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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학 서적은 나름 여러 권 읽어 봤는데, 정작 철학적 사고법, 철학적 글쓰기 이런 건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한 번 <사고법>을 빌려다가 읽었다. 이 책은 영미 분석철학, 그 중에서도 20세기 중반 일상언어학파의 개념분석을 일반 논술에 적용하는 글쓰기 교재라고 한다. 분석철학이라고 하면 다루는 주제는 몰라도 글쓰기 스타일만큼은 호감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고, 꽤 유익했다고 할 수 있다.



교재 내용을 요약하려고 하면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으니까 그냥 좋았던 부분만 남기고 마무리 짓자. 



사실 글쓰기 원칙 등을 설명하는 챕터는 그냥 전형적인 글쓰기 방법 설명었다. 대표적인 사례를 찾기, 대조 사례 제시하기, 사회적 맥락 파악하기 같은 글쓰기 원칙과 사실과 가치 혼동, 선결문제 요구, 과도한 의미 확장같은 글쓰기 주의사항을 설명하는 등등 그냥 인터넷에 철학적 글쓰기로 검색하면 주루룩 뜨는 것들이랑 별반 차이 없다. 이 파트에서는 전형적인 철학적 글쓰기 원칙들과 주의사항들을 짚어보면서 왜 이런 절차가 중요한지를 설명하는데, 그냥 가볍게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원칙을 되새기는 정도로 충분한 것 같았다. 



<사고법>의 진가는 아무래도 글쓰기 예시 챕터가 아닐까 싶다. 이 챕터는 다시 토막글 비판과 실전 글쓰기 두 파트로 나뉜다. 첫째로 토막글 비판에서는 다른 책에서 인용한 두 세 문단짜리 토막글을 읽으면서 잘못 사용된 개념이나 논증을 찾아 비판한다. 내가 보기에 이 파트에서는 앞에서 설명한 글쓰기 주의사항들을 재점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글쓰기에서 실수하기 쉬운 부분들을 다른 사람의 글에서 직접 확인하면서 익히는 그런 느낌이다. 



둘째는 실전 글쓰기 파트인데 이 부분이 매우 유익했다. 여기서는 앞에서 설명한 글쓰기 원칙에 따라 실제로 논술문을 작성하는 파트이다. 저자는 논술문 작성을 일곱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별로 글쓰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이 파트의 진가는 저자가 글쓰기 과정, 즉 사고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저자는 1) 철학적 질문을 분석하고, 2) 글쓰기 원칙과 주의사항에 따라 사고를 전개하고, 4) 논점을 정리하고, 5) 논술문을 작성한 뒤 수정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이 사고의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나처럼 혼자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중간과정'을 맛보는 것이 매우 드문 경험이기 때문이다. 사실 좋은 글이야 많고,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글도 많이 있다. 글쓰기 원칙 같은 거야 썩어 넘칠 정도로 많다. 하지만 이것들은 전부 원칙과 결과물, 즉 양 극단에 있는 글이다. 다시 말해 시작과 끝만 있고 중간 과정을 경험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이 결핍을 해결하려면 지도 교사를 구하든지 아니면 혼자서라도 무수히 많은 글을 써보든지 해야 할 텐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럴 만한 여유와 열정이 있었으면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비어 있는 중간과정을 채워줄 책을 찾았으니 유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고 따라하고 대조하면서 재점검할 수 있는 모범사례가 생겼으니, 나중에 글 쓸 일이 있을 때 참고하기 아주 적합한 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실 내가 이런 철학적 글쓰기를 할 일이 있기나 할까 싶은... 그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내가 읽는 글이야 대부분 문학이고, 비문학을 읽더라도 '개념'적인 내용보다는 '사실관계'에 가까운 책들을 많이 읽기 때문에 이 책을 활용할 딱히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철학에 일종의 환상을 품은 사람으로서, 또 아주 적지만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본기를 다지는 책은 언제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철학책을 읽고 정리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내 생각을 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니까. 무지성 철스퍼거가 되지 않으려면 이런 기본기가 무엇보다 중요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사고법>은 무척 만족스러운 책이다. 지금이야 빌려 읽었지만, 나중에 알라딘에 중고매물이 뜨면 그땐 한 권 사다가 소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