명의 냄새를 맡았거나, 어린이집에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거나. 어쩌면 두 냄새가 본디 하나인지도 몰랐다. (p.21)
여자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며 엄마와 여동생을 떠올립니다.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해 새 남자와 가정을 이뤘고, 여동생은 독립을해 핀란드 남자와 결혼해 헬싱키로 떠났습니다. 오로라의 나라 핀란드로요. 여자는 그런 엄마와 여동생에게 피해의식과 상실감을 느끼지만, 지금의 삶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며 위안합니다.
우울이 수챗구멍처럼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때면, 여자는 자신의 삶을 도둑맞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격렬한 의심 끝에는 원하던 삶을 움켜쥐지 못한 게 자신의 나약함 탓이 아니라는 쓸쓸한 위안이 찾아오기도 했다. (p.22)
병원에 도착해서 본 아버지는 오늘을 넘기기 힘들어보이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 보다 살이 오른 듯한 모습을 보자, 여자는 이상한 감정을 느낍니다.
여자는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데 소극적이고 서툴러서 그런 순간이면 얼굴을 붉혔는데 그래서 되레 남자들의 눈길을 끌곤 했다. 불필요한 죄의식 속에서 여자는 평온을 얻었다. 그것은 여자가 몇 안 되는 구애자들을 조금씩 멀어지게 한 방식이기도 했다. 결혼이라는 청춘의 빛이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순간에도, 그러니까 일몰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카페에서 반지 케이스를 앞에 두고도 여자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끼니, 아버지의 불면, 아버지의 발작. 말하자면 아버지라는 어둠. (p.25)
이제 보니 아버지는 집에 있을 때보다 살이 오른 듯했다. 순간, 여자는 마음 한구석에서 찬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관심을 끌려고 온 종일 안달이던 아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마에게 안기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심정이랄까. (p.26)
오히려 살이 빠진 쪽은 여자였고, 여자는 평소에도 불안감을 느끼며 화들짝 놀라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반지하에서 찐 감자를 꾸역꾸역 먹으며, 아버지만 떼어내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거라 기대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갈 때마다 도시에서 외곽으로, 외곽에서 산동네로, 마지막은 반지하로 여자는 내려앉았습니다.
여자는 여동생이 봤다고 말했던 오로라와 자신이 보고있는 창밖의 네온사인의 극심한 대비와, 폐경이 다가오는 자신에게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을 느끼며 숨죽여 울다 잠이 듭니다.
잠시 후, 여자는 섬뜩한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고, 아버지는 미소를 띈 채 죽어있었습니다.
여자가 죽음을 실감한 것은 아버지의 미소를 본 순간이었다. 미소 짓는 얼굴이 틀림없었다. 여자는 불의의 일격을 받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속이 메스꺼웠다. 이 죽음에는 밝혀야 할 무엇이 있다. 저 웃음에는 어딘지 공평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 아버지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저 행복한 표정이라니. 천국의 문이라도 열어젖힌 사람 같지 않은가. (p.32)
순간, 여자는 남자가 들려준 얘기를 떠올립니다.
"인간만이 웃을 수 있어요. 웃음이야말로 영혼이 있다는 증거죠. 인간에게는 그 영혼을 육신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혈이 있어요. 천국의 문이라 불리는 혈 깊숙히 침을 찔러 넣으면 단잠에 빠져 미소를 지으며 저세상으로 가죠." (p.32)
여자는 아버지가 오늘을 넘기기 힘들것이라고 전화한 인물이 남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와했던 대화를 떠올립니다.
"죽으면 정말로 빛이 되나요?"
여자가 재우쳐 물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빛이 돼요? 누구든, 어떻게 살았든?"
사내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고통도 없이 말이죠?"
여자가 뭔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또 물었다.
"그래요. 육신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환희를 느끼면서."
"그러니까 말하자면..."
"네, 천국의 문을 연 것처럼."
사내가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여자는 사내의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게 다였다. (p.34)
여자는 자신의 붉어지는 얼굴이 남자들의 관심을 되려 끈다는 것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을까요? 이 대화와 상황을 떠올리며 여자는 오싹함을 느낍니다. 무엇때문인지 모호해서 더...
여자는, 연고도 없는 빈소에 앉아있으면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무거워지는게 홀가분해진다던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장례식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구석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를 발견했을 때, 여자는 메스꺼움과 한기를 느끼며, 십수년전 기억을 떠올립니다.
