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시의 작품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장르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핏빛 자오선>을 기준삼아 그 이전을 남부고딕 시기로, 그 이후를 서부극 시기로 보며 작품을 나누는 방법이다. 지금은 <스텔라 마리스>와 <승객>이 나오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작품이 어떤 주제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매카시는 평생 위에서 말한 3가지의 주제만을 써왔기에 당연히 그에 따라 작품들을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만을 다루는 소설은 없고, 모두 2개 이상의 주요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정도 분류하자면
신에 대해 묻는 작품들은
<바깥의 어둠>, <과수원 지기>, <신의 아이>, <핏빛 자오선>, <선셋 리미티드>, <로드>, <평원의 도시들>
역사가 상징되는 작품들은
<바깥의 어둠>, <핏빛 자오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승객>, <스텔라 마리스>,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서>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은
<과수원 지기>, <신의 아이>, <서트리>, <핏빛 자오선>, <국경 삼부작>, <석공>,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드>, <선셋 리미티드>, <카운셀러>, <승객>, <스텔라 마리스> 정도로 볼 수 있다.
매카시의 글 중 신에 대해 묻는 작품들은 신이 즉각 나타나지 않는다는 문제를 주로 삼는다. 실제로 <핏빛 자오선>에서는 인간과 역사 모두가 악하고, <로드>에서는 세상이 끝나가며, 남부 고딕시기의 작품에서는 사람의 악함이 하늘에 치달았음에도, <선셋 리미티드>에서는 인간이 죽음 바로 앞에 놓여있음에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다. 신은 계속 침묵으로 달관하다 <핏빛 자오선>에서는 종교가 과학으로 교체되는 수난까지 겪는다. 그래도 신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신의 부재를 경험하는 이들은 신을 처절할 정도로 원망한다. 그러나 신은 재림하지 않는다. 고난 앞에 나타나지 않는 이런 신에게 원망을 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매카시에게 뒤늦게 나타는 신은 단순한 원망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매카시는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메시아는 올 것이다. 더는 필요가 없어졌을 때, 와야할 날보다 하루 늦게 올 것이다. 마지막 날이 아니라, 임종 무렵에 올것이다."라는 말대로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도래하리라 믿는다. 그의 작품들은 이러한 믿음을 보여준다. <평원의 도시들>에서 메시아는 모든 서사가 끝난 후에 늙어 죽음을 기다리는 주인공의 앞에 나타난다. <로드>에서는 주인공이 죽자 신은 소년과 그의 아버지가 한 행동에 보답하듯이 그의 아들에게 기적을 선사한다. <선셋 리미티드>에서는 신을 믿는 흑인에게 그리했듯이 백인에게도 신이 나타날것을 암시한다.
매카시의 신에 대한 관점이 특이하다면 역사에 대한 시각은 잔인하기 짝이 없다. 그는 헤겔과 마르크스와 다르게 역사가 좋은 쪽으로 진보한다고 믿지않는다. 매카시는 역사가 악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말한다. 그는 역사 자체를 의인화시켜 문학속에 등장시킨다. <핏빛 자오선>의 판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가 대표적이다. <핏빛 자오선>의 판사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범죄를 다 저지르지만 법학과 과학에 능통하며 초인 그 자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쉬거는 동전 던지기에 따라 인간을 짐승 도살용 무기로 도축한다. 이처럼 코맥 매카시의 세계서 역사와 그를 상징하는 이들은 운에 맡기거나 혹은 자신의 의지로 무자비한 폭력을 모든 대상에게 행사한다. 자연과 같은 존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역사-시대- 그 자체가 형상화된것이다. <핏빛 자오선>에서 판사가 행하는 모든 악행은 말로 설명불가한 행위들인듯하지만 실제로 서부개척시대동안 있었던 범죄와 실제 인물의 행적을 섞은 것이다.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배경인 미국의 1970년대는 미국 역사상 살인율이 가장 높았던 때로 안톤쉬거보다 더한 살인마들이 판을 치고 다녔다. 광기로 무장한듯한 소설의 악역들은 기실 그 시대를-역사를 응축시킨 존재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죽지않는다. <핏빛 자오선>의 결말은 이렇다. "그는 결코 자지않는다. 