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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나 짚고 가자면, 제목의 "포스트모던"은 원제에는 딱히 없는 단어다. 원제는 <해석학: 정보 시대에서의 사실과 해석Hermeneutics: Facts and Interpretation in the Age of Information>으로,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이 괜히 추가로 붙은 것은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저자 자체가 서두에서 해석학의 역사를 근대까지의 해석학과 그 이후, 하이데거부터의 포스트모던 해석학으로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뭐하러 이 단어를 짚고 넘어가느냐, 그것은 바로 이 단어에 얽힌 일반적인 선입견과 이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 해석학이라는 말 자체보다도 오히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로 다른 이들에게 이 내용을 요약할 수 있는 탓이다. (이 감상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은 리오타르나 여타 학자들의 학술적 정의와는 다른, 적당히 이미지로서의 용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던의 무한한 상대주의 같은 편견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근대까지의 해석학은 이후의 해석학과는 지향하는 바 자체가 조금 다르다. 본디 그리스 철학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해석학은 성경과 같은 경전의 문구들을 해석하는 학문이다. 어느 한 구절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지칭하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서 적용해야 하는지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근대에 들어서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등의 학자들이 이것을 훨씬 정교화하고 니체의 계보학이 섞이며 기존과는 차별화되는 근대의 신학적 해석학을 완성하였지만, 이것이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근현대 인문학의 정초가 된 것은 그 뒤, 하이데거부터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우리 인간, 현존재가 세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해석의 상태에 있음을 지적하며 해석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삶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시작이자, 우리에게 익숙한 "포스트모던"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정체성 정치의 익숙한 문구이기도 하고.



흥미롭게도, <포스트모던 해석학>은 이 해석학이 확정될 수 없다는 것을 전기 하이데거와 후기 하이데거 사이의 불일치로 먼저 보여준다. <존재와 시간>은 하이데거가 현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해석학을 열어젖힌 책이지만, 정작 후기 하이데거는 사르트르가 이 저서를 실존주의의 예시로 드는 것에 반발하며 쓴 글로 해석학을 다시 닫으려 든다. 그것은 하나의 "해석학의 폭력"으로,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 <존재와 시간>을 그 이후의 하이데거가 자신의 해석으로 덮어씌우려고 하는 일이다. 그 시도는 가다머가 해석학을 재구출하며 실패했고, 이후 데리다, 바티모, 로티 등의 학자들을 따라 현재까지 이어진다. 자세한 이야기를 굳이 감상에 전부 실을 수도 없거니와, 한 차례 요약된 내용을 굳이 더 요약할 필요는 없을 테다.



여기까지 포스트모던 해석학의 계보를 훑은 저자는 이후 이것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를 여러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가장 흥미로운 예시가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간호사들의 일은 어떤 의미에서 가다머가 제시한 해석학과 맞아 떨어진다. 그들이 환자를 다루는 데에 있어, 진단에 근거한 규정은 때때로 지금 이 순간의 환자와는 너무나 멀어 그 사이의 대처가 필요하며, 어떤 때에는 두 대립되는 규정이 있어 이 사이에서 판단을 내려야 하되, 동시에 그 판단을 내리는 순간은 늘 지금 이 순간의 대처를 필요로 할 정도로 급박하다는 것이다. 이 요소들은 데리다의 해체가 정의하는 요소들과도 맞아 떨어지며, 늘 규정 밖에서 찾아오는 사건들을 위한 해석에 시달리는 간호사들을 해석의 주체로 볼 수 있게끔 한다. 실제로 간호사들이 가다머의 저서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다. 이 밖에도 요즘의 포스트-휴먼 담론이 어떻게 육신-영혼의 이분법 등과 같은 선해석을 담보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며, 과거의 인간상조차 어떻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독립적인 개체가 아니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시 "포스트모던"으로 돌아오자면, 이 책은 그 "포스트모던"의 편견을 깨기에 좋은 책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 개론서들은 구조주의에서 해체주의까지의 흐름을 보여주며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적인 시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이야기하곤 하지만, 대체로 이 내용들은 너무나 모호하여 오히려 그런 편견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이와 같은 이행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납득시키는 데에는 부족하다. 반대로, 규칙 바깥에서 찾아오는 전혀 다른 사건들을 어떻게 규칙이 해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해석학은 역으로 "포스트모던"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애초에 그런 절대적인 규칙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이 왜 그런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학을 이해해야만 할 테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모던 해석학>이 참 인상적이고도 뜻깊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해하기 쉽기도 하다-너무 얕지는 않은 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