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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상당한 두께와 <정의론>이라는 이름과 별개로 원서의 제목과 표지는 약간 앙증맞다. <고슴도치를 위한 정의론Justice for Hedgehogs>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이 책은, 대중들을 대상으로 한듯 약간 더 쉽고 해설적인 논조로 작성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앙증맞은 제목과 표지에 걸맞을 정도로 용이한 책은 아니기는 하다. 제목의 고슴도치는 사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것만을 알고 있다"라는 서양에서는 꽤나 유명한 문구에서 따온 것이며, <정의론>이 파편화된 윤리와 도덕, 법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들을 한데 끌어모으는 체계로서의 정의론을 이야기하는 기획인 것을 생각해보면 어울리는 상징이기는 하지만 또 이런 이미지에서 기대되는 앙증맞은 책은 아니기는 하다. 아마 한국에서 굳이 고슴도치를 제외하고 <정의론>이라는 딱딱한 이름을 붙인 데에는 유명한 저서인 롤스의 <정의론>을 의식한 감이 있겠다 싶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꼭 그렇게 엇나간 선택은 아니겠거니 싶다.
위에서 말했듯, <정의론>은 도덕에 대한 전반적인 내적, 외적 회의주의에 맞서 어떤 견고하고 보편적인 도덕이 존재할 수 있음을 강력히 주장하며 이것으로부터 윤리와 도덕 사이의 연결고리와 사회제도까지 전체적인 체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물론 이 체계는 롤스나 벌린 등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정의와 자유를 어느 정도 포함하며, 현대 자유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상식과 도덕관과도 크게 대치되지 않는다. 사실 이 일반적인 도덕관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워킨이 생각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내적, 외적 회의주의는 우리의 도덕관과 너무 다른듯 하니까. (하지만 그 '우리'는 누구일까? 드워킨이 그 말을 들으면 일단 그 질문을 멈추라고 했겠거니 싶다.) 아무리 도덕이 무용하다, 도덕은 상대적이다, 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결국 대부분의 문화권 속의 사람들은 어떤 도덕관을 강하게 가지고 있고, 이것이 서로 차이가 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존재하지 않거나 그저 근거 없는 표현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수긍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다.
문제는 이론이 순수하게 실제와 다른 분야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론이 실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결국 둘 사이의 차이가 클수록 제시해야 할 근거와 논증이 더 커진다는 데에 있다. 외적 회의주의는 흄의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토대로 분명한 도덕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곤 하지만, 드워킨은 그 반대를 역설한다. 흄의 논증은 오히려, 도덕은 그저 바로 이 의도적인 가치판단들로 세워진 체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도덕 바깥의 어떤 사태 혹은 사실에 도덕을 정초할 수 있다는 것이 오류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정초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덕 체계의 허위성을 지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미 도덕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라면 더더욱. (물론, 이것은 철학적으로는 다소 거친 요약이되 내게는 이 정도면 충분할 듯하다.)
내적 회의주의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지만, 이것은 태도의 문제에 더 가깝다. 어떤 도덕적 문제가 '아직 불확실한' 것과 '근본적으로 비결정적'인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내적 회의주의는 도덕을 아예 포기하지 않는 한 후자가 아닌 전자를 선택해야만 한다. 포기한다면 그것은 외적 회의주의와 동일한 문제를 맞이하며, 전자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다시 이 <정의론>에서 이야기하는 긴 대화에 마저 참여할 자격이 있다. 불확실한 문제들을 맞닥드렸을 때 각각의 개인이 해석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토대를 마련해쥴,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는 거대한 체계로서의 정의론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드워킨은 그 토대를 롤스의 <정의론>과 비슷한 방식으로 제시하되 조금 다른 방향성으로, 존엄성을 도덕의 기초로 잡으며 약간은 보수적인 접근을 한다. 그러나 존엄성을 토대로 약간은 칸트적인 규범을 확장시키며 해석의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은 롤스보다는 조금 더 허술하면서, 조금 더 실용적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러한 정치 성향이 내가 롤스보다 드워킨이 마음에 든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최약자에게 변화로 인한 이득이 생기지 않는 한 어떤 종류의 불평등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정의관은 너무 추상적이고 이론적이다. 노직이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에서 (의도치 않게) 아나키를 보다 더 이상적인 방식으로 바라본 것처럼, 롤스의 원초적 입장 아래에서의 개인들 역시 그저 이론의 토대로만 이해하기에는 너무 이상적으로 추상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사회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생성되는 것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 꼭 이것이 다른 사회와의 경쟁의 문제만은 아닐 테고, 우리가 도덕이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그 기준이 어떻든) 이해해야 하듯 사회 역시 그런 범주의 개념으로 취급해야 하리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나가면 홉스의 자연 상태와 같은 극단적인 전제가 나올 테다.
