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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이주희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1995년에 EBS PD로 입사

- 다양한 역사 관련 프로그램 제작

- 2014년에 EBS 다큐프라임 <강대국의 비밀> 제작


2. 집필의도


- 1여년 동안 강대국의 조건을 알아내기 위해 세계적인 석학들을 찾아가서 인터뷰와 각종 취재를 하게 됨. 그 과정에서 강대국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다양성'과 '관용'이라는 통찰을 얻게 됨. 이 책은 그 통찰을 공유하기 위한 것.

- 들어가는 말에서 바나나의 비유와 리콴유의 말을 소개함. 바나나는 씨가 없고 꺾꽃이 방식으로 재배를 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순종이라고 함. 따라서 전염병이 돌면 한 개체가 몰살당할 위험이 있다고 함. 실제로 1960년대에 사람들이 먹던 바나나의 품종은 더 크기가 크고 당도도 더 높았다고 함. 그러나 전염병 때문에 몰살당하고 말았음. 이처럼 순종은 환경변화에 취약함.

- '소프트 파워' 개념을 주창해서 유명한 조지프 나이는 한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를 만나서 "중국이 언제쯤 미국을 추월할까요?"라고 물어봤다고 함. 그러자 리콴유의 대답은 이러했음. "중국은 미국을 추월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국의 인구는 13억이지만, 미국의 인적자원은 70억이기 때문이다."


3. 목차 및 주요 내용:


이 책은 로마, 몽골, 대영제국, 네덜란드, 미국 이렇게 5개 강대국의 역사를 조망함. 그 중에서 미안하지만 네덜란드는 별로 관심이 안가서 스킵했음. 이 책은 각 장마다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는데 처음에 역사적인 사건을 소개하고 그 뒤에 어떤 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성과 관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함. 각 장마다 내 나름대로 부제를 붙여봤음


①로마 - 로마는 어떻게 한니발에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 페니키아는 북아프리카에 자리잡은 고대 국가로 매우 뛰어난 항해술을 보유했고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를 일주한 것으로 알려짐. 또한 제도적으로도 선진국이었는데 로마의 원로원의 시초가 사실 페니키아에서 시작된 것이었음.

- 떠오르는 강대국이었던 로마는 페니키아와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별여서 승리함. 이것이 1차 포에니 전쟁임.

- 페니키아의 유력 가문이었던 한니발의 아버지는 일족과 가신들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이주함. 이건 훗날에 로마를 공격하기 위함이었음. 그리고 아들 한니발을 바알 신전으로 데려가서 "로마인과는 절대 친구가 되지 않겠다", "로마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 라는 맹세를 시킴. 재미있게도 "한니발" 이름 자체가 "바알신의 은총"이라는 뜻이라고 함. 그야말로 로마는 가문의 원수였고 한니발은 로마에게 복수하는걸 숙명으로 여겼다고 함.

- 마침내 한니발은 코끼리와 기마 부대를 포함해 5만의 병력을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 반도로 진격함. 이 과정에서 병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함. 그러나 한니발은 고대 최고의 명장 중 하나답게 한니발의 군대는 이탈리아 북부를 휘저었음. 한니발의 목표는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로마의 동맹국들을 이탈시켜서 로마를 고립시키는 것이었음.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이 적은 병력으로 대제국 페르시아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이유도 페르시아가 느슨한 다민족 연합체였기 때문임

-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로 로마군 5만명이 전사했음. 이 전투로 집정관을 포함하여 귀족이 주축이 된 기마대까지 몰살당하는 등 로마는 한니발에게 완패했음. 그러나 이러한 대패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동맹국들은 로마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켰음.

- 그 이유는 로마의 관용성에 있음. 로마는 복속된 지역의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나눠줬음. 심지어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가문은 이민족 출신임.

- 결국 전술에서는 완승했지만 전략에서는 완패한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하고 로마는 이후 제국으로 발돋움함

- 카르타고의 복속 이후에 로마의 황제 중에는 카르타고 혈통이 황제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음. 심지어 그 황제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라틴어를 아예 못하고 카르타고어만 할 줄 알았다고 함


②몽골-초원을 누비던 부족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을까?


