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1.
도서관에서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으로 두 권 골라보니
우연의 일치로 같은 작가의 책이었어요.
'운명'과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하여'가 그것이었는데,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3부, 운명은 1부라고 합니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읽다보니, 이게 어렵지는 않은데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 구조라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책읽기를 관뒀고
운명도 썩 재밌어 뵈지는 않아 하차하려 했지만, 누가 재밌게 읽었다고 하길래 읽어보니 나름 볼만해서 완독했어요.
내용은 별 거 없지만 스포는 있으니 조심하길 바랍니다.
2.
[대략적 줄거리]
운명은 사춘기 시절에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주인공의 경험을 다룬 책입니다.
재혼가정에서 자란 주인공은 데면데면한 가족관계 속에서 어쩌다보니 수용소로 향하게 됩니다.
수용소에서 오래 있다가 슬슬 인간성이 말살될 시점쯔음해서, 몸도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재수 좋게' 요양소로 옮겨지게 되고
마취제 없이 무릎 수술을 몇번이나 해서 안에 찬 고름을 짜내는 신세가 됩니다.
수술이라기보단 무릎을 짼 듯한 묘사에 가깝습니다. 수술이라고 표현되긴 했습니다만.
하여튼 그곳에서 약 5-6개월 정도 있다가 끌려간지 1년쯤 된 시점에 집에 돌아와보니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그곳에서의 경험은 잊어버리라고 충고하는 상황 속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3.
제가 읽어본 홀로코스트 관련 서적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말고는 없는데
그것과 비교해서 보자면
죽음의 수용소에서 화자는 의사 중년남성이었고, 운명에서의 화자는 사춘기 소년남성이라는 점이 일단 도드라집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많이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또한 죽음의 수용소가 일종의 수기 같은 느낌으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면
운명은 3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느낌입니다.
독자에게 '우리 상황은 이랬고 나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정도로 말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가 다르냐면
독일 군인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4.
독일 군인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는 게 그들 사상이 멋있고 그런 게 아니라
제복 칼같이 입고 와서 군기 엄격하고 쓸데없는 소리 안하고 일처리 바로 하고 촥촥하며 절도있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동경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훈련소에서 조교를 바라볼 때 마음과 비슷한 것이겠지요?
말하자면, 당시 케르티스가 느꼈던(그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쓴 책이라 보면 될 거 같습니다.
인간성이 말살되던 과정, 또 인간성을 회복시키게 도와준 상황과 사람들, 그리고 전후에 그가 느끼는 주변인들의 폭력성까지.
그가 느끼기엔 오히려 수용소에서의 삶이 더 깔끔했던 거 같다고 생각하는 장면도 나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가 무엇보다 말하고 싶었던 건 인간성 말살과정이나 그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다 나오기도 하고요)
전후에 어설프게 그의 경험을 규정시키려는 사람들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5.
그리고 그는 그 상황에 분노를 느끼는 거지요.
왜냐하면 그는 그 엿같은 상황에서도 잘 살아남았다고 느끼고 그 엿같은 경험을 부정하고 싶지 않거든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았으며, 그 안에서 인종이 뭐건 국적이 뭐건 나쁜 놈은 나쁜 놈이었고 아닌 놈은 아닌 놈이었습니다.
그 모든 요소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로 결정한다는 뜻은 과거를 부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과거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부정하지 않기 위해' 그는 이 책을 쓴 듯합니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나를 죽일 수 없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한다'라고 하면
'이 경험은 언젠가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하며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 느낌이라 생각합니다.
6.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운명이라는 뜻이다.'
작중 말미에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정해진 게 있으면 자유가 있을 수 없고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면 정해진 게 있을 수 없겠지만,
우리의 인식은 운명이 있는지도, 자유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현 상황 속에서 발버둥치는 것이 타고난 운명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의 발버둥침을 부정하지 마라'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일 테지요.
재미있게도, 이 책의 번역 제목은 '운명'이지만
원제를 직역하면 '운명 없는 것'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아마 우리에게 자유가 있되, 그 자유는 지극히 한정적이라 우리에게 한정된 운명, 즉 '발버둥침' 정도만 존재한다는 의미로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7.
전반적으로 저에게 엄청난 감흥을 가져다준 책은 아니지만
작품 중후반부터 말미까지는 색다른 맛을 보여준 책이었습니다.
특히 '모든 것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킨 경험을 끌어안으려 드는 모습이 각인처럼 가슴에 박히는 맛이 있네요.
8.
여담이지만 저자 임레 케르테스는 헝가리 내부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가는 아닌지라
수상실적은 제법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으로 연명하며 궁핍하게 살아왔으며,
02년에 노벨상 수상 이후 헝가리 내부에서 '알고 까자'라는 의식 하에 책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고 보니 못까겠다' 라는 판정승을 일궈냈다고 합니다만, 그건 그가 받은 노벨상의 권위인지 아니면 진정 작품성에 승복한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제가 딱히 염세적이라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가 걍 그런 거 같습니다.
하여튼 02년 이후로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다'라고 말하신 걸 보니 그럭저럭 편안한 말년을 보내신 거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는요. 작가는 16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