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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1

젊은 국문학 여러가지 찍먹 후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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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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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한 시절을 풍미한 청소년 도서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책. 지금 2030 중 학창 시절에 이 책을 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음.


일련의 가정불화로 말을 더듬게 된 주인공이 아버지의 무관심과 새엄마의 정서적 학대 속에서 지내다 의붓동생을 강간한 범인으로 몰려 집에서 도망쳐 나와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빵집에 숨어 지내게 되는 이야기. 알고 보니 위저드 베이커리는 진짜 마법사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실제 매장에서는 정상적인 빵을 팔지만 온라인에서는 마법의 힘이 깃든 빵을 주문받아 판매한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꽤나 참신함.


큰 줄거리 안에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이 됨. 신비한 빵 소개와 더불어 그 빵을 구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옴. 결말은 다 엇비슷한데 결국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택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회피하고 무마하려 하면 본인에게도 반드시 피해가 온다는 것. 청소년 문학답게 교훈도 풍부함.


다만 소재들이 곰곰이 생각하면 죄다 섬뜩함... 학대, 강간, 자살, 트라우마, 데이트 폭력, 살인 등 읽다 보면 이거 정말 애들 보라고 쓴 거 맞나 싶을 정도로 어두움. 특히 주인공이 겪는 일들은 불행 포르노로 보일 정도로 처참함. 심지어 작가가 맘만 먹으면 더 어둡게 쓸 수 있는데 의도적으로 순화시킨 느낌마저 듦.


그러한 면이 진행을 조금 억지스럽게 보이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함. 문체도 과장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다만 중간중간 조금 생소한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굳이 꼽자면 단점이라고 해야 하나... 이 나이 먹고도 처음 보는 단어들이 꽤 많음. 문맥으로 유추되는 정도긴 한데 술술 잘 읽다가 가끔씩 덜컹거림. 청소년 어휘 향상을 꾀했다기보다는 그냥 작가의 스타일 같음. 그리고 어려운 어휘를 쓴다는 게 무작정 단점이 될 수도 없긴 하고.


내가 청소년 문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리얼리즘과 휴머니즘을 결합한 생동감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만 더 나이를 먹으면 유치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때에는 정말 말 그대로 재미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판타지(혹은 SF)적 소재임. 그런 의미에서 창비청소년문학상은 내게 특별한데 1회에는 생동감 그 자체인 ‘완득이’를, 2회에는 그와 정반대 분위기의 다크 판타지인 위저드 베이커리를 뽑았기 때문임. 기획력에 새삼 놀람.


추억 보정이 있다 보니 조금 편파적인 후기이긴 하지만 언뜻언뜻 기억만 날 뿐이라 새로 읽은 거나 다름없는데도 재밌었음. 책 자체가 하나의 잘 만들어진 달콤 쌉싸름한 빵 같음.



최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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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젊은 남녀의 인생 이야기이자 사랑 이야기. 빚쟁이들에게 도망치는 게 인생의 목적이 되어 버린 ‘구’와 구와 함께하는 인생을 집착을 초월한 운명으로 여기는 ‘담’의 이야기. 담은 죽은 구를 잊지 않기 위해, 존재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구의 시체를 먹으며(정말 말 그대로 먹는다) 여기까지 오게 된 본인들의 인생을 회고함. 제목을 풀이하면 ‘구(와 담)의 (존재와 사랑에 대한)증명’ 정도가 될 것 같음.


흔히 말하는 ‘노란장판’ 감성이 물씬 남. 주황색 가로등 불빛만 아스라이 깜빡이는 한밤 같은 분위기에 당위 없이 가난하고 팍팍한 주인공들,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대로인 현실에 돌고 돌아도 각인처럼 결국엔 서로에겐 서로밖에 없는...


냉정하게 보면 소재며 서사며 그냥 잘 쓴 인터넷 소설 같음. 작자 미상으로 떠도는 짧은 인터넷 소설 ‘그 애’가 떠오름. 읽을수록 인터넷 소설 같음을 떨칠 수가 없음. 근데 이상하게 얕거나 유치하지는 않음. 필력이 그렇게 뛰어난가? 그건 아님. 인간 내면을 어마어마하게 깊숙이 파헤쳤는가? 그것도 아님. 지리멸렬한 주인공들의 일대기를 읽기 괴로울 정도로 잘 묘사했는가? 그것도 아님! 반전이라도? 없어!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죽은 연인을 먹는다는 생소하면서도 섬뜩한 소재와 (분량이 짧긴 하지만) 큰 탈선 없이 두 주인공의 인생을 교차 시점으로 안정적이게 풀어가는 문체 때문이 아닐까 싶음. 감정이 과하게 터져 나오거나 상황을 끝도 없는 극한까지 몰아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메마르거나 담담하지도 않음.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눅눅하고 끈적하고 눅진한 감성을 잘 살림.