- 몽골제국이 건설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회의가 열림. 회의의 주제는 앞으로 어느 방면으로 침공할 것인가였음. 이 때 유럽을 침공하자는 쪽과 남송을 침공하는 쪽으로 의견이 갈려 다툼이 일어남.

- 회의의 결론은 황당하게도 병력을 둘로 나눠서 유럽, 남송 모두 다 공략하자는 것이었음. 20세기 미국 정도는 돼야 할 수 있었던 대륙을 사이에 둔 양면전쟁을 몽골은 몇 백 년전에 했던것임.

- 유럽을 침공한 몽골 병력은 키예프 공국, 폴란드, 튜튼 기사단, 헝가리를 갈아버리고 오스트리아를 노렸음. 오스트리아가 무너지면 이제 프랑스까지 몽골군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것이었음. 그러나 알다시피 몽골의 칸이 서거하는 바람에 유럽을 침공한 몽골군은 회군했음

- 몽골군이 이렇게 강했던 이유는 뛰어난 기마술을 통한 기동력, 유리한 전장에서만 싸우기, 관통력이 뛰어난 화살과 공포 전술 등이 있음.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게 이민족들을 활용한 공병부대의 운용이었음. 몽골군은 이 이민족 기술자들을 활용한 공병부대로 투석기를 만들어 성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거나 강에 다리를 놓아서 건너는 등의 활약을 보임

- 이렇게 이민족을 적극 활용하는 전통은 칭기즈칸이 초원을 통일시킬 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함. 칭기즈칸, 본명 테무진은 새로운 부족을 정복할 때마다 살아남은 고아 중 한명을 자기 어머니의 양자로 만들어서 형제로 삼았음. 또한 살아남은 부족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의 일족으로 받아들였음. 이는 초원을 통일할 때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타타르족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음.

- 이렇게 강력한 군사력으로 동서양을 정복한 몽골 제국은 팍스 몽골리카 시대를 열었음.

- 몽골의 카라코룸은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샤머니즘 등 모든 종교에 관용을 베풀었고 각 종교마다 커뮤니티를 이뤄서 평화롭게 거주했다고 함.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에서 온 건축가들이 모여서 몽골 제국의 궁궐과 주택들을 건설했다고 함.

- 또한 몽골 제국은 역참제도를 통해서 동서양의 교통로를 연결했고 여행자들은 몽골 제국의 역참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함. 이 덕분에 몽골 제국이 번성하던 시기에는 마르코 폴로나 이븐 밧투타 등 대여행가들의 전성 시대이기도 했음


③대영제국 - 작은 섬나라가 어떻게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격침시킬 수 있었을까?


- 당시 함스부르크 가문은 정략 결혼을 통해서 스페인 + 네덜란드, 벨기에 + 오스트리아, 체코 + 독일 일부, 프랑스 일부, 이탈리아 일부까지 유럽을 통일할 기세였음. 거기다가 스페인 제국은 남아메리카에 막대한 식민지를 건설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원조였음.

- 이 시대에 유럽은 신구교의 종교 분리가 시작될 때인데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영국은 가톨릭에서 벗어나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정함.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스페인 제국의 펠리페 2세는 익숙한 방식으로 영국과의 갈등을 봉합하려 함. 그것은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청혼이었음.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이 청혼을 거절함.

- 거기다가 영국은 스페인 보물선을 약탈하는 일이 잦았고, 네덜란드 반란군을 지원하는 등 간땡이 부은 짓을 저지름. 물론 영국은 유럽 대륙을 통합할 만한 나라가 나오면 견제하는 혐성국의 전통에 따라서 스페인 제국의 약화를 바랐음.

- 결국 섬나라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스페인은 영국과 해전을 벌이게 되는데, 불과 17년 전에 오스만 제국의 해군을 박살낸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오히려 영국 해군에게 얻어터짐.

