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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독후감 - 빛, 눈, 사랑, 그리고 예술


한 뉘 나그넷길 반의 반 고비에 올바른 길 잃고 헤매던 나 컴컴한 숲 속에 서 있었었노라. 젊은 예술인으로서 돈도 애인도 없으되, 예술에 대한 관념적인 열망만 크니, 주변의 스쳐지나가는 사소한 겐세이 몇마디 조차 내 속에선 그 무엇보다 크고 시끄럽게 들리던 것이다. 나의 일과 재능, 그리고 돈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던 요즈음, 나는 단테의 신곡을, 나의 중세에 대한 호기심, 예술작품의 건축적 완결성에 대한 열정으로 말미암아 집어 읽게 되었으니, 이는 내게 컴컴한 숲 속 하나의 단초이며, 빛이고, 내가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을 조금이나마 늦추어주는 밧줄이 되었다. (나의 문투가 이리도 괴상한 것은, 아직 단테뽕, 최민순뽕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를 읽는 독자는 나를 다음날 아침의 쪽팔림을 알지 못하고 주사를 부리는 취객을 보듯이 가엽게 여기어라.)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인가?"에 대해선 내가 이 자리에서 건방지게 몇마디로 정의할 순 없으나, 한평생 고민해오고, 많은 생각을 해왔기에, 그 목적지는 모르더라도, 생각이 지나온 길의 흔적은 남아있다. 그러나 나에게 그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우리는 왜 예술을 감상하는가?" 더 나아가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이 자리한 곳은 어둡고 우거진 무서운 숲속이기에, 나는 이 숲속을 헤쳐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 때 마치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부름을 받아 베르길리우스를 만났듯, 나는 단테를 만났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그 숲속을 걷고자 한다.


나는 물었다. "시인이시여, 당신은 베아트리체를 생전에 단 두번 만났을 뿐인데, 도대체 그녀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당신은 당신의 시 속에서 그녀를 천국의 두번째로 높은 자리에 위치시키고, 또한 그녀를 당신을 구원하는 존재로 만들 수 있었습니까?" 그는 무어라고 그의 언어로 대답했지만 나는 이탈리아어를 "Si, si." 말고는 전혀 할 줄 모르기에 멍청한 눈으로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 중간중간 "Si, si."하고 대답하였다. 이제와서 최민순의 한국어 번역본을 보며 유추하기를 그는 아마 이런식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너는 베아트리체가 연옥산의 지상낙원으로 강림했을 제,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는가?:


얼마동안 나는 나의 맵시로 그를 부축하였고,

젊디 젊은 눈을 그에게 보여주면서

옳은 방향으로 나와 함께 그를 인도했노라.

(연옥편, 제30곡, 121-123행)


너의 말마따나 나는 그녀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은 나의 눈을 통해 들어와 나의 몸을 옳은 방향으로 움직이었으니, 그녀는 내가 신곡을 쓰기 이전에 이미 나를 구원한 셈이다. 따라서 타인을 사랑으로 구원한 이는 천국에 있어야 마땅한 법이니, 그녀가 그 자리에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럴수가, 서구 최고의 시인이 이토록 외모지상주의자라니.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시인이시여, 여전히 가슴 속 먼지가 털어지지 아니하여 당신의 뜻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나니, 나의 의혹을 풀어주시오. 당신의 말대로라면 아름다운 외모는 그 자체로 덕이고, 천국을 향한 열쇠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외모는 선천적이기에 구원받는 자는 그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것입니까?"


"너는 이탈리아 말을 할 줄 모르기에 나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였구나. 내가 친히 한국어로 말해주리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젊디 젊은 눈"이다. 내가 천국에서 그녀의 눈을 왜 그리도 들여다봤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아라.


그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나긋하신 길잡이의

눈으로 다시금 눈을 곧장 옮기었더니 그는

웃음 지으며 거룩한 눈에 사랑이 빛나시더라.