단점으로는 앞서 말했듯 당위성이 뛰어나진 않음. 가난해서 가난하고 힘들어서 힘듦. 부모가 빚을 못 갚아 대물림되었다던가 돌봐주던 이모가 돌아가셔서 더 이상 보호자가 없다던가 이유야 있으나 주인공 둘 다 성향이 지독한 패배주의적 회피형이라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임. 둘의 사랑도 어릴 적부터 함께였기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큰 이유가 없음. 물론 사랑엔 이유가 없다지만 보이는 관계에 비해 너무 이르고 깊음.


소재에 거부감만 없다면 나름 재밌게 읽을 수 있겠으나 소재와 더불어 분위기 자체가 낮고 우울해서 호불호 많이 갈릴 듯.


그런 면에서 아무리 감성적이고 약하게 표현되었더라도 고어는 고어. 나는 읽기에 힘들었음.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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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을 ‘두근두근 내 인생’ 한 권으로 끝냈으면 아쉬울 뻔했음. 왜 김애란은 단편이라 하는지 여실히 느낀 책. 다만 장편이 너무 별로였기에 빛나 보이는 거지 어마어마한 대작까지는 아님을 미리 밝힘.


삶과 일상에서 희망의 궤적을 그리다 사라지는 비행운(雲)과 지난하고 지질한 현실 속 비(非)행운에 대한 단편집. 단순히 불행을 불쑥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롤러코스터처럼 상승과 하강에 따른 운의 획득(착각)과 상실을 다룸. 물론 마냥 우울한 얘기도 있긴 함. 다만 그럴 땐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과 재해를 매개로 삼음. 지금까지 읽은 젊은 국문학 중 자연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일상과 연관 짓는 작가가 있었나 싶음. 자칭 SF 작가들은 자연 묘사에 대해 김애란한테 배워야 함. 풍경처럼 거슬리지 않음.


‘두근두근’에서 기본적으로 냉소적인 작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정도는 들어맞는 듯. 근데 그 차갑다는 것도 꽝꽝 언 얼음이 아니라 얼음이 담긴 컵에 맺힌 물 같은 차가움이라고 해야 하나... 온기에 의해 녹고 있지만 결코 본래의 온도는 잃지 않는 느낌임. 즉 마냥 차갑진 않지만 결코 따스한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 이러니 도키도키가 그렇게 재미없었지...


일단 글이 쉽게 쉽게 잘 읽힘. 중간중간 어려운 단어가 있음에도 막힘이 없음. 문장력 하나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읽은 것 중 가장 좋음. 한 문장 한 문장 잘 벼렸다는 느낌보다는 잘 빚어냈다는 느낌이 큼. 칼날 같은 강렬한 힘이 아닌 도자기 같은 유려함이 돋보임. 강렬과 물렁 사이 단단함의 균형을 잘 잡음.


화자의 성별과 시점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임. 여작가가 그린 남화자를 보면 꼭 이 사람이 화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주인공을 통해 특정 성별을 논하고 싶어서, 쿼터 맞추려고 혹은 나 이렇게도 쓸 줄 안다고 보여주려고 어거지로 쓴 느낌이 늘 강했는데 이 정도면 상황과 이유 등이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함. 그리고 요즘은 3인칭과 1인칭을 혼재해서 쓰는 작가들이 많은데 딱 정석적으로 씀. 한 마디로 이야기의 호불호성 외에 거슬리는 게 없음.


다만 문장마다 묘사에 대한 강박이 조금 느껴짐. 같은 뜻의 문장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표현하려고 작가가 의식을 강하게 갖고 쓴 모습이 보임. 그리고 잘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글 자체에서 예민함이 숨 쉬고 있는 것 같음. 이게 김애란의 글이 자신과 잘 맞는지 안 맞는지의 척도가 될 듯함. 표현하기 힘든 예민함이 모든 작품마다 스며들어 있음.