- 이는 영국인 기술적으로 스페인 함선보다 더 나은 함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임. 영국 함선은 기동력이 빠르고 선체의 회전도 빠르고 더 많은 화포를 실을 수 있었음. 거기다가 영국의 화포는 주철을 이용해서 청동을 이용하는 구식 대포보다 더 값싸게 많은 대포를 만들 수 있었음. 전술적으로도 영국은 세계 최초로 함포 사격을 통해서 상대의 배를 침몰시키는 작전을 씀. 반면에 아직도 스페인 함대는 갈고리를 상대 함선에 던져서 보병들을 침투시키는 백병전 전술을 썼음.

- 스페인이 이렇게 기술이나 혁신에서 영국에게 뒤쳐진 이유는 스페인이 지독한 가톨릭 국가여서 이교도를 배척했기 때문임. 따라서 신교를 믿는 기술자들은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영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


④미국-1964년, 그 해 여름


-1964년, 미시시피 주에서 민권 운동가 3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남. 그 중 두 명은 백인이었고, 한 명은 흑인이었음. 그들은 흑인 마을 교회가 KKK단에 의해서 불타버린 사건을 조사중이었음

- 1964년까지 남부 흑인들은 투표권이 제한되었음.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 싶지만, 보수적인 남부에서는 연방군이 물러나자마자 흑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각종 법을 만들어서 흑백차별을 제도적으로 계속 이어감. 그 중 핵심이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이었고 이런 법들을 통칭해서 '짐 크로우 법'이라고 부름

- 짐 크로우 법의 예시로는 이런 것들이 있음. 이른마 문맹 시험이 있었는데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투표권을 얻을 수 없었음. 주로 가난하고 교육을 잘 받지 못한 흑인은 문맹 시험을 통과하기 어려웠음. 이 시험은 흑인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내고 백인에게는 쉬운 문제를 내서 임의로 흑인을 탈락시켰음. 혹은 할아버지 조항이 있어서 할아버지가 투표권을 가졌으면 문맹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투표권을 얻을 수 있게 했음. 당연히 흑인들의 할아버지는 노예였기 때문에 이 조항의 혜택을 볼 수 있는건 백인들 뿐이었음. 이 뿐 아니라 인두세를 내지 못하면 투표권을 얻을 수 없는 법률도 있었음. 가난한 흑인들은 이런 인두세를 낼 여유가 없었음

- 이렇듯 미국 남부는 1960년대까지 극심한 흑인 탄압 정책을 펼쳤음.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이런 흑인 탄압 정책으로 인해서 남부 백인들은 오히려 미국 평균 소득의 절반 정도밖에 미치지 못했음. 왜냐하면 남부는 흑인들의 극심한 저임금 노동력을 통해서 산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기술 혁신의 필요성이 적었고, 또 흑인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임.

- 흑인 차별에 저항하려는 민권 운동이 이 시기에 계속 벌어짐. 1955년에는 버스의 백인 전용좌석에 흑인이 앉았다가 자리를 옮기기를 거부해서 경찰에 체포당하기도 했음. 1960년에는 백인 전용 식당에 일부러 흑인들이 가서 주문하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음. 1961년에는 자유여행단 운동이라고 해서 단순히 흑인과 백인들이 같이 미국 국토를 여행하는 것인데 KKK단에 의해서 버스가 피습당하기도 했음.1963년에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행진 시위를 벌였고 "I have a dream"으로 유명한 연설을 하기도 했음.

- 남부에서도 인종 차별로 악명 높은 미시시피 주는 1964년 흑인 유권자 등록 비율이 불과 6.7%밖에 되지 않았음. 그래서 그 해에 자유여름 운동이 벌어져서 대학생들이 흑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유권자 등록을 돕기로 함. 첫 문장에서 언급한 실종된 민권 운동가 세 명이 바로 이 자유 여름 운동의 선발대였음. 미시시피 주는 이 실종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자작극이라면서 공산주의자 몰이를 함. 그러나 결국 실종된 세 명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음.

