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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은 사실 좀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하고 팩트체크도 귀찮아서 넘긴 부분도 있고 뭣보다 한국의 역사학은 독립운동과 떼어놓을 수 없는데, 여기가 잘못 건들면 온갖 난리가 날 수 있는 말 그대로 벌집같은 부분이라서 좀 얼렁뚱땅 넘어가는 부분이 있으니 좀 틀린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지적해주셈.
1. 배경
한국의 역사학은 매우 유구한 전통을 지니고 있음.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그 방대함과 꼼꼼함이 세계적인 수준이고,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디테일한 서술 역시 엄청난 편임. 하지만 지금 역사학계는 당시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기 보다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근대의 역사학이라고 보는 게 맞음.
그렇다면 근대의 한국 역사학은 어떻게 태동하게 되었을까? 근대가 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서양의 역사학과는 달리, 한국의 역사학은 하나의 뚜렸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음. 바로 "식민사관의 극복"임.
이번 글에서는 일제의 식민사관과, 그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한 한국의 역사학 흐름에 대해 서술하려 함.
2. 식민사관
식민사관에는 두 가지 주요한 갈래가 있음. 첫번째는 바로 마르크스주의식 역사관을 이용해 조선은 마르크스의 보편적 역사발전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에 근대화를 할 수 없다는 "정체성론"과, 두 번째는 조선인은 문화적, 민족적 토양 자체가 문제라 근대화를 할 수 없다는 인종주의적 역사관인 "타율성론"이 있음.
이 두 가지 관점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정체성론의 주요 주장은 보편적 역사발전 단계인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선은 봉건제를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근대화를 할 수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근대화를 해야한다는 주장이었음.
두번째 주장인 타율성론은 한반도는 역사의 주체이기보단 대륙의 역사 변동에 타율적으로 영향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단 한번도 자발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저 대륙에 종속되어있다는 주장이었음.
한국의 역사학은 이러한 식민사학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성장했음. 그리고 이러한 식민사관을 반박하기 위한 대표적인 한국 역사학의 두 흐름이 바로 민족주의 역사학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임.
3. 민족주의 역사학
민족주의 역사학은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한반도 고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함. 가장 대표적인 민족주의 역사학자로는 박은식, 신채호 등이 있음. 박은식은 아마 역사시간에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박은식은 "한국통사", "한국독립지혈사" 등의 역사책을 쓰면서, 국혼이라는 개념을 강조함. 국혼이란 한 나라의 언어, 문화, 종교와 같은 소프트파워의 총합을 의미하며, 이러한 국혼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역사를 꼽음. 그래서 이를 위해 역사책 서술에 집중해서 많은 역사책을 서술했음. 박은식이 쓴 역사책인 한국통사는 최초의 한국 근대 역사책으로 꼽힘
신채호는 아마 다들 들어봤을 텐데, 사실 신채호는 민족주의 역사학자로 분류를 하긴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나키즘, 사회주의, 그리고 자신만의 사상이 다 섞여있는 조금 복합적인 사람임. 신채호는 중국과는 구별되는 한반도의 주체적인 역사를 찾으려 노력했고, 묘청의 난을 중국에 맞선 자주적인 운동으로 매우 높이 평가하는 등 한반도의 자주성을 매우 강조했음. 나중에는 낭가사상이라는 한반도의 전통적인 사상을 발굴해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음.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 역사학은 30년대 이후로 영향력이 많이 줄었는데, 신간회 해소로 인해 우파 민족주의 계열이 치명타를 입기도 했고, 사회주의 계열과도 계속 마찰이 있어왔음. 그러나 30년대에도 실학 사상을 중심으로 한국의 주체성을 복원하려는 "조선학 운동"을 벌이는 등 계속 식민사학과의 투쟁을 이어나갔음. 특히 정약용과 실학이라는 개념은 민족주의 계열에서 만들어낸 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함.
이처럼 민족주의 역사학은 식민사관의 주장 중 하나인 타율성론을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탄생하였고, 이러한 흐름은 다른 역사사상에도 영향을 줌.
4.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식민사학에서 타율성론만큼 중요한 게 정체성론임. 정체성론은 타율성론보다도 반박하기 어려웠는데, 어쨌든 조선은 근대화와는 한참 거리가 멀었고, 일본이 근대화를 해준 건 맞으니까. 그리고 마르크스가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역사의 발전이라는 논리 그 자체를 깨부수기도 어려웠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론의 논리를 반박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었음.