여자가 대학생 때였고 현대시의 이해인지 감상인지 하는 제목의 교양 수업시간이었다. 맨 앞에 앉은 학생부터 한 연씩 읽고 해석하도록 했으니 특별히 여자를 지목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일어난 여자의 몫은 마지막 연이었다.
당신의 살찐 검은 심장에는 말뚝이 박혀 있지.
마을 사람들은 당신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어.
그들은 춤추면서 당신을 짓밟지.
그 사람들은 당신인 줄 언제나 알고있었어.
문제는 마지막 행이었다. 원문은 읽었지만 여자는 더 이상 입을 떼지 못했다. 분위기가 어색해졌다고 여겼는지 강사가 짖궃은 얼굴로 농담을 건넸다.
"걱정 말아요. 아버님께는 비밀로 할 테니"
세상이 웃는 듯했던 그 순간,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어떤 끔찍한 감정이 벼락처럼 여자를 때렸다. 여자가 끝내 내뱉지 못한 구절은 이랬다.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 (p.37)
여자는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며 휴대폰을 꺼내 1버튼을 누르다 손이떨려 1번 단축번호로 전화를 겁니다. '남자'의 전화번호로요. 여자는 당황하여 종료버튼을 누르고 다시 전화를 겁니다.
'112' 경찰서로 전화를 걸며 작품은 끝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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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은 작가 공인 열린결말로 끝난 작품이라 읽으신 개인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면 될것같아요. 중간중간 들어간 묘사와 복선들이 많아서 여러번 읽으면서 재밌게 본 작품입니다.
저는 가장 기본적인 해석인 '남자'가 '여자'에게 전화를 한 후 아버지의 천국의 문 혈을 찔러 편안하게 보내준게 아닐까 싶어요.
여자의 붉어진 얼굴이 남자들에게 관심을 끌게 한다는 묘사도 있고, 천국의 문 혈 얘기를 하면서 여자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데, 이 모습을 본 남자가 여자와 아버지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려고 한게 아닐까 싶네요.
아버지로인해 자신의 인생이 힘들고 꼬였다고 생각하고, 엄마와 여동생에게 피해의식과 우울감까지 느끼는 주인공이지만, 교양과목 중 현대시의 마지막 구절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는 모습이나, 십수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도 다시 떠올리는 모습, 자신때문에 남자가 아버지를 죽인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서 느끼는 오싹함과 죄책감, 그리고 마지막에 남자와 경찰서 사이에서, 경찰서로 전화하는 장면묘사는 정말 좋았어요. 홀가분함을 느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법하잖아요.
여자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죽음이라는 가장 강한 물리적 이별과 남자의 '배려'가 여자의 죄책감을 이길 수 있을까요?
+자기전에 마구 쓴 글이라 빠진게 많이 보이네요. 남자가 죽음을 경험하기도 했고, 빈소에 있을 때 홀가분함을 느낀다고 한 걸보면 죽음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이라는 남자의 말은 적어도 그 자신은 진심으로 믿고있는것 아닌가 싶어요. 여자와 아버지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 한 행위를 살인으로 봐야하는지, 안락사의 한 종류로 봐야하는지도 생각할 수 있은 점 인것 같습니다 :/
여자가 느낀 감정과 '나는 다 끝났어' 라는 단말마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 일까요?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것에 대한 상실감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를 은근히 바라던 자신에게 느끼는 혐오와 죄책감인지, 자신이 꿈꾸던 삶을 살지 못하는것을 아버지 때문이라며 위안하던 여자가 현실을 마주하며 느낀 감정일까요?
여자는 자신의 인생이 끝장나버린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여자의 남은 생을 걷어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p.37)
시 어디서 봤다 싶더니 실비아 플라스 <아빠>넹.
월간독갤에도 업로드 부탁드립니당
헉 이게 PC로 쓴거라 내일 오타 수정하고 해서 월간독갤에도 올리겠읍니다 :(
넵 천천히 하셔도 괜찮슴다
PC로 보면 글이 이상하게 보여서, 모바일로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아님 말고)
나 이혼소송 진행했던곳인데 한달동안 발품팔면서 찾았던곳이야
수임료도 나쁘지 않았고, 재산분할이나 양육권 관련해서도 세세히 설명해줘서 좋았음
https://replyalba.com/pt/BZ7CTcGOCn
여기서 알아봤는데
내가 감정적으로 하면서 놓칠뻔한 것들 이성적으로 잘 짚어줘서 좋았는데
딱히 어디서 해야할지 모르면 여기 문의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