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인 신화, 소설들을 많이 기록하지
않았는가다
일본보다 역사의 시작은 분명히 빨랐는데
일본은 인류 최초의 소설도 있고
일본 신화를 수록한 책도 있는데
한국은 고대, 중세의 기록이
너무 부실해서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려고 해도 모티프가 될만한것이
적어 보인다
않았는가다
일본보다 역사의 시작은 분명히 빨랐는데
일본은 인류 최초의 소설도 있고
일본 신화를 수록한 책도 있는데
한국은 고대, 중세의 기록이
너무 부실해서 한국형 판타지를
만들려고 해도 모티프가 될만한것이
적어 보인다
궁예
일본은 섬이라서 오히려 보존이 잘 될 수 있었을 거임 한반도는 여기저기 다 뜯기면서 많이 훼손됐을 듯 조선 이전의 문헌 같은 것들, 향가 이런 거 안 지은 게 아니라 보전을 못했다고 들음
성리학 모름?
중국 포함한 북방 민족들이랑 일본이랑 서양에 다 털리고 재가 됐겠지
중국은 우리나라나 일본보다 역사기록의 연대가 앞서있음 ㅇㅇ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신화?라고 했을때 내용이 굉장히 소략함. 그 이유는 역사의 시대, 제정분리의 시대에 먼저 돌입했기 때문임. 더이상 왕이 신의 권위를 내세워 정치할 필요가 없게 된거고, 그래서 신화를 체계적으로 기록할 이유도 없었음. 당대의 사람들 눈에 신화라는 건 이미 약간 한물간, 촌스러운 정치적 장치, 이야기에 불과했던거임. 고대의 사람인 사마천이 이미 삼황오제 중에 삼황은 좀 그래서 나는 황제부터만 기록하겠음 했을 정도니까 ㅇㅇ
하지만 일본의 경우 중앙집권화가 늦은 편임. 그래서 천황의 권위를 강화하고자 일본 전국의 신화를 수집하여 천황위주로 줄세우기 정리를 해놓은게, 현재 전해지는 일본의 신화임. 제정일치적 성격이 강했던거임 ㅇ
소설의 경우 유교문화권에서 그 취급이 좋지 않았음. 유교 문화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던 일본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잉. 그나마도 일본에서조차 고전소설 형태인 모노가타리의 주 향유층은 여성 식자층이었음. 대중의 문화가 결코 아니었던거 ㅇㅇ 애초에 전근대 문맹률을 감안했을대 문학이라는 장르는 상류층의 문화로 밖에는 존재하기 힘들었음.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 이전의 안정기가 생각보다 길게 유지됐음. 유교문화의 입김이 약하면서, 귀족문화의 발달로 인해 소일거리로 고전소설을 쓰고 소비하게 되는 시대가 있었던거임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과 마찬가지로 유교문화가 이른 시기에 도입됐고, 귀족문화가 꽃필만한 시기가 그렇게 길지도 못했음. 통일신라 시기나 고려전기? 정도일텐데 통일신라때는 소설은 모르겠으나 향가 같은건 국가차원에서 수집했음. 그게 실전됐다는게 문제지 ㅇㅇ 고려는 솔직히 전기부터 거란의 침입으로 왕조기록물 조차 날라가는 상황에 신화?,소설? 그런걸 신경쓸 여력이 없었음. 그리고 몽골의 침입이라는 끝판왕급 재앙을 만나서 기록물은 커녕 문화재들 조차 홀라당 날라감 ㅇㅇ 조선은 알다시피 유교탈레반적 요소가 강했던 왕조라서, 정말로 소설의 취급이 바닥을 침. 앞서 말했듯 소설은 결국 전근대 이전 기준으로는 상류층이 소비할 수 밖에 없는데, 상류층이 소비를 안하는데 존재하기 힘들었던거 ㅇㅇ
물론 조선후기쯤 되면 저잣거리에 떠도는 한글소설, 한문소설이 꽤 유행했다지만, 그런 작품들은 솔직히 말해서 퀄리티가 낮은 편이고 ㅇㅇ. 일본도 귀족문화가 붕괴되고 전국시대에 돌입한 이후로는 고전소설의 퀄리티가 떨어졌거든 ㅇㅇ 무식쟁이 무장이들이 싸우기 바쁜데 소설을 쓸 생각을 했겠음?
그러니까 결론은 우리 조상님들은 신화같은건 애초에 체계적으로 수집할 생각은 거의 없었던거고(해야할 이유가 없음), 소설의 경우에는 그걸 향유할 상류층들이 소설에 신경쓸 정도로 여유있던 시대가 길지 않았고, 혹여 있었더라도 외침으로 날려먹었을 가능성이 크며,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상류층들이 소설 쓰는것에 거부감이 있던 문화였다. 라고 생각하면 됨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