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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panya의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수필의 형태를 띠고 있다. 주인공이 작품 속 사건과 세계관을 일기처럼 독백하며 묘사하는 식이다. 수필적 세계관이라고 명명하면 좋겠다. panpanya의 만화들은 이처럼 현실적인 수필적 세계관 속에 가상의 요소들이 가미되어 매력적으로 조화를 이루어내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장르를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하던가?
그러나 panpanya는 여섯 번째 단편집 <구야바노 홀리데이>의 표제작인 ‘구야바노 홀리데이’를 통해 지금까지 쌓아온 현실적 세계관 속에 가상의 요소가 가미된다는 불문율을 재창조한다. 연작 단편 만화 ‘구야바노 홀리데이’는 우연히 수입 음료 코너에서 구야바노라는 과일로 만든 주스를 마시고 반하게 된 작가가 구야바노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게 된 이야기를 만화로 각색하여 다루고 있는 연작 단편이다.
즉, 이 만화에서는 전작들보다 현실적 요소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가상의 요소는 힘을 잃지 않고 현실적 세계관에 가미되는 것을 넘어 침투한다. 여기서 질문, 이미 만들어진 세계관에 침투하여 그 성질을 바꾸어버릴 수 있는 요소는 어느 정도의 단위일까? 나는 ‘세계관’의 단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이 만화 속 수필적 현실 세계관에 침투하는 요소는 만화 그 자체이다. 즉, 또 하나의 세계관인 것이다.
쉽게 풀이해보자면, 작가 본인이 실제로 겪은 필리핀 여행이라는 수필적 현실 세계관에 캐릭터가 겪게 될 필리핀 여행이라는 만화적 가상 세계관이 침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 예시로 우리는 독백과 묘사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독백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할까? panpanya의 만화에서 독백은 작품의 수필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사용된다. 아마 독백들만 모아 살을 붙이면 수필이 될 것이다.
이처럼 수필적 세계관의 상징과도 같은 독백들은 전작들에서는 명확하게 캐릭터의 것(가상의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 작품 속의 독백은 작가 본인의 것(현실의 것)으로 느껴진다. 이는 수필적 세계관이 전작들보다 더 강하게 표현되고 있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독백 속에서 행동하는 것은 가상의 요소인 캐릭터다. 즉, 여기서부터 우리는 현실 세계관에 가상 세계관이 침투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제 묘사 쪽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캐릭터 묘사를 보면, 작중에서 주인공과 함께 필리핀으로 떠난 동료는 주인공을 아이라고 표현한다. 이에 주인공은 나는 어른이라고 화낸다. 이 장면은 언뜻 보면 평범한 코미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현실 세계관에 가상 세계관이 침투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panpanya의 만화에서 주인공 캐릭터는 언제나 귀여운 꼬마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만화 ‘구야바노 홀리데이’ 역시 똑같은 캐릭터 표현을 따른다. 그러나 panpanya 작가 본인은 성인이다. 즉, 동료와 주인공의 만담 장면은 꼬마 아이 캐릭터라는 가상 세계관이 성인 작가라는 현실 세계관 속에 침투하고 있는 광경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관은 가상 세계관의 침투를 나는 어른이라는 대사를 통해 성공적으로 방어해냄과 동시에, 거꾸로 이용하여 코미디로 조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물 묘사에서도 침투가 나타난다. 작중에서 작가는 자신이 구매한 여러가지 기념품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준다. 이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이 정도는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줘도 되는 거 아냐?’ 뭐, 그래도 재미있으면 된 것 아닌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이국의 물품들을 그린 그림을 설명을 읽으며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흥미가 생긴다. 이 역시 침투와 함께 일어난 조화일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가상 세계관이 현실 세계관에 침투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반대의 경우도 등장한다. 만화는 기본적으로 그림이다. 인물, 배경, 사물 등의 요소들이 모두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는 플랫폼이 만화다. 여기서 panpanya는 몇몇 장면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삽입하고 그 안에 캐릭터와 사물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현실 세계관을 가상 세계관에 침투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작가가 독백을 통해 묘사하는(수필로 묘사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필리핀 거리의 풍경들을 사진이라는 현실적 요소를 통해 시각적으로 단번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여러 캐릭터와 사물들이라는 가상적 요소를 통해 만화적인 재미까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이 역시 현실 세계관이 가상 세계관에 침투하면서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낸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panpany의 연작 단편 ‘구야바노 홀리데이’는 이처럼 침투와 조화 끝에 흐릿해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의 표현력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이처럼 뛰어난 표현력 덕분에 우리는 가상 세계관이 현실 세계관에 침투하여 조화를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극적인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반대의 과정을 통해 한층 보완된 묘사를 체험하며 작품을 더욱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읽어본 panpanya의 만화들 중 가장 뛰어난 단편집은 <동물들>이다. 동물들이라는 주제로 그려진 단편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뛰어난 단편은 ‘구야바노 홀리데이’ 연작일 것이다. 지금까지 활용된 panpanya만의 요소들이 서로에게 침투하고 조화시켜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표현력에는 정말이지 경탄하고, 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데포르메와 극화체를 오가는, 현실과 환상 너머 어딘가의 판판야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