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사전에는 도대체의 뜻이 저렇게 나와있고, 또 저도 저런 식으로 주로 접해왔습니다만...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이기상 역으로 읽는 중인데, 영 글을 쉽게 알아먹지 못하게 쓴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대체가 도대체 무슨 의미로 쓰이는 것인지 모르겠어 여러분들의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구체적인 해설이나 주석을 읽기 전에 먼저 그냥 제 스스로 한번 이해되든 말든 읽을 생각인데요.
책의 내용들을 보시고 앞뒤 맥락을 잃지 않게끔 최대한 덩어리째로 가져왔으니 여러분의 생각을 나누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그렇지만 실제로 앞에서 특정지은 물음제기에는 도대체 아무런 순환이 놓여 있지 않다. 존재자가 그 존재에 있어 규정될 수 있다. 이때 존재의 의미에 대한 명시적인 개념을 이미 갖추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만 했다면 지금까지 어떠한 존재론적 인식도 있을 수 없어야 했는데, 그런 인식이 실제로 존립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존재”는 분명히 지금까지의 그 모든 존재론에서 “전제되었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개념으로서가 아니다. 즉 찾고 있는 그것으로서가 아니다. 존재를 “전제함”은 존재에 대한 앞선 관점취득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것도 존재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앞에 주어져 있는 존재자를 그 존재에 있어 잠정적으로 분류파악하는 식으로 그렇다. 존재에 대한 이러한 주도적인 관점취득은 우리가 항상 이미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바로 그 평균적인 존재이해에서 자라나온다. 그리고 그 존재이해가 결국에는 현존재 자신의 본질구성틀에 속한다. 이러한 “전제”는 거기에서부터 명제추론을 연역해내는 어떤 한 원칙의 정립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제기에는 도대체 “순환논증”이 놓여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물음의 대답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역적인 근거제시가 아니라 근거를 밝게 파헤쳐 제시함이기 때문이다. (2절) --- (2) 유감스럽게도 전혀 (왜 유감스러운 지는 모르겠지만. 순환논증이라고 생각하는 게 유감스러운 건가요?)
2. 지금까지는 [존재]물음을 재개해야 할 필요성의 동기가 일단은 그 유래의 고귀함에서부터 제시되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정한 대답이 없다는 데에서부터, 심지어는 충분한 문제제기조차 도대체 결여되어 있었다는 데에서부터 제시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물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알기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 물음이라는 것은 순전히 가장 보편적인 보편성에 대한 허공 잡는 사변적 용무였을 뿐이거나 실제로 단지 그런 용무일 뿐인가? 아니면 그 물음은 가장 원칙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구체적인 물음인가? (3절) --- 부정어랑 같이 쓰인 것은 아닌데, (2)로 볼 수 있을까요? 혹은 강조.
3. 이러한 현상개념의 파악에, 어떤 존재자가 현상이라고 말해지는지가 규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또 스스로를 내보여주는 것은 각기 그때마다 하나의 존재자인지 또는 존재자의 존재성격인지가 도대체 열려 있다면, 우리가 얻은 것이란 순전히 형식적인 현상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만일 자신을 내보여주는 것 아래, 예를 들면 칸트의 의미로 경험적 직관을 통해서 접근 가능한 그런 존재자가 이해된다면, 이때 형식적인 현상개념은 일종의 적합한 적용에 오게 된 셈이다. 이러한 사용에서의 현상은 통속적인 현상개념의 의미를 채워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통속적 현상개념은 현상의 현상학적 개념이 아니다. (7절) --- ??? 그냥 강조인가요?
4. 존재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여타의 분과들과 연계되어 있는 어떤 한 특정한 철학분과를 지칭하여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도대체가 어떤 앞서 주어져 있는 분과의 과제로 충분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특정한 물음이 지니고 있는 사태의 필연성에서부터 그리고 “사태 자체”가 요구하는 취급양식에서부터 어쨌든 하나의 분과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7절) --- 도저히나 전혀로 바꿔 읽는다면 (2)에 가까울 것 같아요.
5. 그러나 세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빛날 수 있으려면 그것은 도대체 열어밝혀져 있어야 한다. 둘러보는 배려에 세계내부적인 손안의 것이 접근 가능해짐과 더불어 그때마다 이미 세계가 앞서 열어밝혀져 있다. 따라서 세계는 현존재가 존재자로서 각기 이미 “그 안에” 있었던 그런 어떤 것이며, 현존재가 어떤 형태로든 분명하게 도달함에서 그리에로 언제로 되돌아갈 수 있는 그런 어떤 것이다. (16절) --- ??? (반드시가 적절할 것 같은데요.)
6. 그러나 사람들은 기호로 취해지는 그것이 분명히 먼저 그것 자체에서 접근 가능해지고 기호설정에 앞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그것은 도대체 이미 어떤 방식으로건 앞에 발견될 수 있어야 한다. 물음은 단지 이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선행적인 만남에서 존재자가 발견되어 있는가? 순수하게 앞에 있는 사물로서인지, 오히려 이해되지 않은 도구로서, 즉 손안의 것으로서인지.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전혀” 몰랐던 그런 손안의 것, 그래서 둘러봄에 아직도 가려져 있는 그것 말이다. 사람들은 여기에서도 다시금 둘러보는 가운데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손안의 것의 도구성격을, 단지 그저 눈앞에 있기만 한 것의 파악을 위해서 앞서 주어져 있는 순전한 사물성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17절) --- 반드시??
7. 속성이라는 명칭이 사물의 어떤 가능한 규정성에 대한 존재론적인 구조를 지칭해야 한다면, 그것들은 도대체 속성이 아니다. (18절) --- (2)
8. 이러한 종류의 함수개념들은 존재론적으로 단지 그것의 존재가 순수한 실체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존재자와 연관지어서만 도대체 가능하다. 함수개념들은 언제나 단지 형식화된 실체개념으로서만 가능하다. (18절) --- ??? 없어도 의미가 자연스러운 거 같은데요. 필요조건임을 강조하는 걸까요?
직접 옮겨적은 것이기 때문에 오타가 있을 수도 있어요.
혹시 잘 아시는 분들은 저 도대체가 원어의 어떤 단어에 대응되는 것인지? 모두 같은 단어인지?도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종이책에도 Ctrl+F 기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네요.
유감스럽다는거 아님?
2 3
도대체의 자리에 "아니 근데 진짜 (그러니까 ㅅㅂ)"를 넣어서 읽으시면 됩니다.
ㅋㅋㅋㅋ 딱 이 뉘앙스인거같음
번역 좆같이한거 맞지 이정도면
아 존나웃기네
도대체를 '근데 시발ㅋㅋㅋㅋ' 로 바꿔읽으시면 됩니다
어떻게든이라는 의미로 쓴거 아닌가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다 이거지 도대체라는게 약간 그런 뉘양스 있잖아 2번 항목에도 그런 뉘양스 묻어나네
글이 미치광이가 쓴 느낌이노
근데 이기상이면 먼가먼가한 먼가가 있을거임 분명
어떻게든
걍 틀딱체임
'존나 생각해봐도 좆도 알수가 없다' 라는 의미로 붙이는 만연체 틀딱 말버릇정도
다시 읽어봤는데 '오히려'랑 도대체를 바꿔서 인식하는 어떤 신경적인 증상이 있는거 아닐까?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처럼....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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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는 왜라는 의미가 강하며 접속사 정도로 이해 하시면 될 것 같고요, 유투브 예도 티비를 구독 하시면 철학 사유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이데거,니체, 등 다양한 철학 강의 있습니다 철학소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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