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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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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지칭하는 범주적 개념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칭할 때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개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종교적 갈등과 같은 집단적인 문제에 대한 집단적인 해결에 관심을 두는 정치적 문제와는 사상적인 기반을 달리한다라고 오인될 수 있다.

 

그러나 Carl Schmitt가 자신의 저서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유럽 公法의 국제법과 연관하여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갈등을 (근대 자유주의 사상의 원류라고 부를 수 있는) 18세기 계몽주의의 담당자인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신학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관련하여 매우 심도 있는 고찰을 가능하게 한다. 거기에 정치신학의 핵심이 존재하며, 그의 헌법론의 개념이 도입된다. 즉 그가 도입하고 있는 세속화이론은 후술되어지는 신우파적 사상보다 역사적으로 더 낫고 훨씬 포괄적인 개념임과 동시에 그들의 모든 이론을 적과 동지라는 개념으로써 상이한 다원적 사실들과 통합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의식의 표현이다. 여기서 그의 정전(正戰)의 개념이 도출되며, 정당한 적()이라는 개념은, 더 나아가서 내전(內戰)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내전을 참고하는 것이 유용하다. 다른 한편, 법적영역에서 schmitt의 헌법학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시민 법치국가 모델을 제시한 존 롤스(John Rawls)만민법정치적 자유주의를 추천하는 바이다.

 

schmitt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바, 논의는 네덜란드와 영국을 사례로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중립적이고 순수하게 인간적인 자연법과 국제법에 관한 후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의 논거를 통하여 중상주의와 종교 간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이미 몰리나(Molina)가 바람직하지 못한 친구와 절교할 수 있는 권리를 결국 모든 국가에게 부여한 바 있으며, 푸펜도르프(Pufendorf)는 이미 공공연한 중상주의자이다. 그러한 논증의 변화는 근대 국제법의 역사와 정전(正戰)의 문제에 대하여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의 대표적인 예시로서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과 애덤 스미스(Adam Smith)를 제일선(第一線)에 내세울 수 있을 터인데, 그들의 논거를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이들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경제활동과 도덕의 엄격한 분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같은 신우파 사상가들에게로 이어지며, 최소주의적 도덕, 최소 국가를 모방하는 형태로써, 오늘날 현대에 급진적인 우파를 담당하는 세력으로써 등장한다. 그렇지만, 스미스의 국부론의 사상적 기반이 되어지는 도덕감정론에서 우리는 정확한 표현으로써 그의 도덕에 관한 본질에 눈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스미스에게서 도덕과 경제의 엄격한 분리를 완화시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이 비록 사적 재산권과 계약의 존중만을 의미할지라도, 분명하게 schmitt의 이론이 돌출될 수 있고, 개인주의적 경제주의원칙과 정치적 보수주의와의 공존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신우파사상가들에게 있어서도 부인될 수 없는 강력한 테제로서 작용된다. 적어도, 우리는 신우파의 틀 속에 경제적 자유주의의 철저한 개인주의와 상반되는 공동체주의적 요소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유의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개인주의적 경제주의 원칙이 사적 영역에 치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무정부주의를 지향하거나,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로스바드(Murray Rothbard)와 같은 무정부주의적 자본주의자들은 기본적인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한 최소국가의 형태마저 거부하면서 포로, 국방 등과 같은 최소한의 공공재조차 민간자본에 의해 공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상태가 기초하고 있는 힘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을 용인한다면 그러한 상태 역시 사법적 상태라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schmitt의 정치성의 은폐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더욱이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의 저자, 자유지상주의자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과 같은 최소정부주의자들 역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기능과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롤스가 노직과 대립하며, 정치적 입장을 더욱 공고하게 다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경제영역의 정책적 이념이라는 기본적 한계 때문에 전사회적인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념적 동반자를 필요로 한다. 미국의 경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던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와는 전혀 상이한 사상적 기반을 가지는 철학적 보수주의 또는 공동체주의가 공적 논의의 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획득하였다. 여기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도출해내게 된다면, 이 양자 사이의 동반자로서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이들의 동반자로서의 성질은 여타의 것들과는 성격을 달리하는데, 그 속에 적대라는 개념이 존재하며 모든 것은 정치적인 것으로써 환원된다. 그들의 이론이 schmitt와 대조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은 명백하며 이들의 관계가 서로 유기적인 연결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의문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법의 관련된 영역에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질서라는 것은 원래 형상적인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모든 질서는 법질서이며, 모든 국가는 법치국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