그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빛과 어둠 속에서 춤을 추고 최고의 사랑을 받는다. 판사, 그는 결코 자지 않는다. 그는 춤을 추고, 또 춘다. 그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엔딩도 위와 유사하다. 안톤 쉬거가 그의 철학에 따라 교통사고를 겪지만 그는 다시 사라지고 에드는 그를 잡지 못한다. 그들은 역사 그자체기에 결코 죽지않는다. <핏빛 자오선>의 소년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모스가 그들과 대적하지만 결국 패배하는 것은 역사 앞에선 인간의 연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매카시에게 역사란 인간이 극복해낼수 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매카시가 인간의 무기력함만을 강조하는 작가는 아니다. 매카시는 인간이 있기에 신과 역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 중에는 인간을 다룬 작품이 많다. 이런 사상은 <로드>의 "사람이 살:수 없는 곳에서는 신도 살 수 없어요."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동전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결정하는 것" 이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다. 결국 신이 임종후에 온다고 한들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역사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의해 흘러간다. <로드>와 <핏빛 자오선>은 정말 이런 사상을 대표하는 것처럼 서로 인간군상의 양극단에 서있다. <핏빛 자오선>의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못해 악하다. 정말 악하다. 모든 인간이 살인에 연류되어있으며 무리의 대장인 글랜턴은 학살자에 강간마다. 전직 신부인 토빈은 신이 아니라 판사를 경외한다. 이런 인간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메시아가 재림할 수가 없고 역사가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도 없다. 그래서 <핏빛 자오선>의 결말은 참혹하다. 판사를 제외한 모든 인물이 죽거나 사라지고 오직 악한 역사만이 남는다. <로드>는 이와는 반대로 주인공과 그의 아들은 선하다. 인간을 돼지처럼 사육해 인육농장을 만들고, 여자를 임신시켰다가 출산하면 그를 먹는 지랄 맞은 포스트 아포칼립소의 세계에서 그 둘은 '인간'답게 살아가고자한다. 주인공은 자살한 아내의 부탁에 따라 극한 상황서 소년을 씻기고, 소년을 가르치며, 소년을 지키고자한다. 주인공의 아들은 길을 가다 마주친 장님-신이다.-, 개, 이름모를 소년에게 선행을 계속 베푼다. 이런 시도는 극한 상황속에서 정말 무의미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핏빛 자오선>과 다르게 희망적인 결말을 마주한다. 소년의 아버지는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탄약이 들어있는 권총을 건네주며 소년에게 사는법을 알려주겠다는 남자와 신을 이야기하는 여자가 소년을 생존자들의 공동체로 데려가며, 역사를 상징하는듯한 송어가 생명력을 가진채 뛰어오른다는 언급으로 <로드>는 끝난다.
결국 매카시는 종말 후에 재림하는 메시아도, 쉽사리 극복할 수 없는 역사도 결국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말을 소설을 써오는 인생동안 계속해왔다. 매카시는 장르소설이던 서부극을 순문학으로 올려놓았기에 거장이 아니다. 그는 다른 문학의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왔기에 거장인 것이다.
여담으로. 매카시의 특이한 문체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쉼표와 마침표만을 이용해 대화와 묘사를 행하는 문체는 정말 환상적이면서 주제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실존을 다룬 작품들이 대부분 글을 차갑게 최대한 단문체로 쓰려는 경향이 있음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근데 매카시의 문체는 만연체와 간결체, 현실과 환상을 오간다. 작품의 상황과 배경을 최대한 잔혹하게 서술해 보통의 작품들과 궤를 달리하는 문체와의 괴리를 만들어 주제를 강조시키는 필력은 정말 정점에 있다고 밖에 말할 방법이 없다.
실베가면 응우1옌 부모 찢어죽임
헉
다 쓰고 보니 딴 사람글 보니 딴 사람이랑 너무 유사함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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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함 안아줘?
님 매카시 플차 만들어볼 생각은 없음?
당연히 있죠~
요새 매카시 땡기는데 좀 만들어주셈
책 안봤는데 본 듯 안 읽어봐야겠다ㅋ 씻기고, 가르치며, 지키고자한다,좋다 얼마나 불가능한 수행이냐 오늘 그나마 법 있이 사는 게 저런 소수 사람들 사랑 덕분
최고의 극찬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