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이 쓴 책이나 의견 역시 세심하게 읽고 파고 들었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대를 비판하기 위해 상대를 이해하고, 잘 알기 때문에 더 확고한 비판이 가능하며

상대를 비판함에 따라 자신의 사상을 좀 더 확고히 만들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이지.


실제로 신자유주의학의 거부인 하이에크는 독일 사회주의 철학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좀바르트를 경멸하는 수준까지 비판했으면서도

그의 저작을 두루 읽고 이해하려 했으며, 사실상 좀바르트의 사상의 계보를 이어가는 사람은 아니었어도 그 계보를 이어가는 학자 못지 않은 좀바르트 전문가였고


칼 포퍼는 자신의 점진적 개량주의의 확립과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누구보다도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의 저작들에 심취했던 인물이다.

해당 학자들을 비판하고 까는 것에 있어서는 거의 1등인 인물이지만, 역으로 해당 학자들의 사상을 대중에게 가장 쉽게 해설해 줄 수 있는 인물 역시 포퍼였다.


좌파 학계의 거두라 불릴 수 있는 푸코의 경우에도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하이에크의 저서를 필독서라 추천하여, 당시 학생들로부터 "갑자기 왜 저러시지?"라는 반응을 받기도 했고.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처음으로 주창했다고 여겨지는

에드먼드 버크와 토마스 페인의 경우에도 끊임없이 편지를 교류하며 서로 간의 사상을 논박하는 사이였다.


신보수의 주창자인 레오 스트라우스와 프랑스 맑시즘의 대부인 코제브는 심지어 절친 사이로서

서로에 대한 공격적인 비판 혹은 해당 인물의 사상과 철학에 안타까움과 유감을 표하면서도

철학이나 사상적 주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서로를 최고의 친구라고 여기면서 우정을 과시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지식인들이나 석학이란 존재는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나 사상만 파고들진 않더라.

오히려 반대되는 대립항을 공부함에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더 발전시키거나 독창적인 새로운 길을 펴기도 하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