(천국편, 제3곡, 22-24행)


하나님은 우리를 굽이"보시며", 빛으로써 우리에게 은총을 내려주시리다. 내가 하나님의 빛에 눈이 부셨던 적이 연옥에서 한두번, 그리고 천국에서 여러번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이 내게 대답하되, "천국의 족속이 잠시

네 눈을 부시게 할지라도 놀라지 마라"

[...]

저 보배는 마치 햇볕이 환한 물체로

쏘아드는 것같이 사랑한테 달려와

그것이 뜨거운 만큼 스스로를 주나니,

[...}

또한 천상을 사모하는 백성이 많을수록

사랑할 보배도, 서로 사랑함도 더욱 더하여

거울처럼 서로 주고받느니라

(연옥편, 제15곡, 28-75행)


거울처럼 서로 주고받는 빛, 서로 시선을 주고받음은 곧 사랑임을 베르길리우스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어째서 천사들의 날개에는 그리도 많은 눈이 박혀있는지 이해하겠느냐? 또한 나의 여인이신 베아트리체가 말하길:


너 또 알아야 할 것은 무릇 누구든지

온갖 지성이 그 안에 인식하는 진리 안에

그의 시야가 깊을수록 그만한 기쁨을 지니느니라.

이로부터 지복을 누림이 직관함에

있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사랑함에

바탕하지 아니함을 알 수 있도다.

(천국편, 제28곡, 106-111행)


우리는 그녀의 말에서 두가지 의미를 볼 수 있다. 첫째 의미는 본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닌 "온갖 지성이 그 안에 인식하는 진리 안에 그의 시야가 깊은" 것, 즉 직관함이다. 두번째 의미는 사랑하기 때문에, 대상을 직관(봄)하는 것이 아닌, 직관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애덕의 상징이신 사도 요한을 만났을 떄, 나의 눈이 어두워졌고, 그의 시험을 통과한 이후에야 비로소 나의 시야가 더 선명해지었던 일을 상기해보면 이해가 쉬우리라."


우리는 이런 말들을 지껄이며 숲길을 걷다가 거대한 문 앞에 다다랐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 모든 희망을 버릴진저."


나는 두려움에 떨며 단테에게 물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의 문입니까?" 그러자 시인이 대답하길 "여기는 전통적으로 위대한 음악인들과 문인들이(시와 음악은 고대 그리스에 본래 하나였기 때문에) 영생을 얻는 곳, 국정원 지하실이다. 이곳은 지상의 사람들이 죽은줄로만 알고 있던, MC무현과 투팍, 존레논, 마이클 잭슨이 살아있는 곳이고, 폴맥카트니는 죽어있도다. 우리는 이곳에서 지상에서 이 문을 거쳐운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그 문을 지나가자 초조한 듯 다리를 덜덜 떨며 글을 쓰는 이가 보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기에 이리 초조하게 글을 쓰는 것이며 무엇을 쓰고 있나이까?"


"나는 도스토옙스키,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이리 초조하게 글을 쓰고 있도다.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 중에서도 조시마 장로의 이야기인데, 그는 그의 제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외치리라. "신부님들, 스승님들 '지옥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나는 그것을 '이제는 이미 사랑할 수 없다는 데 대한 괴로움'으로 해석합니다." "


이 얘기를 들은 단테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으니. "나도 당신의 말에 동의하나니. 사랑할 수 없다면 그 곳은 지옥이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 곳은 천국이리라." 그러면서 나에게 말하길.


"너는 내가 천국에서 얻은 최상의 기쁨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 바로 하느님과 그 빛, 천사들을 본 것이었다. 천국은 밝은 빛으로 가득한 곳, 그곳에서 나의 최고의 기쁨은 캐비어나 초밥 오마카세도, 야스도 아닌 오직 '보는 것' 이었도다. 천국은 빛으로 가득하여 보는 즐거움이 있는 곳. 반면에 지옥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 연옥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며, 밤과 낮이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찌 보는 것이 최고의 기쁨일 수 있겠는가?


