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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성에 있어서나 대중적 수용에 있어서나 크게 성공하였다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행복한 사례의 부활은 가망이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가뭄에 콩 나듯 하다가 어쩌다 빚어진 우발적 요행으로서 다시는 기대할 수 없는 일회적 역사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이것은 예술사회학 혹은 문학사회학이 마주치고 있는 아주 곤란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외적 소수에 속하는 안목 있는 전문적 독자와 안이한 소일거리로 문학을 수용하는 일반 독자로 독자층이 양극화되는 것은 반드시 문학 분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예술 분야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문명의 발달과 세분화되는 노동 분업 그리고 점증하는 전문화 경향은 이러한 분리 현상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문학적 성취나 독자 모음에서 20세기 후반에 크게 두각을 나타낸 작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밀란 쿤데라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예술적 성취가 높으면 독자가 따르지 않고 독자가 많이 따르는 작품들은 예술적 품격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둘 다를 성공적으로 얻은 이가 20세기 후반의 경우 마르케스와 쿤데라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지를 잘리고 피를 철철 흘리는 초목, 젊은 유혹자의 몸을 싸고 심상치 않게 덤벼드는 누런 나비 떼, 마을을 휩쓰는 전염성 불면증, 죽은 자와 산 자가 나누는 대화 등의 장면이 천연스럽게 전개되는 마르케스의 작품 세계는 일거에 세계적인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놀라운 문학의 신세계였습니다.




한편 1980년대 프랑스에서는 모든 사람이 쿤데라를 읽고 있다라고 할 정도로 대중적인 수용이 활발하였고 비평적인 반응도 아주 좋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축복받은 문학적 행운이 작품 고유의 내재적 가치나 미덕에서 유래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수용에 친화적으로 작용하는 지적 사회적 풍토와 연때가 맞아서 이러한 현상이 가능해졌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이후 이른바 제3세계가 역사의 무대에 본격 등장하면서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가 세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해방 신학, 종속 이론, 체 게바라의 이름을 상기하면 대체로 당대 분위기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케스가 일거에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는 데에는 제3세계로 귀속된 라틴아메리카 출신 작가란 사실도 일조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편 밀란 쿤데라의 경우에는 소련군의 탱크 부대 진주로 막이 내린 프라하의 봄과 무관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농담>의 첫 불어판이 나온 것은 1968년 가을의 일로서 사람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둡체크가 모스크바로 공수되어 굴욕적인 처우를 받고 온 직후였습니다. 전 세계 주시의 대상이었던 소련군의 프라하 진주와 그 여파는 한 보헤미아 작가에 대한 열의에 찬 수용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훌륭한 작품은 언젠가는 진가를 인정받게 마련이지만 문학 외적 요소가 그 촉진에 기여하는 것은 흔히 목도되는 비근한 문화 현상입니다. 물론 작품이 좋아서 그렇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사회 분위기, 지적인 풍토, 이것이 조성되고 그것이 합작을 해서 결국 크게 수용되는 것이다 그런 말이죠. 원칙론적인 얘기입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마르케스가 오십대에 받았고 쿤데라가 진작에 받아야 할 것을 미수 망백 다 넘기고도 끝내 못 받은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우리 쪽에서는 이제 황석영이 거론된다. 개인적으로 황석영이나 생전의 최인훈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은 박경리가 이미 죽었다는 단 한 가지 이유에 의한 반사이익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향후 십 년 내로 한국 작가가 거짓말같이 노벨상을 탄다면 아마 그가 그 무주공산을 차지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것은 작품적인 성취 위에 곱배기로 얹힌, 좋게 말해 민주화 세력이고 정확한 말로 운동권 세력인 저쪽 동네의 대표주자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르케스는 십 년쯤 전에 죽었고 쿤데라는 기어코 올해 죽었다. 위의 짤에 있는 유종호 역시 이제 문학계 원로들이 모였다는 대한민국 예술원에서 세 번째로 연장자에 속한다. 예술원에 속한 소설가 중에 그 사이에 사망한 인물로는 이호철과 최일남이 있는데, 최인훈이나 황석영에 비해 전혀 떨어질 것이 없는 그들이 왜 대중적으로는 저들보다 낮은 칭송을 받는가의 문제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일이라 하겠다. 예술원의 최고령자인 시인 김남조는 쿤데라보다 두 살 누나이다. 개정판을 낸다는 그의 전집이 생전에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