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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서가 한켠은 세계 각국에서 번역한 쿤데라의 책으로 가득차 있다. 한국판 <느림>은 일어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묵직한 <구스타프 말러 작품집> 사이에 꽂혀 있다. (...) 쿤데라는 <느림>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반응을 듣더니, 한국의 독자 수가 스페인만큼이나 된다며 반가워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대해 잘 모른다며 여러 가지를 물었다.
“무슨 언어를 사용하지? 오, 오, 재미있다, 무슨 술을 먹느냐, 소주? 오, 그래? 음악은 어떠냐? 오, 서양 음악도, 음, 그래 정명훈은 나도 바스티유에서 봤다. 백남준, 그래, 응, 그래, 맞아, 통일이 되어야 할텐데. 그래, 오, 테제베, 신문에서 봤어, 그렇지, 응? 갈리마르에서 한국 문학 작품이 번역되었다고? 응, 악트쉬드, 벨퐁에서도. 응, 이문열? 그래? <르 몽드>에서? 11월에 한국 작가들이 온다고?”」
「“한국 독자들이 내 작품을 좋아한다니 반갑다. 왜 그럴까, 응, 응, 그래, 역사적 배경, 그래, 마르크시즘, 그래, 독재, 음, 사랑? 그래, 음, 정서적 배경? 그래, 공동체적? 그래, 그렇지. 응? 감춰진 가벼움? 내적 정열? 음, 파시즘? 민족주의… 음, 동유럽 음악과…바르토크? 음, 안티 데카르트? 오, 그렇다면 하이데거? 그거 재미있군 그래. 음, 음, 오, 식사가 나왔군.”
그는 하이데거에 대해 매우 장황하게 해설을 붙이며, 자기의 세계관은 하이데거와 유사한 데가 많은데 이는 체코를 포함한 중부 유럽적 정서에 어울린다고 말한다. (...) 남은 우리는 잠시 심심해졌다. 격전을 치르고 난 직후라 나는 서로 기분 좋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밀란 쿤데라, 당신 문학은 우리 나라 문학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90년대 한국의 젊은 소설가 중 많은 사람이 당신의 자유로운 소설 형식에 영향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글쎄, 나는 아방가르드 문학을 속물 취미라고 여긴다. 내 소설은 결코 쉽게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느림>만 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소설이다. 내 작품을 진지하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젊은 소설가들이 내 작품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젊은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아방가르드는 결코 아니다. 나는 차라리 고전주의적이다.”」
「“내 작품을 번역할 때 조심해야 할 점 가운데 하나는 단어 반복 문제이다. 영어로 번역할 때 어느 번역자는 반복되는 단어를 모두 동의어로 바꿔 놓은 적이 있는데, 그건 고등학교 시절 작문 교사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작문 교사의 지침을 순순히 따르는 작가는 아니다. 플로베르 이후 소설의 문장은 이미 단순한 의미 전달의 산문이기를 그쳤다. 하긴 좋은 번역자를 구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으론, 체코어로 쓴 내 작품을 프랑스어로 잘 번역할 사람이 하나 있을까 말까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사정도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내 허락 없이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작품들은 무슨 판본을 주로 사용했는가?”
“영어, 체코어, 독어 여러 가지다.”
“역시! 기가 막힌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내가 공산 치하에서 연금당해 외부와 연락을 못하고 있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작품이 외국에서 많이 번역되었다. 그 시절에 통용된 체코어판도 검열을 당했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판본이 많이 있다. 그런 책을 저본으로 하여 한국에서 번역했다면 한국 독자들은 내 작품을 읽고 있는 게 아니다. 어떤 판본은 장 구분이 없는 작품을 난도질해서 장을 만들어 놓았고, 어떤 작품은 한 부분을 몽땅 빼먹기도 했고, 심지어는 문장을 제멋대로 고친 경우도 있다. 당신이 돌아가서 그 사실을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내가 프랑스에 온 이후 내 작품은 모두 불어로 꼼꼼히 수정해 놓았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내 작품의 결정본은 체코어판과 프랑스어판이다. 내 작품을 번역할 때 내가 최종 교정본을 보내줄 테니 그걸로 번역해야 된다.”
점잖은 노인이 흥분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잠시만 기다려요. 보여줄 게 있어.”
3분 후 그는 <농담> 영역본을 가져왔다. 영역 <농담>의 다섯 번째 번역본이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서야 제대로 된 책이 되었다. 10년 가까이 걸렸다. 그전의 번역본은 모두 엉터리였다. 슬픈 일이다. 이 모든 사태는 내가 체코에서 연금돼 있을 때 시작된 것이다.”」
「기념 사진을 찍자고 하자 그는 단호히 거절한다. 15년간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부해 왔고 공개된 스냅 사진은 한 장도 없는 쿤데라에게 더 이상 요구할 수도 없다. 그는 큰길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한다. “한국식이로군요”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드물게 웃는 사람이다.」
와.. 95년도 인터뷰이니 정말 옛날이네ㅎㅎ 그런데 위화감이 전혀 없는 것도 신기하네
이제는 번역 제대로됐나? - dc App
지금 민음사에서 나온 쿤데라의 책은 모두 프랑스어본을 번역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