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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이룩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악착같은 관리로 겨우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관리할 인간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찬란한 문명은 자연에 의해 말끔히 청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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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없는 세상>

내 평점: ★★★★☆


제목부터 아주 강렬하고 흥미로운 이 책은, 2007에 처음 출간된, 생각보다 오래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세련된 느낌을 준다.

이 책은 아주 독특한 상상 하나로 시작된다.

"만약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단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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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파트는 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도시가 붕괴되는 과정을 아주 과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인간 실종 첫 36시간만에 지하 인프라가 물에 잠기고,

아스팔트 밑 흙이 씻겨나가며 도로가 갈라진다.

갈라진 도로 사이로 개척자 식물들이 찾아오고, 식물의 뿌리는 도로와 인도를 밀어올린다.

인공 난방이 사라지며 건물 사이사이의 배관들이 터져나가고, 건물 내벽이 온도변화에 따라 수축-팽창을 반복하며 건물 전체가 신음한다.

벽과 지붕선 사이의 연결부가 떨어져나가고, 외장이 떨어져나가며 단열재가 노출된다.

환경미화원이 사라지며 도로에는 낙엽이 쌓이게 된다.

피뢰침은 삭아 꺾여버렸기 때문에, 도시는 번개에 취약해진다.

만약 이런 낙엽 뭉치에 번개 한번이라도 떨어진다면, 도시 전체는 불길에 휩싸인다.

불길은 건물을 덮치며 유리창을 깨트린다.

불이 사그라들고 깨진 창문 사이로 눈과 비가 들어와 바닥에 쌓이고, 온도변화에 따라 수축-팽창을 반복하며 건물 전체가 휘기 시작한다.

공기 오염이 줄어들자 건물 외벽에는 이끼가 달라붙게되고, 이끼를 타고 담쟁이덩굴이 기어오른다.

무성한 덩굴의 무게를 견디지못한 건물의 콘크리트벽은 하나둘 떨어져나가며, 건물의 무게중심이 불안정해진다.

자연의 지독한 연속공격을 얻어맞은 건물은, 마침내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건물 하나가 무너지며 나란히 서있는 주변 건물도 도미노처럼 함께 붕괴되고, 도시는 점차 폐허가 되어간다.

무너진 콘크리트는 시간이 지나며 분해된다.

그 흔적은 무성한 풀과 나무가 덮어나간다.

콘크리트 정글은 점차 진짜 정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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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파트를 간단히 요약해봤다.

포스트아포칼립스 분위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이 책은 인간 이후의 세계만을 서술하고있지는 않다.

각 주제별로 인간 이전의 세계, 인간으로 변화된 세계, 인간이 사라진 세계를 균형있게 서술한다.

우리가 살고있는 도시만이 아니라, 산업지대, 원자력발전소, 농장, 운하, 바다, 세계불가사의, DMZ 등등 다양한 사례를 든다.

챕터3에서는 한국 비무장지대도 다룬다.

책 속에는 아주 수많은 분야의 내용이 담겨있다.

생태학은 물론이고, 임학, 동물학, 식물학, 대기학, 해양생물학, 화학, 천문학, 지질학, 고고학, 고생물학, 심지어 세계사 관련 내용까지.

그러나 이 수많은 분야를 다루면서도, 결코 깊이가 얕지는 않다.

과학 저널리스트답게, 저자가 수많은 전문가들의 치밀한 인터뷰를 통해 책을 구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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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필체는 과학교양서에 아주 적합한 형태이다.

서정적이면서도 이해가 쉽고, 그러면서도 정교하다.

내가 이 책을 환경 분야의 코스모스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느긋하게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내용이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조금씩 졸음이 찾아오는 것도 코스모스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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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에는 수많은 분야와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지만,

결국 이 책은 '환경'에 관한 책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작가가 어떠한 메세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거나, 강요하고있지 않다는 것이다.

환경 분야 책 치고는 드문 경우다.

인간 이전의 세계, 인간으로 변화된 세계, 인간이 사라진 세계를 서술해가며,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

결국 '인간으로 자연이 심각하게 변화되었다' 라는 생각이 들도록 유도해가지만, 그 과정이 전혀 불쾌하지 않다.

2

최근에 읽었던 교양과학서적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흥미롭고 독특한 주제를 내보이면서도,

가장 바람직한 교양과학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끔 하면서도, 작가 자신의 입장을 은연중에 담아내는 방식을 활용한다는 점.

수많은 분야를 쉽게 전달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아주 치밀한 현장취재를 통해 사실성도 갖추었다는 점.

환경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관련된 수많은 분야에 대한 지식도 함께 얻을수 있다는 점.

교양과학서적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