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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인 the remains of the day의 오역에 가까운 제목은 따져보면 꽤나 운율감도 느껴지는 운치 있는 제목이다. 결말부분을 고려한다면 작품의 주제와도 그리 동떨어지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 쉽게 읽히는 그리 길지 않은 장편소설의 미덕은 어디선가 들은(직접 보진 않았지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나 채만식의 치숙의 전개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이 든다. 자신의 편파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마저도 솔직하기 때문에 그들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스티븐스 역시 자신의 집사 업무에 대한 자부심과 유능함으로 철저히 자기 논리를 무장한 인물로 그의 회고를 들여다보면 집사로서의 자부심과 신념이 뚝뚝 묻어나온다. 하지만 그의 자신의 업무에 대한 회상과 달링턴 경에 대한 철저한 회고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켄튼 양과 아버지를 비롯한 인간 관계의 미진함, 대의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뒤늦은 실패이다. 우리는 스티븐스의 글을 읽으면서 이면의 그 의미들을 손쉽게 읽을 수 있지만 소설의 깔끔한 문체는 스티븐스의그런 감정들과 여운을 약간 흐릿하게 던져놓으면서(또는 우리의 느낌과는 대치되는 스티븐스의 생각을 섞어놓음으로써) 여운을 증가시킨다. 회고하는 집사 스티븐스는 '그 날의 잔여물'들을 뒤섞고 끼워맞추면서 회한을 느끼지만 결국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새로운 주인인 패러데이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간대인 '저녁 시간' 그리고 '남아 있는 나날'들이 있다. 후회를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남은 날로의 전진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스티븐스의 앞날을 우리는 그래도 애틋하지만 약간의 희망을 담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책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