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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지만 번역본이 절판도 절판이거니와 중고로도 구하기 힘든 희귀품으로 손꼽히던 책이라 미루고 있다가, 근처 도서관에 있는 걸 발견하고 상호대차로 빌려와봤다. 읽어볼 만한 글이었지만, 이 번역본을 그렇게까지 찾아야했는지는 약간 의문이기는 하다. 번역 상태가 나쁘다고까지는 못 말하겠지만, 편집 상태는 끔찍하고(오탈자가 쉴세없이 몰아친다) <아다>의 배경 설정 상 꽤나 중요할 만한 여러 언어들의 교차나 말장난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있는 탓이다. 일례로, <아다>에서 영어와 러시아어 사이의 상호교환은 그 배경 장소 안티테라의 괴상한 지리적 상황과 거주 민족, 사회 구조에서 우스꽝스러우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원어 <아다> 주석본과 함께 보고 있자면 많은 것들이 사라져 있다. 정말로 유의미한 번역본 <아다>가 나오려면 나보코프의 다른 글, <재능>을 보는 것처럼 철저한 주석이 있어야 할 테다. 그래도 어쨌든 한국어로 대략적인 닻을 내려놓으며 원어를 참고하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나보코프 연구로 유명한 브라이언 보이드가 운영하는 <아다> 주석본 웹사이트로, 정말 쉽지 않은 사이트 디자인을 제외하면 <아다>라는 이 요상할 정도로 서로 얽혀 있는 글의 여러 모티브나 안티테라와 우리 지구 사이의 흥미로운 차이점들을 둘러볼 수 있다. 비록 전부를 읽지는 않았지만, 몇몇 요상한 부분들을 이 사이트에서 찾아보면 아니나 다를까 괴상하면서도 재밌는 이야기들을 몇몇 알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미녀와 야수> 모티브가 어떻게 <아다>에서 몇 번이고 변주되면서 주인공 반과 그 연인이자 남매 아다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다른 여러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투영되거나 암시되며 실재를 가리곤 하는지 같은 것들. 또는 반과 아다의 아버지 "데몬"을 포함해 이 남매의 가족 일대기가 어떤 성경 모티브를 갖고 있는지. 읽을 때에는 사실 꼭 중요하지는 않다. 몇몇은 정말 중요하지만, 어차피 처음 읽을 때는 눈치 못 챌 정도로 숨겨져 있으니 중요하지 않다고 봐도 된다.
<아다>는 기본적으로는 아흔이 넘은 화자 반이 자신의 연인인 아다와의 기억을 회상하는 글을 쓰며, 아다가 이 글에 이따금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아다는 계보 상으로는 사촌이지만 정황적 근거와 외모 묘사에서 대놓고 암시하는 것을 감안하면 남매일 것이 분명하며, 이 둘의 근친상간은 매우 낭만적이고도 외설적으로 그려지며,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지만 결국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를 생각하면 나름대로 평온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셈이다. 이들이 사는 안티테라, 혹은 데모니아라고 불리는 세상은 괴상하게도 신대륙 전체를 포함하는 아메리카라는 나라와 러시아 전체와 아시아의 일부를 포함하는 타타리라는 나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러시아인(혹은 슬라브족?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이며 덕분에 아메리카의 사용 언어는 주로 러시아어, 프랑스어, 그리고 약간의 영어다. 여기에는 증기기관을 포함한 여러 기술이 존재하지만, 전기의 사용은 "L 재앙"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인해 지양되고 있으며, 여전히 귀족들이 존재한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내용을 정리한 것이고, <아다> 속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나보코프의 다른 여러 글들, <롤리타>나 <창백한 불꽃>처럼 <아다>의 화자 반 역시 믿을 수 없는 화자임이 틀림 없다. 반의 서술은 이따금 낭만적 묘사와 실제 묘사 사이를 넘나들며 세부 사항을 뭉개기도 하고, 그것이 그저 문학적 표현을 위한 허용이라고 생각할 만도 하지만 이따금 아다의 주석을 통해 넌지시 제시되는 단서는 그것으로 뭉개진 세부 사항에 생각 이상으로 야만적이거나 중요한 사건들이 있는 것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아다와의 정사를 촬영한 이를 찾아가 장님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은.) 이 회고록의 마지막에서 글을 정리하며 이야기하는 뉘앙스가 다른 의미로 읽으면, <창백한 불꽃>의 화자나 <롤리타>의 화자처럼-<롤리타>를 읽어본 사람들에게 던지는 유명한 질문: 돌로레스와 험버트가 죽었다는 게 어디에 나왔을까?-아다와의 동반자살을 암시하는 것 같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여기에서 이 서사 속의 수수께끼를 파고드는 것도 <아다>를 읽는 한 방식이겠지만, 또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아다>가 나보코프의 회고록과 갖는 관계다. 이 안티테라라는 세상과 반의 삶이 나보코프의 난민으로서의 삶과 어떻게 조응되는지를 <말하라 기억이여>와 함께 읽어보고, <아다>의 반이 서술하는 삶과 현실에 대한 가치관을 생각해보면 꽤나 흥미로운 가설이 등장하는 탓이다. 안티테라에서 사람들은 "테라"라고 하는 가상적인 대안 세계를 자주 생각하곤 하는데, 이 "테라"는 우리가 사는 지구 그 자체다. 반의 문학적 소양과 귀족적 정신, 아다의 학구적인 열정과 냉정한 성격이 함께 이 <아다>라는 회고록을 함께 낳으며,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듯 어떤 정보들은 가려지고 어떤 정보들은 넌지시 제시되는 <아다>라는 글을 생각해보면, 나보코프가 반과 아다라는 자신의 두 속성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아다>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반이 가리려는 사실이 아니라, 반이 어떤 것을 어떤 이유로 가리려고 하는지가 관건이 된다.
그런 여러 가지 이유들을 감안해보며, 브라이언 보이드가 <아다>에 대해 쓴 책을 한 번 읽어볼 계획이다. 현재까지도 <아다>에 대한 확실한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어차피 몇 년 쯤 뒤에라도 다시 한 번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보코프답게 볼쉐비키 혁명 이후의 러시아는 완전히 무시하는 소설인가
되게 좋네요
주석 겁나 많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