또한 이 단편집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모든 작품들이 전부 다 우울하고 어딘가 좀 휑함. 부조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잘하거나 개인적이고 단순히 운이 없다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중의적인 뜻으로 비행운을 그렸다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해피엔딩이라고 할 만한 게 단 하나도 없으니 읽다 보면 지침. 그런데다 이야기가 항상 기승전결에서 전에 끝나는 것처럼 느껴짐. 뒤에 뭔가가 더 있어야만 할 거 같은데 뚝 끝남. 그렇게 끝나는 것이 ‘비행운’을 극대화하는 기법일 수 있겠지만 읽는 입장에선 허탈하고 피곤함.


표제에 맞게 글을 쓴 게 아니라 그동안 쓴 단편들을 모아 적절한 제목을 붙인 것이니 어쩌면 다른 단편집의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는 게 읽고 난 후 드는 가장 큰 아쉬움이자 단점임.


추천작: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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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달려라 아비’와 둘 중에서 고민했는데 제목이 이게 더 끌려서 읽음. 현재까지 작가의 가장 마지막 단편집이라 더 궁금하기도 했고.


‘비행운’이 일상 속 행운과 불운을 다뤘다면 ‘바깥은 여름’은 그 어떤 불운보다 불운 그 자체인 죽음이라는 소재를 통한 이별을 많이 다룸. 정말 거의 모든 작품에서 누군가 죽음. 밖에는 여름이라는 제목처럼 소실로 인해 멈춰버린 누군가의 현실과 그딴 것과 상관없이 잘만 흐르고 있는 실제 현실의 괴리감... 까지는 아니고 사람과 세상 사이의 온도차... 까지도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걸 보여줌. 이런 일이 있었어, 이렇게 되었어, 어떡해야 하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도. 상황 설명 끝, 자,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매 에피소드가 인물의 자조적인 질문으로 끝남. 보기에 따라선 허무할 수도 있고 여운이 깊다고 할 수도 있음.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같은 현재를 살고 있어도 모든 사람의 시차와 계절은 각각 다르다, 가 될 것 같음.


큰 감상은 비행운과 다르지 않음. 아니나 다를까 기조 자체가 먹먹하고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로 끝나기 때문에 읽다 보면 지치는 건 매한가지. 근데 허탈함은 덜함. 이상하게도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루는데도 전작 비행운보다 허탈함이 덜함. 심지어 더 가볍다는 인상까지 받음. 작품의 밀도가 낮다는 게 아님. 감정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읽기에 더 수월하다는 뜻임. 그건 아마 작가가 본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비극을 최대한 완만하게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음. 비행운이 물에 가라앉는 느낌이라면 바깥은 여름은 물에 떠오르는 느낌임.


그 외 장점으로 다양성을 들 수 있음. 화자를 다루는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음. 정말 각양각색의 죽음과 이별을 보여주는데 어색한 면이 없고 자연스러움. 또한 문장력도 빼놓을 수 없는데 묘사력이 뛰어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음. 다만 조금 과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임. 힘을 조금만 뺐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서늘한 예민함도 같이 죽을 것 같아서 이 정도가 베스트인가 싶기도 함. 그리고 비행운 때도 느낀 거긴 한데 의외의 위트가 있음. 읽다 보면 전혀 웃을 장면이 아닌데 피식하게 됨.


다만 앞서 말했듯 내용들이 다 허탈하고 허무함. 축축 쳐짐. 근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단점은 인물들의 뒷이야기가 딱히 궁금하지 않다는 것임. 단편의 백미는 짧은 내용 속 완벽한 기승전결을 즐기거나 불안정한 완결을 통해 독자 스스로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김애란은 불안정한 완결을 끝으로 그냥 끝인 것 같음. 애매하게 마무리되는 상황도 한몫하지만 모든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그렇게까지 매력적이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음. 책을 덮으면 인물보다 줄거리의 대략적인 흐름과 인상만 기억이 남. 인물의 상황이나 생각을 성별과 연령을 막론하고 그리는 것은 뛰어나지만 책의 주인공에게서 기대하는 그 약간의 특별함을 채우는 것은 부족함.


또한 작품들이 전부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보여주는데 반해 삶에 대한 통찰력이 보이는 문장이 별로 없음. 좋다고 느낀 문장들은 전부 독특한 묘사였지 작가만의 철학을 보여주거나 작품 전체를 꿰뚫는 문장은 없었음.


그러나 어쨌든 본인만의 영역이 확고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왜 한때 센세이셔널했는지도 알 것 같음.


추천작: 입동



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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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독갤에서도 간간이 감동적이라고 보이길래 궁금해서 읽은 책.


