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으로 언급한 사람을 딱히 알지는 못하는데 위버멘쉬를 언급할 때 자유, 결단, 주인의 도덕, 창조적 인간을 언급한 걸로 알고 있음.
결국 그게 아니더라도 절대적 가치를 강요하는 “신” 또는 절대적 가치-헤겔에게서부터 모티프를 따온 심연-에서 벗어나 능동적 허무주의 속에서 실존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 사람을 말하겠지
익명(118.235)2023-07-29 16:12
차라투스트라에서 말한 것처럼 낙타, 사자의 단계를 넘어 아이의 단계에서 삶을 유희로 즐기게 된다면 절대적 가치들은 부숴지고 스스로 가치를 양태하는 창조적 기쁨으로 삶이 가득차게 된다고 말했으니
익명(118.235)2023-07-29 16:17
답글
세계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기만적 상을 부정하는 “결단“(능동적 허무주의), 실존 자체를 삶으로 받아들이는 “자유”, 도덕의 계보학에서 말하는 주인의 도덕, 능동적 허무주의를 통해 삶을 유희로 받아들여 얻게되는 창조적 능력이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가 아닐까. uber가 넘어선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차라투스트라의 낙타 사자 아이 단계에 연상되기하고
익명(118.235)2023-07-29 16:21
박정희 - dc App
할로이(haloi)2023-07-29 16:37
김초엽
익명(119.192)2023-07-29 16:51
아모르파티
익명(220.70)2023-07-29 17:02
히틀러
익명(211.216)2023-07-29 17:17
바로 나다
익명(220.116)2023-07-29 17:55
자기 신뢰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보면 됨
익명(58.225)2023-07-29 18:11
답글
그런데 까보니 역설적으로 자기신뢰로 가득한 사람은 자기의심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사람, 즉 자기의심이 주변에 도사리는 사람이더라~
익명(58.225)2023-07-29 18:14
카카로트
익명(118.220)2023-07-29 18:24
초인은 단정지을수 없는 인간상임 하나 알수있는건 항상 자기극복으로 파괴하며 창조함을 지속한다는 것임
직접적으로 언급한 사람을 딱히 알지는 못하는데 위버멘쉬를 언급할 때 자유, 결단, 주인의 도덕, 창조적 인간을 언급한 걸로 알고 있음. 결국 그게 아니더라도 절대적 가치를 강요하는 “신” 또는 절대적 가치-헤겔에게서부터 모티프를 따온 심연-에서 벗어나 능동적 허무주의 속에서 실존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 사람을 말하겠지
차라투스트라에서 말한 것처럼 낙타, 사자의 단계를 넘어 아이의 단계에서 삶을 유희로 즐기게 된다면 절대적 가치들은 부숴지고 스스로 가치를 양태하는 창조적 기쁨으로 삶이 가득차게 된다고 말했으니
세계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기만적 상을 부정하는 “결단“(능동적 허무주의), 실존 자체를 삶으로 받아들이는 “자유”, 도덕의 계보학에서 말하는 주인의 도덕, 능동적 허무주의를 통해 삶을 유희로 받아들여 얻게되는 창조적 능력이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가 아닐까. uber가 넘어선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차라투스트라의 낙타 사자 아이 단계에 연상되기하고
박정희 - dc App
김초엽
아모르파티
히틀러
바로 나다
자기 신뢰로 가득찬 사람이라고 보면 됨
그런데 까보니 역설적으로 자기신뢰로 가득한 사람은 자기의심을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사람, 즉 자기의심이 주변에 도사리는 사람이더라~
카카로트
초인은 단정지을수 없는 인간상임 하나 알수있는건 항상 자기극복으로 파괴하며 창조함을 지속한다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