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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론은, 운이란것임


짤은 30주년 기념판 서문의 일부인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임. 충격, 그것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독자들이 느낀것이었고, 그래서 입에 오르내렸고, 센세이셔널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됐고, 많이 팔렸다..


그런데 이상하지

저 독자들이 느낀 충격은 사실 이기적 유전자가 말하는 내용의 핵심이랑은 거리가 있거든.
철저하게 과학적 관점에서 기계론적, 환원주의적으로 생명현상을 설명할때, 삶의 목적이나 의미, 자유의지같은것이 부정되는것(이게 사실이냐 아니냐는 일단 차치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는것이 여기선 더 중요하니까.) 은 사실 이기적유전자론이 아니라 그 이전 시대 생물학으로도 충분히 유도되는, 그리고 나름대로 널리 알려져있던 사실임.

그렇잖아. 유전자선택설이 아니라 개체선택설이나 집단선택설을 채택해도 비슷한 환원주의적 설명이 되고 의미나 목적같은건 부정된다고.

예를들어 이기적유전자가 공격하는 주된 대상중 하나는 집단선택설인데, 사실 대중들은 집단선택설로 생명을 설명하는걸 선호하고 또한 그런 설명에서도 (유전자선택설로 설명했을때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환원에대해 충격이나 가벼운 비통함을 느낌.

"따지고보면 우리는 종의 존속을 위한 장기말일 뿐이야.."

라는 식으로 말이지. "사람은 누구나 죽어" 라는 식으로 누구에게나 부과된 피할수없는 운명을 말할때처럼.


결국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린건, 이기적 유전자가 말하려던 핵심내용, 즉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단위라는 주장 자체가 아니라, 모든수준의 자연선택 설명에서 동일하게 도출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임.

다시말해서 도킨스가 이기적유전자론을 써서 깨부수려 했던 집단선택설이나 개체선택설을 그 내용으로 썼어도 사람들은 비슷한 충격을 받았을것이란것임..



여기까지 생각하면 결국 이기적 유전자가 히트를 친건, 이기적유전자론 자체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기적유전자론을 포함힌 모든종류의 현대적 진화론이 함의하고 있는 생물학적 환원주의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기적유전자는 단지 유명해서 유명해졌고 히트를 치게 되었다. 라는 결론까지도 조심스럽게 말해볼수 있음.

왜냐면 그 이전에도 다윈, 진화론,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존재했고, 학교에서 배웠을것이고, 대중서도 나왔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제서야'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목도한게 그때가 처음이었기때문이라고밖엔 설명할수 없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대부분의 대중들은 그때서야 처음으로 생물학적 환원주의라는 괴물과 마주쳤다는거지. 그건 이전부터 존재했고 식자들에겐 식상한것이었으며 일부 대중에게도 알려진것이었고 대중서나 교과서등을 통해서 이기적유전자 이전부터 자신을 드러내왔으나, 대중들은 그것에 관심이 없었던것임.


그러나 여러 우연이 겹쳐서 이기적유전자라는 책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세를 얻게되니까 점점 사람들은 뭐길래 저렇게 떠드나 하고 읽어볼까 하는식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처음 마주하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충격을 받게된것.


비유하자면, 아마존 원시부족에게 영화 '블레어위치' 를 보여준다면, 그들은 블레어위치에 사용된 헨드헬드 기법이나 페이크다큐같은 개념에 충격을 받는게 아니라 영화라는 영상물 자체에 충격을 받는것과 비슷하다 할수 있겠지. 그렇기때문에 블레어위치가 아니라 어떤 영화를 보여줘도 충격을 받을것임..그리고 그렇다면 또한 결국 무엇을 찍은 영화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처음이냐 아니냐가 중요한것.

이기적유전자의 히트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함.
대중들은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목격한적이 없고, 충분히 유명해질수만 있다면 진화에 관한 어떤 책이라도 사람들에게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의한 충격을 줄수 있었을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