그리고 한국 역사학자들이 내놓은 해답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론 그 자체를 부정하기보단, 한반도가 역사 발전에서 벗어났다는 정체성론을 공격하는 방식이었음. 정체성론의 논리에 도전장을 내민 역사학자는 바로 백남운이었음. 백남운은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에 대항해 그 유명한 "집권적 봉건제"라는 개념을 주장했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조선이라는 국가는 집권적인 . 아니 어떻게 봉건제가 집권적일 수 있냐고? 사실 나도 요 부분은 잘 모름 데헷
이러한 관점은 앞으로 등장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관점이었고, 이는 해방 이후 남북한 역사학계로 이어져서 북한은 여전히 백남운식 역사구분론을 조금 개량한 수준으로 쓰고 있고, 남한 역시 꽤 오랫동안 역사학계는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음.
아무튼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론을 부정하진 않되, 한반도 역시 이러한 보편적 역사발전의 과정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역사발전의 궤도를 같이 달리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관점은 해방 이후 남북한 역사학의 주류로 자리잡음. 백남운 자체는 월북 이슈 때문에 그렇게 유명한 편은 아니지만, 백남운의 사상은 한국 역사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5. 실증사학
물론 모든 역사학자들이 열성적으로 식민사학을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인 건 아님. 당시 정치적 문제로 뜨거운 감자일 수 밖에 없는 고려~조선 시기보단, 상대적으로 비정치적인 고대사를 위주로, 랑케의 역사주의에 입각해서 서술하는 역사학 분파 역시 존재했음. 바로 실증주의임.
실증주의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이병도가 있는데 한국 전쟁 이후로 대부분의 주요 사학자들이 월북 혹은 납북을 당한 상태에서, 이병도는 한국 역사학의 대부가 되었고, 남한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맏게 됨.
다만 식민사학과의 전투의 최전선에 선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에 비해서 친일적 행보를 띄고 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함. 그래서 한 때는 랑케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음. 역사를 정치에서 배제하려고 한 랑케의 의도가 비겁하게 보였나 봄.
이처럼 한국의 역사학은 일본의 식민사학을 극복하려고 등장했으며, 이러한 흐름은 거의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음. 그러나 지금은 당시 등장한 실학이라든지, 집권적 봉건제라든지, 하호 노예제설이라든지 당시 식민사학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들이 실재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등 과거의 개념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 또한 기존의 분석 도구였던 마르크스주의나 실증주의를 넘어서서 미시사, 여성사, 환경사, 트랜스 내셔널 히스토리 등 현재 역사학의 최신 트렌드를 도입하고, 과거 사료의 디지털화와 통계 분석의 도입 등 새로운 연구 툴을 도입하는 등 변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
선추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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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예전에 수업들은 거 기억나는 거 정리해서 쓴 건데 필기노트를 잃어버려서 잘은 몰라요
승정원일기랑 조선왕조실록은 한자때문에 못읽는 연구자들 개많고 분량때문에 한자번역 만 수십년째 하고있는 마당에 뭔 ㅋㅋㅋ
식민사관이라고 편의상 말하는데 난 그 식민사관이라는게 실존하기는 했는지 모르겠음. 예시라고는 달랑 조선사편수회 하나고. 그딴 논리면 당대 일본의 역사학자가 몽땅 당시 정치에 부역했다는 인신공격밖에 안되는거같음.
야 이거보니 이글 실베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또시작이네 얘는
빨갱이애가 왠일로 옳은말하노
이 시리즈도 오랜만이네
오랜만이다 잘 보고 있다. - dc App
왜 조류(Aves)아님
랑케도 사실 민족주의 사학임 다만 그걸 실증(positivism)적으로 하자는 거고. 그렇게 해도 충분하다 이거지. 한국 (자칭) 실증주의사학이 병신인게 랑케 계승을 주장하는데 민족주의적이지 않은건 둘째치고 실증주의라고 자처하면서 역사에 대한 해석권을 지들만 쥐고 있는 양 갑질하고 타전공분야에서 역사연구하는걸 사이비 취급함 (서구에선 역사는 학제간 연구가 가장 빈번한 분야고 아예 인문학이 기본 방법론상 역사주의적 속성을 보이는데도 유족 이 유파가 개지랄이 심함) 이새끼들은 지들이 하는게 역사학적 실증주의가 아니라 경성과학 분야의 실증주의인것처럼 굴어댐 진짜 레전드 쓰레기들임. 갈수록 지들 방법론 밑바닥 드러나니까 뭐 상식적인 증거에 기반한 연구를 실증주의라고 부르는거다 운운 아주 개소리를 하고 자빠짐.
