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잉여스럽게 뒹굴거리면서 읽다 말다 하다가 열흘 걸려서 다 읽었음.
사실 독갤에 주 1권 선언하기 직전에 노인과 바다를 읽었어서, 원래는 노인과 바다 감상평 먼저 올릴 생각이었음. 그런데 작품 해설 보니까 노인과 바다가 헤밍웨이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고 생전에 남겼던 다른 작품들도 많다는 걸 알곤, 이 상태에서 감상평 남겨봤자 ‘재미있다’ 정도밖엔 말 못하겠다 싶었음. 그래서 짧은 책에 대한 감상평을 섣불리 올리기보다, 이 작가의 가장 유명하고 의미 깊은 작품을 읽었으니 이것을 시작점으로 하고 이전의 작품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리고 무기여 잘있거라를 읽고 나선 내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바가 많았고, 독갤 글 조금씩 훑어보면서 헤밍웨이 작품과 관련해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아졌음. 주관적이고 긴 주접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니 최선을 다해 주의를 기울여 써보겠음.
사실 내가 김언수 작가 엄청 좋아함. 처음 접한 게 설계자들이었는데, 당시 읽은 게 거의 없던 독서 문외한이었던 난 거의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음. 김언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뜨거운 피. 재독 다섯 번은 했고, 항상 눈에 닿는 곳에 두고 심심할 때마다 꺼내 훑어봤었음. 김언수 작가 책을 추천해주시던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단어가 두 개 있는데, 바로 ‘느와르’와 ‘하드보일드’였음. 찾아보니 하드보일드(강건체)는 헤밍웨이의 문체를 논할 때 거의 수식어처럼 붙어있는 단어였음. 노인과 바다의 작가 연보에도 ‘특유의 문체를 익히기 시작’이라고 되어있어서 난 헤밍웨이가 강건체라는 스타일을 직접 만들어낸 건 줄 알고
‘어씨... 김언수가 헤밍웨이 아류인가?’
하는 멍청한 생각을 했었음. 김언수 작가가 헤밍웨이 작품을 읽고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아류라는 소릴 붙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니까 금새 접어두긴 함. 하지만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김언수 작품, 특히 뜨거운 피와 무기여 잘있거라의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게 느껴졌음.
물론 뜨거운 피의 무대는 부산의 작은 항구도시로만 한정되어있어 미시적인 느낌을 주고, 무기여 잘있거라는 1차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을 비롯해 밀라노, 스위스 등등, 세계 역사의 완전히 본격적인 주 무대는 아니더라도 그와 인접한 장소를 무대로 삼아 약간 거시적으로 느껴지는 게 없지 않게 있었음(자신이 직접 1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일을 바탕으로 썼다는 거에서 굉장히 리스펙했음)(물론 나는 두 작가 모두 진심으로 존경하고 위아래를 나눌 생각이 전혀 없음. 그저 대략적인 비교를 위해 꺼낸 말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함). 하지만 주인공이 겪는 고행과 독백 같은 것의 분위기가 너무 비숫하게 느껴졌음. 그래서 그런가, 프레드릭 헨리와 캐서린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스위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땐 모든 것이 파탄나는 사건이 일어나겠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짐작이 됐음(이건 아마 비단 김언수 작품과의 유사성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음). 어쨌거나 유사성이 많지만, 김언수의 다른 작품들까지 종합해서 바라보면 아류라는 말은 결코 어울리지 않음. 이 얘긴 여기까지 하고.
역시나 아이는 숨을 쉬지 않아 죽었고 캐서린도 죽었지. 그리고 특이한 사건 없이, 일정한 호흡을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는 것은 작가의 집중력과 체력을 괄목하게 할만했지만 이 때문에 조금 지루하였음. 이 작품의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럼. ‘즐겁게 읽었고 매우 잘 썼지만, 다소 지루했던 작품’.
하지만 아무리 뻔하다고 해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글을 쓰는 것조차 어떤 면에선 능력이라고 생각함. 작품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빠지는 점 없이, 거슬리는 점 없이 긴 소설을 완곡하게 써내는 것에 성공했다는 뜻이고,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주인공이 아주 평범함. 미국인이었지만 그저 이탈리아에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군에 입대함- 별다른 애국심이나 목표가 없음. 부모님과 사이가 나쁘지만 그들을 그다지 증오하지도 않고,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도 별달리 숙명적이거나 격정적인 계기랄 것이 없었음. 게다가 지독한 금사빠라 처음엔 캐서린이 마음이 들었다가 그새 식어서, 포옹하자고 하니까 또 싫어함. 다시 말해 흔하게 볼 수 있는, 그저 '세상을 사는 사람'임. 주인공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보는 행동유형과 똑같게 느껴짐.
증오하는 대상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함. 물론 독일군들이나 이탈리아 장교들을 처형한 병사들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품을만하지만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함.
‘이제 전쟁은 안녕이야.’
원서를 안 봐서 모르지만 이 부분의 대사가 제목(A Farewell to Arms)와 같은 것이었을 거라 생각. 어쨌든 주인공은 전쟁을 지긋지긋해하고 그곳에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어했음. 그렇게 탈영을 하고, 스위스로 빠져나가 캐서린과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음. 앞서 말했듯 말초적인 자극이 그다지 없어 지루했지만 그것 말고도 다른 탄탄한 요쇼와, 잔잔하게 행복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훌륭히 이야길 이끌었다고 생각함. 그리고 현실의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인물을 잘 전달하는 것도 신기하다고 느낌. 이렇게 꽉 차있는 소설을 읽는 것이 매우 보람찼음.
이렇게 써놓고 다시 훑어보니 지적당할만한 부분이 엄청 많네. 글이 조금 두서없게 느껴져도 책 쥐뿔도 안 읽은 독린이가 쓴 글이겠거니, 하고 넓은 아량으로 보아주면 감사하겠음. 커뮤니티에 글 쓰는 것도 자주 안 해봐서 많이 어색하네. 굉장히 뜻 깊었던 독서였고, 앞으로도 독갤 자주 들르면서 열심히 책 읽어보겠음. 언젠가 책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인내심을 기를 수 있을까?
노인과 바다 필독서라서 꾸역꾸역 읽었던 지난 날의 내가 떠오르네, 헤밍웨이는 찰나의 김정 묘사로 수십장을 할애하는 슬로우슬로우 묘사 장인이었던 것 같음.. 유튜브와 sns라는 짧은 영상매체에 눈이 익숙핸 현대사회 독자에게는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을 만한 재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 무기여 잘있거라 책은 어떤 문학적 가치가 있는지 안읽어봐서 모르겠지만
완독했단 사실만으로도 박수를 받아야 된다 생각해! 헤밍웨이가 직접 참전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서술했구나 뭔가 헤밍웨이는 격정적인 삶을 살다간 작가인것 같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