훌륭한 코끼리인 늙은 코뿔소와 훌륭한 코뿔소인 아기 펭귄이 ‘바다’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 1부는 코끼리들과 함께 안락하게 지냈지만 자신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어 무리에서 나온 코뿔소가 가정을 갖고, 인간들에 의해 가족을 잃고, 동물원으로 구조되고, 또다시 인간들에게 동료를 잃고, 동물원을 탈출하고, 버려진 알을 품고 있는 펭귄을 만나 함께 떠나는, 코뿔소가 살아온 여정을 보여주고 2부는 그 알에서 태어난 아기 펭귄과 코뿔소의, 서로에게 서로밖에 남지 않은 이들의 길고 긴 밤을 보여줌.


줄거리 요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남. 오죽하면 코뿔소가 삶을 버텨온 이유가 복수를 향한 분노겠냐고... 그것도 청소년도 아닌 진짜 애기들이 보는 아동 문학에. 이야기 자체가 조금은 거칠고 격한 면이 있음. 하지만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따뜻하지 않고 교훈을 단순하게 내리꽂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 아동 문학과 차별을 갖는 것 같음. 상징성이 뛰어나 생각해 볼 거리가 많고 속도감이 뛰어나 흡인력이 좋음. 무엇보다 삽화를 이용한 희망적인 결말이 맘에 듦.


다만 아동 문학의 흐름도 순문학의 ‘트렌드’에서 비껴가고 있지 않다(못하다) 느껴졌음.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으로 인해 피해받는 죄 없는 동물들과 동물원이라는 장소에 대한 고찰(동물권), 몸이 불편한 동료를 위해 기꺼이 동료의 눈과 발이 되어주는 동물들(장애인권),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끝없이 생각하는 주인공들(자아 성찰), 코끼리 무리에서 코뿔소로, 펭귄들과 코뿔소에서 아기 펭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삶의 굴레(연대와 화합), 버려진 알을 품던 두 수컷 펭귄이 알고 보니 서로를 연인이라고 칭하고 있었다는 점(퀴어) 등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나 익숙한 재료들임.


그러나 익숙한 만큼 문학의 주제로 삼기에 좋고 교훈을 뽑아내기에는 더없이 안성맞춤인 재료들이란 건 분명함. 또 작가의 역량이란 낯익은 것들을 어떻게 낯설게 배합하는 데 있는 것 아니겠나. 동물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어린이 독자를 상정한 조금 낮은 시선을 통해 뻔함을 낯섦으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고 봄.


여러모로 성인이 읽어도 충분히 감동받을 책이라고 생각함.



박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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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댓글에서 추천받고 다시 한번 도전한 박솔뫼. 간단한 감상은 책에서 발췌한 문장들로 대체함.


‘페이지는 30장쯤 넘어갔지만 무슨 내용인지 뭐가 어떻게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얼핏 들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 것도 같지만 차분히 생각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머리만 아팠다.’


‘책은 엄마의 이야기처럼 읽는 대로 빠져나갔다. 무슨 내용인지 읽어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저 글자들만을 읽어나갔다.’


여전히 낮은 채도, 여전한 중얼거림, 있는 듯 없는 듯한 서사, 죄 나사 하나씩 빠져있는 인물들, 노래하듯 읽히는 문장의 리듬감, 누가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누가 말해도 상관없을 대사들, 완결에 대한 궁금증 하나로 버티게 하는 힘, 그 끝에 찾아오는 공허함... 단편집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 이 한결같음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듯함. 이해나 납득보다 인식이나 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죽 읽어나가면 나름의 맛이 있긴 하지만 독특함을 방패로 공허함을 포장하고 있으니 재미없다는 감상도 아주 나쁜 말은 아닐 것임.