만약 실증주의가 상식적 수준의 증거기반 연구를 의미하는거면 그정도 관점은 전근대 (유학 기반) 사관들도 다 기본적으로 견지하던 관점이고 랑케랑 관계도 없음. 뿐만 아니라 실증주의가 그 정도 의미만 있다면 현 한국 역사학계의 자칭 실증주의자(=병신)들이 특별한 권위를 가진양 굴면서 해석학적 권위를 독점할 하등이 이유가 없음. 왜냐?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비전문가(타전공or학위없음)라도 증명이나 증거가 확실하면 업적을 쌓을 수 있는 것처럼 역사도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임. 이새끼들은 실증이라는 담론으로 역사학 학위의 배타적 권위를 증명이라도 해낸 양 군다는 점이 존나 역겨움.
즉 이 새끼들은 '역사학 학위'라는 기득권(=역사 해석에 대한 배타적 권위)를 '실증주의'라는 (신비화된) 담론으로 정당화하려드는 있는 병신집단인데 '실증주의'가 이 정도 권위를 가지려면 '초기근대 특정 사상가들이 '믿던' 강한 의미의 실증주의'여야만 함. 그런데 현실은 그런 '강한 의미의 실증주의'는 과학철학에서도 주류 입장이라고 보기 어려움. 오히려 진정 '실증주의'에 가까울수록 '학위'가 아니라 '방법론'이나 '증거/논리'가 중요함. 그런데 이 새끼들은 학위를 권위로 삼아 철옹성을 쌓는 행태 그 자체로 지들이 하는 짓이 '실증'에 기반한게 아닌 '해석'에 불과하다는걸 그리고 '실증'운운이 권력지향적 날조선동임을 스스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음.
실제로 한국 (자칭) 실증주의자들의 기원은 본문에 적시된 바와 같이 일본에 있고 그 일본 실증주의의 기원은 일본이 지들이 초청한 유럽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에게서 방법론이나 담론에서 얄팍하게 유리한대로 단취한 것에 불과함. 거기에 '랑케'와 '실증주의'라는 '서구의 권위'를 입힌게 일본 실증주의의 실체고, 한국 (자칭) 실증주의자들은 '서구+일본'이라는 이중권위로 포장된 '실증주의'를 지들의 얄팍한 방법론과 얄팍한 역사철학을 권위화하는데 써먹어왔고 써먹고 있다는 점에서 ㅈㄴ게 역겨운 새끼들임. 이게 ㅈ같은데 온라인 역덕들이 특유의 얄팍함으로 이런 얄팍한 담론을 그저 학위의 존재만으로 추종하고 권위화한다는 거 그리고 이런 역덕새끼들이 커뮤활동이 존나 많은 편이라 일상레벨에서 개소리를 자꾸 봐야되서 ㅈ같음
일본의 식민사학 극복->자본주의맹아론이라는 사이비 이론 들고와서 교과서 정착시킴
그건 ㅈ본도 똑같음 에도시대에 대한 역사 기술에서 상업발달이 어쩌고 개소리가 강조되는게 (일본식) 자본주의 맹아론임. 사실 그런 상업자본주의는 근대화랑 ㅈ도 관계없지만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거지. 그리고 그런 ㅈ본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에 대한 역사학 담론에 정치력을 내외로 행사해왔으므로 그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현실적 구도를 고려할 때 논문도 아니고 교과서에서 결벽증적 행보를 보이는건 인터넷 역덕 특유의 정신병에 불과함. 애초에 이런걸 문제삼기 시작하면 현행 역사학 기술 전체를 뜯어고쳐야하는데 인터넷 역덕은 아는게 환빠운운 국뽕운운하면서 스노브질하는게 전부라서 만만한거 지적하면서 자위하는거 ㅈㄴ 역겨움.
그래? 자맹론이 중국공산당에서 기원한걸로 알고있는데 이건 첨듣는 소리노
중공기원이라는건 어디서 들은건지 모르겠는데 중공이랑 관계가 실제로 있는지 어떤지랑 별개로 애초에 자맹론 자체가 비슷한걸 일본이 자국 역사에 대해서 주장했기에 대응차원에서 나온 거임. 일본은 에도시대 상업발달 + 봉건제 이게 자기들이 근대화에 성공하게 만든 맹아적 자본주의의 요소라고 주장하는 짓을 꾸준히 해왔음. 극히 최근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연구 경향이 대중 일본사 서술에 항상 묻어나옴. 대중서는 과거 연구를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경향이 있고 연구 많이 된거 위주로 쓰기 마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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