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공동승차권에 의한 첫 한국 상륙
그런 독학을 시작하고부터 4개월, 1989년 12월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이것은 학부 세미나 여행으로 여행지를 정할 때, "키무라 칸 군이 대학원에 들어가서 한국 연구를 할 모양이니까, 한국으로 가자."라는 제안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JR이 '한일공동승차권' 이란 이름의 신칸센, 관부페리, 한국 철도를 세트로 한 티켓을 판매하고 있었다. 신오사카 - 서울 간으로 편도 18,000엔 정도. 이것을 이용했다. 신오사카에서 고쿠라까지 신칸센. 거기에 관부페리에 타서 하룻밤 걸려 부산으로 향했다. 페리에는 한일 양국의 물가차를 이용한 '보따리상' 을 하는 사람들도 타고 있었고, 그녀들의 옆에는 많은 양의 바나나나 밥솥 등 전기제품이 쌓여 있었다.
1989년 12월 8일, 나는 미국에 건너갔을 때의 항공기 연결편을 별도로 한다면, 부산에서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이리하여 지도교원을 포함한 9명의 일행은, 나의 독학에 의해 익힌, 더듬거린다는 레벨 이전의 한국어로 안내받으며 부산에서 1박 후, 새마을호로 서울에 들어갔다.
서울에서는 조선왕조의 왕궁인 경복궁이나 창덕궁, 거기에 창경궁까지 돌아보았을 때 친구들로부터 '궁궐만 돌아봐서 어쩔 거냐'는 항의도 들어왔다. 마지막으로는 남북 경계선(DMZ) 투어로 판문점을 방문한 후 현지해산했다. 당연한 듯이 현지에 남은 나는 그 후 혼자서 인천, 공주, 부여, 전주, 안동, 경주 순으로 버스로 돌아보고, 부산에 돌아와서는 다시 한 번 관부페리를 타고, 약 2주간의 방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 한국 방문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옆에 앉았던 기무라 선생님으로부터, "이번은 자네에게 있어 첫 번째 한국 방문이니까 결정적으로 중요하네. 모든 것이 신선하게 보일 테니 잘 기억해 두게나. 어느 정도 공부를 하면, 그 신선함은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지." 란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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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직 KTX가 없던 시절, 그리고 일본 전자기기 보따리상이 활발하던 시절의 생활상이 신선했음.
그리고 마지막 문단의 '첫 번째가 가장 신선하고, 공부를 함에 따라 그 신선함이 없어져 버린다' 는 이른바 매너리즘에 대한 경계도 와닿았다.
- dc official App
저당시 편도 1.8만엔이면 엄청 비싼건 아니네
일본 물가는 저때부터 최근 급등 전까진 비스무레했으니 ㅇㅇ - dc App
한일공동승차권이 있었다는게 놀랍다 근데 오히려 지금은 왜 안파는지 ㅠㅠ
이책 궁금하네 일어를 몰라서 그러는데 번역본은 있을라나
요새 왜 갤안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