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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을 읽었다. 오래도록 두고 읽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단편(중에서도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기 때문에, 한 편을 읽는데도 제법 공을 들여 읽었던 것 같다. 글 자체가 쉽게 두고 읽을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솔직히 내가 느끼기엔 어떤 사람이나 시대의 이야기라기보단 강한 내적 논리로 풀어낸 일련의 단상들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재미가 없었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취향에 맞지 않을 뿐, 충분히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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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작품에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 '수학적이고 해석학적인 신화서' 이게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말해본다.
테드 창의 작품속에서 세계는 서사의 배경이라기보단 분석과 설명의 대상처럼 그려진다. 테드 창의 별명ㅡ그게 어디서 따로 붙어졌고 통용되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다들 알고 있는ㅡ'SF 계의 보르헤스'란 별명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테드 창의 눈에는 세계가 마치 불가해한 기호들로 이루어진 이계의 수식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단편들은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 서사성을 통해 굴러가지만, 사실 그 단편들은 하나의 세계에 대한 신화적 해석에 가깝다. 그러니까 테드 창의 작품들은 세계의 해설서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제시하는 것은 세계의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풀어가는 과정에 치중되어있다. 그리고 뭣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방식. 테드 창에겐 구조와 풀이가 중요하다. 세계는 둘로 나눌 수 있다. 선험된 구조와 그것들을 풀어나가는 해설자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세상과,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삶의 단상들. 테드 창의 세계는 이곳에서 발원하고, 그 너머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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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단편에서부터 신화적 기질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바빌론의 탑'ㅡ매우 섬세한 필치로 쓰인 이 단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장처럼 둘둘 말린 세계'의 구조였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의 목적은 이 구조와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가 무엇인지 인지하는 것, 함축해서 '메타 인지'다. 이러한 '메타적 의식'이 테드 창 작품에서 주요한 동인(動因)으로 작용한다. 두 번째 단편 '이해'는 아예 메타 인지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테드 창은 작가 노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으니까.'라는 논제에 의문을 갖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모든 것이 완벽한 세계관을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와 법칙은 단일하지만은 않다. 인물들의 목적은 대체로 세계의 해설에 치중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테드 창에게 중요한 건 이러이러한 세계가 있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그것이다.
그래서 테드 창 작품의 결말은 바로 여기로 치닿는 것까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다.' 각각의 작품에서 그들은 각각의 해설에 따라 선택을 내린다. 그것은 그들의 관점에 있어서, 그들만의 해설에 의한 그 세계의 '풀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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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네 인생의 이야기'는 테드 창의 세계관을 잘 담아낸 좋은 작품이다. 세계의 고정된 법칙에서 인간과 헵타포트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얽혀있다. 외계에 대한 이런 시선은 칼 세이건이나 아서 클라크와는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세계의 궁극적 규칙 아래에서, 우리는 각자의 다른 해설을 통해 살아간다. 헵타포드의 시선에서는 인간의 무궁한 의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시선에서는 세계의 무궁한 절대성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세계는 수학 시간에 배운 '해가 무수히 많은 방정식'과 다름이 없다. 이것은 테드 창이 세계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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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사실 힘들었던 부분도 토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문학적?인 부분에서는 글쎄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테드 창 작품의 인물이나 상황, 갈등, 서사는 미국 현대 문학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도 있는 역사적/사회적 알레고리가 없고, 인물들의 내면도 섬세하게 그려지지는 않다보니 중간중간 몰입이 쉽게 떨어진다. 그나마 좋았던 건 '네 인생의 이야기'랑 '지옥은 신의 부재' 정도였다. 물론 이거에 대고 내가 함부로 뭐라뭐라 할 것은 못 되지만, 어, 음, 솔직히 읽으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작품에 대한 감상이 어떤 인물이나 상황의 아이러니에 대한 감정보다는 보다 메타적인(이것도 지극히 테드 창적인데) 작품관 자체에 대한 감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적인 부분이 좋아지려고 하다가, 툭 끊겨버리는 그런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외모지상주의 소고 주인공은 연애 성공했냐고 아 ㅋㅋ)
더 좋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겐 아쉬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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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저러니 해도 테드 창은 참 좋은 작가다. 한국인 작가였으면 테크니컬 라이팅 말고 에세이 같은 거 써가지고 더 깊게 읽어볼 수 있었을 텐데, 작품집 두 개 빼고는 읽어볼 게 없어서 아쉽다.(아쉬운대로 챗GPT에 대한 소고 같은 것도 읽었다. 누가 테드 창은 신플라톤주의적 세계관~ 이랬던 거 같은데 어느 정도 맞는 듯?)
근데, 어, 솔직히 '숨'을 바로 읽기엔 머리 깨질 것 같아서 우회가 좀 필요할 것 같다. 레이 브래드버리로 도망가야지.
SF란 세계에서, 나의 해설은 그쪽을 향했을 법하니까.
그리고 이 세계에 그의 세 번째 작품집도 있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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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책 좋아
이 글에 나온 것처럼 강력한 내적 논리의 구축이라는 면이 테드 창이 매력적인 이유지. 숨도 좋으니까 언제 한번 시간을 들여서 읽어 보셈.
인간 감정의 묘사에 있어서는 무심한게 사실이지만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물어보는 점이 꽤나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져서 내게는 단점이 잘 안보였음.
진짜 매력적인 SF작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