대구가 배경이고 일본에서 살다가 잠시 한국으로 온 ‘우나’, ‘우미’ 자매와 4수생 ‘배정’, ‘나’(이름 안 나옴)의 이야기 우나는 가출 후 사망한 아버지가 좋아했던 ‘준’이라는 미국 가수에 대해 공부하듯 파헤치고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는 우미는 매일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이 돌아다니고 그런 우미를 좋아하는 배정과 고등학교를 그만둔 나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데 나는 학원과 더불어 도서관에 자주 가고 이렇게 넷의 이야기이고 나와 배정은 종종 우나네 집에 놀러 가는데 나는 배정보다 더 자주 놀러 가고 나랑 우나는 우나의 방 침대에 누워 커피를 마시고 떠들고 우미를 웃게 하려고 하고 우나는 준의 음반 기획자가 포틀랜드 출신이라는 이유로 포틀랜드에 대해 공부하고 그 시절 사람들이 공연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뉴욕에 대해 공부하고 준이라는 존재는 대체 우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우미는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건지 왜 우미는 배정이랑 사귀지도 않으면서 잤던 건지 배정은 우미를 왜 그렇게나 좋아하는 건지 나는 우나를 좋아하고 우미를 좋아하고 배정을 좋아하고 그중에 우나를 가장 좋아하고 근데 그게 과연 정말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건지 좋아함과 혐오함은 동시다발적인 거라는데 그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뭐 어쩌란 건가 싶고 일어난 혹은 일어날 일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무서워 묻어두고 열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 아 모르겠고 겨울에 시작한 이야기가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가며 끝이 나고 도시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도시 개발이나 대통령에 대한 언급을 보면 그냥 괜히 ‘그럼 무얼 부르지’가 생각나고 이런 걸 정치적 요소라 할 수 있나 싶은데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걸 조금씩 섞는 게 작가의 스타일인가 싶고 아무튼 친하다면 친하지만 확고한 구심점이 없는 넷은 그렇게 천천히 멀어지다 나중에 다시 만나기도 하는데 여기서 누군가 어떻게 되는 건 스포일러고 해설도 이런 식으로 작가 문체 패러딘지 콜라준지 뭔지 해서 늘어지는데 진짜 끝내주게 재미없는데 그것까지가 이 책을 완성시키는 것 같고 아무튼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서 장편이 된 게 아니라 단편으로 끝날 얘기를 의미 없는 문장 놀음으로 늘려대서 장편이 된 것 같음을 떨칠 수 없음이 이 이야기를 끝까지 참고 읽은 내가 내리는 단 하나의 결론임을 밝힘과 동시에 어째선지 이것이 맞는 감상인지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조금 슬프기도 했다가 감상에 정답과 오답은 없기에 그래 그런 거야 하고 넘어가는 와중에 어떤 확신이 들었는데 그건 바로 나랑 박솔뫼는 안 맞다는 것이었다 음 그렇다 그런 것이다.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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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이래서 한 작가를 두 권 이상 읽어야 함. ‘보건교사 안은영’만 생각하면 읽은 지 한참 지난 지금도 까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는데 이 책으로 인해 분노가 조금 사그라듦.


제목에서 유추되듯 50여 명이나 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임. 사실 말만 피프티지 목차에 있는 인물들을 전부 세면 51명이고 한 챕터 내에 표제 인물 외 다른 사람들도 등장하니 피프티라는 말은 그저 ‘수많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면 될 듯.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초단편으로 엮음. 장편이라기보다는 연작에 가까움.


주 무대는 병원임. 서울에서 차로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수도권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 인물들은 의사가 대부분이지만 단순히 내과, 외과뿐 아니라 방사선, 마취 등 과도 다양하고 간호사, 닥터 헬기 조종사, 이송기사, 하다못해 보안요원, 인사과 직원 등 병원 내 거의 모든 직업들을 다룬다고 보면 됨. 거기에 공중보건의 등 의사로서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직업들도 많이 나옴. 다 읽고 나면 대학 병원 안에서나 의사 외 다른 의료계 직업들에 대해 웬만큼 알 수 있음. 하나하나 깊진 않지만 워낙에 넓음.


근데 여기서 안 끝나고 의사의 가족, 환자, 환자의 가족, 의사가 만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아는 사람들... 51명을 의료진 외에 다른 인물들로도 꽉꽉 채워 넣음. 인물 관계도가 방사형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감. 이 사람 저 사람이 여러 에피소드에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아예 다른 이야기를 들고 여기저기에 불쑥불쑥 등장하기도 함. 듬성한 듯 촘촘히 엮어 놔서 얘가 누구였더라 하며 조금 짜증 날 수도 있는데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함. 하나의 거대한 퍼즐이자 시트콤 같음. 모두가 주연이자 조연임.