- 자유여행단의 1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미시시피로 출발함. 그러자 미시시피 주는 장갑차를 동원하고, 경찰력을 증원하고 시위를 주장하는 전단지 배포를 금지하고, 공공건물에서 피켓시위를 금지시키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춤

- 1964년에 흑인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 도중에 백인 경찰의 총에 맞아 어머니를 보호하려던 흑인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남.

- 그러자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시위대들은 행진 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했는데 전투경찰들이 곤봉, 쇠사슬, 최루가스, 말발굽을 이용해서 시위대들을 진압해버림. 그리고 이 시위 현장이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 됨.

- 마침내 여론의 지지에 의해서 1965년 미국 대통령은 인종차별의 의심이 있는 지방정부의 선거 관리를 연방 정부가 감시하도록 하는 투표법을 통과시킴. 이로써 링컨의 노예 해방선언 이후 100여년 만에 흑인들은 완전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됐음.

- 흑인들의 권리가 향상되면서 남부 지역의 소득도 올라감

-아직도 인종차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로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민자들의 힘을 통해서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음


4. 평가 및 감상


(+) 강대국의 조건은 '다양성'과 '관용'이라는 주제의식이 명확함. 한편으로 한국은 혈통 중심의 단일 민족 의식이 강한 나라로써 앞으로 이민자들을 어떻게 대한민국 사회에 융화시켜서 '제국'으로 발돋움할것인가하는 생각거리도 던져 줌. 여기서 제국은 중립적인 단어로써 여러 민족을 포괄할 수 있는 집단을 의미함. 한국은 역사 동안 중화제국에 가려져서 제국적 정체성을 가져본 적이 없음.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강국이 되면서 앞으로 제국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쳐해있음. 한국의 문화산업은 사회 변화보다 빠르게 제국적 정체성을 갖추고 있음. K팝의 작곡진은 외국인이 많고, K팝 그룹에 외국인 멤버들은 이제 필수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흔해졌음. 앞으로 K팝이 외국인 멤버를 수용해서 발전했듯이 한국 사회도 이민자들이 건강하게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와 인식이 갖춰지면 좋겠다고 생각함. 다른 한편으로 서양의 나라들과 동양의 나라들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음. 무슨 말이냐면 서양의 역사는 일정한 중심이 없이 많은 민족들이 이합집산하는 역사였음. 그리고 민족 이동도 더 자유로웠고 미국만 해도 흑인, 인디언, 백인,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집단들이 공존하는 축소판 지구라고 볼 수 있음. 그러나 동양에서는 중화제국이 다민족 국가이긴 했지만, 압도적인 인구와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건 한족이었음. 또 중국의 다민족은 결국 그나마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동양인의 테두리 안에서의 다민족 국가라고 할 수 있음. 미국처럼 인종을 넘나드는 유연성은 찾기 힘듦. 그래서 미국이 중국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그렇고 더 압도적인 제국이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동양이 서양을 이기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대신에 미국도 아시아인 인구가 늘고 있는만큼 미국이 아시아적인 가치를 점점 폭넓게 수용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도 있음.


(-) 개인적으로 2장의 몽골 제국에 대한 파트가 마음에 걸림. 내 인식 속의 몽골 제국은 문명 파괴자라는 이미지가 있음. 송나라까지만 해도 서양에 기술적으로 앞서던 중국 문명이 정체되기 시작한게 몽골이 송나라를 멸망시킨 이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음. 몽골 제국의 좋은 점만 보여주려고 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듦. 몽골 뿐만 아니라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희생당했던 약소국이나 약소 민족이 있기 마련임. 로마는 고대 국가니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치더라도, 영국과 미국은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원주민을 학살했던 나라로 그 역사적 과오가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 그런 과오까지 다루는건 이 책의 주제 범위를 벗어난 것이지만, 더 균형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강대국의 어두운 면을 다루는 내용을 찾아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