림보에 계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인간은 본래 앎을 욕구한다. 이 점은 인간이 감각을 즐긴다는 데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정말 쓸모를 떠나 감각을 그 자체로 즐기는데, 다른 어떤 감각들보다도 특히 두 눈을 통한 감각을 즐긴다." (형이상학)


또한 그는 이렇게도 말했으니.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진지하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시학)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사람들은 시를 앎을 위한 것으로, 학문을 즐거움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예술과 학문은 따로 구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가 지옥의 림보에 있던 것은 단지 그가 중세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하느님에 대한 참된 시선'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너는 또한 내가 이 문을 지나기 전에 '본다는 것은 곧 사랑'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라."


그 때 우리에게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벽돌! 석판! 기둥!"이라고 외치는 자가 다가왔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으니, 그는 지상에서 비트겐슈타인이라 불리는 자다. 나는 그에게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으나, 그는 "벽돌! 석판! 기둥!"만 외칠 뿐,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로 보였기에 내가 먼저 단테에게 설명하였다.


"시인이시여, 나는 이 자가 누군지 알고 있느니라. 이 자는 비트겐슈타인이라 이름하는 자로, 젊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던 자요. 이 자를 여기서 마주침으로써,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 번갯불처럼 번쩍였으니 이에 대해 당신에게 말하고 싶소. 당신이 지옥과 천국에서


오, 말이란 얼마나 모자란 것이며 내 생각에

비기면 이 얼마나 가냘픈 목소리인고, 내가 본 것을 들어

'조금'말한다는 그것마저 당치 않은 일이로다.

(천국편, 제33편, 121-123행)


을 비롯하여, 당신이 스스로 보았던 것을 말하는데에 곤란함을 겪는 것을 자주 보았나이다. 이 자를 여기서 보니 그가 생전에 했던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스스로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논고, 6.522)라는 말이 떠올랐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비로움을 성급하게 결론지으며 말하는 오만을 저지르기 보다는, 그저 침묵하며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리까?"


그러자 단테가 대답하기를:


"밭의 이삭이 채 익기도 전에 이러쿵저러쿵

헤아리는 누구처럼 사람들이여,

너무 안이하게 판단하지 마라.

(천국편, 제13곡, 130-132행)


내가 했던 말이니 나 너의 의견을 타당하다 여기노라."


우리가 말을 마치자마자 비트겐슈타인은 더 날뛰며 부지깽이를 휘두르니 우리는 그곳을 재빠르게 도망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하실을 조금 더 내려오니, 벽면에 지상의 원근법과는 완전히 반대로 먼것은 크게, 가까운 것은 작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를 보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이며 벽에 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이까?"


그러자 그가 대답하길 "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 나는 14세기에 이미 존재했으나, 저 한구석에서 '소련 시발, 소련 시발'하고 중얼거리고 있는 타르콥스키라는 자가 1966년에 리마스터한 화가이니라. 지금 벽에 그리고 있는 것은 '성삼위일체'로. 나는 생전에 광대를 고발하고, 마녀를 모른체하고, 러시아인을 죽이는 등 죄를 지었기에 이를 속죄하기 위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림도 그리지 않았더라. 그러나 나를 구원하고 회개하게 한 것은 한 주조쟁이의 아들로 태어난 주조쟁이로, 나는 그의 작품인 종과 그의 삶을 '바라보며', 그를 사랑하였고 구원하였으며, 그를 구원함으로써 동시에 나조차도 구원되었다. 그가 없었으면 나는 아직까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 '성삼위일체'라는 그림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니, '보는 것'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음을 너에게 알려주리다."


그의 말을 듣던 단테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하더라. "어쩌면 베아트리체께서 내가 지옥과 연옥의 영혼들을 둘러보기 전까지 나에게 천국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내가 그 영혼들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을 사랑하고 구원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난 그녀의 바라심에 따라 그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겨우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리라."


우리의 여정은 국정원 지하실 최하층에 다다랐고, 그곳엔 동네힘쎈사람이 있었으니, 우리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지하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리하여 또다시 별들을 보러 이곳을 나오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