전작 ‘안은영’과 비교해 볼 때 안은영에선 세월의 흐름이 급작스럽고 조연들이 다 너무 일회적이라고 깠었는데, 그러한 면들을 여기선 오히려 작품 자체의 특성으로 살려버림. 어떤 사람이든 가까이서 살펴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소설 속 주인공이라는 걸 전제해서 그런지, 애초부터 제목에 수많은 사람들이라고 못 박고 시작해서 그런지 인물 간 구성이 조금은 억지스러운 것도, 한 인물의 연대기를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다 소개하려 하는 것도 왠지 모르게 납득이 감. 안은영을 먼저 읽고 이걸 읽으면 단점만 뽑아서 장점으로 잘 살렸네, 싶을 거고 이걸 먼저 읽고 안은영을 읽으면 장점만 뽑아서 단점으로 만들어버렸네, 싶을 듯.


단점으로는, 이야기를 위해 소재를 너무 남발한다고 느낌. 하나의 전체적이고 확고한 흐름이 없다시피 해서 큰 기둥 없이 곁가지로 살을 붙여나가기 바쁨. ‘다양함’이 정체성이자 장점이지만 판도 깔렸겠다, 그만큼 무기 삼아 휘두르고 싶은 대로 막 휘두르는 것으로 보임. 쓰고 싶은 건 써야 한다는 작가의 고집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보여주고 싶은 걸 전부 보여주려 하니 읽는 입장에서는 근데 이 책 왜 안 끝나지? 무슨 할 얘기가 더 있는 거지? 얘는 뭐임? 중요함? 이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음. 모두가 중요하면서 중요하지 않기에 생기는 문제 같음. 게다가 아무리 다양한들 모든 인물이 ‘선한 상식’ 안에서 움직이기에 극도로 다양하다고 할 수 없는 것도 단점임. 그나마 다행으로 다양성이 강박으로까지는 보이지 않는데, 안은영도 읽은 사람으로서 판단해 보면 이쯤 되면 그냥 작가가 이런 걸 즐기는 것 같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거대한 책 속 공간 안에서 서로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을 듯 그리는 걸. 정말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 알고 그 좋아하는 것을 글로 쓰는 걸 좋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듦. 기본적으로 사람 자체에 흥미가 많은 듯함.


주제가 시의성 넘치는 것도 장점이자 단점임. 살인, 폭행, 싱크홀, 데이트 폭력, 층간 소음, 피임, 달동네, 가습기 살균제, 성소수자, 치매, 화재 등 유행이다 싶은 소재는 다 있음. 2010년대 문학의 모든 트렌드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먹다 체할 지경임. 그리고 여기서 앞서 말한 ‘다양성의 단점’이 중첩됨. 병원이 주된 공간이다 보니 사건 사고가 많은 건 이해하지만 모든 인물마다 비슷한 듯 다른 에피소드를 부여하고 또 어디선가는 하나로 합치려 하니 그 많은 상황들에 독자는 피로감을 느끼게 됨.


소재가 소재이기도 하고 선입견에 비해 내용들이 힐링 위주가 아닌데 어째선지 ‘인류애 회복’ 정서가 느껴짐. 작가의 기본 색채 자체가 다정하고 따뜻해서 그렇다고 생각함.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이나 유쾌함이 빠지지 않음. 극복의 매개체가 운이나 운명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이 책의 분위기를 따뜻하게 해줌.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 회복한다. 책 속 구절인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가 이 책의 주제라고 생각함.


이래저래 말이 많긴 했는데 어찌 됐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그려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조금 신기하게 느껴짐. 오죽하면 이 책이 작가의 정신세계의 정수로 보일 정도임. 이 한 권으로 정세랑이라는 작가 자체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음.


최은영의 ‘밝은 밤’ 이후로 간만에 하나 건짐. 재밌게 잘 읽었음. 마지막으로 장점 하나 더. 의외로 로맨스를 잘 그림.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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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Q&A


Q: 책 사진은 어디서 가져오는 거임?

A: 알라딘에서 복붙 교보는 묘하게 사이즈가 작음


Q: 왜 점점 감상이 길어짐?

A: 원래 다 읽고 한 번에 몰아 썼는데 이제 잊기 전에 바로바로 쓰다 보니 길어짐;


Q: 다음엔 뭐 읽을 예정?

A: 정세랑 하나 더 읽고 (드디어) 황정은 읽고 최은영, 구병모, 김금희 순으로 갈 예정 중간중간 끌리는 거 섞고


Q: 남작가는 안 읽음?

A: 궁금증 우선순위에서 밀림 아마 다다음 번쯤에 슬슬 읽을 것 같음


정세랑 ‘시선으로부터,’도 빌려놨는데 독태기가 온 건지 겉절이에 질린 건지 진도가 영 안 나가서 실패... 8월엔 더 열심히 읽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