반면 드워킨이 전제하는 거대한 체계가 정말로 납득 될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이 든다. 드워킨의 정의론은 해석적 자세를 통해 실용적인 이론 체계를 제시하는 데에 탁월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이것이 롤스의 기획에서 받은 인상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래도 이런 크나큰 기획과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이는 자세만큼은 마음에 든다. 특히 이것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논리적 귀결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채택할 수 있고 채택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하나의 체계를 제안하는 점이라는 데에서 그렇다. 물론 이것이 드워킨이 이 체계 이외의 것이 존재할 수 있다거나 이것은 그저 상대적인 정의관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것은 약간 기만적인 우회책일 수도 있겠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판단에 달려 있는 일이다. <정의론>이 몇 번이고 역설하는 해석적 자세 그대로, 이 <정의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일. 확실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읽고싶은 책이지만 밀린 책들 읽느라 시간이 안난다 - dc App
아조씨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읽고 꺼드럭 거리는 새기들이 하도 많아서 시발 존 롤스 정의론 니가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려운데 이 지랄하면서 패기 있게 구매하고 읽다가 존나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다 읽긴 했는데 상당히 어려운 책이긴 했어요
이 책이 어려운건지 그냥 이 글쓴이가 굳이 더 난해하게 쓴건지 모르겠네. 후자면 읽어보겠는데 이 책 자체가 글쓴이처럼 논리를 펴나간다면 굳이 안 읽어볼듯. 이 글에 개추준 사람들은 이 사람이 무슨말을 하는지 알고 추천하는건가 심히 궁금할정도
특별히 못알아들을 얘기는 아닌데? 요지는 드워킨의 이 책이 도덕과 정의에 관한 회의주의나 상대주의에 맞서는 기획이라는거고 그런 점에서 롤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롤스에 비하면 드워킨이 덜 추상적이고 실용적이라는거잖아. 글쓴이는 사회를 추상적인 사고실험보다는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도덕관념을 정초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드워킨이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는거고. 내적회의주의에 대한 설명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안읽어봐서 이 글만 보고 충분히 이해되진 않지만 글 자체가 못알아들을 얘기는 아님
회의주의에 대해서만 조금 더 부연하자면, 외적 회의주의는 도덕을 하나의 감정 표현일 뿐이거나 도덕이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메타적으로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생각이고, 내적 회의주의는 도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서로 대립하는 관점(예를 들어, 자유와 평등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하느냐 같은)들에 함께 힘을 실어줄 수 있어 결국 근본적으로 비결정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생각임. 그래서 드워킨은 내적 회의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도덕적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답이 없어 그저 하나를 택할 뿐인 비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더 알아봄으로서 여러 관점을 파악해 우리가 분명한 결정을 할 수 있고 실제로 그리 해야만 하는 불확실한 문제라고 바라보며 내적 회의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음.
이것들을 좀 더 길고 자세하게 써야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드워킨의 <정의론>에서의 접근이 본문 후반부에서 적었듯 이 이론적 정식화 자체보다는 그래야만 하는 실용적 의도를 더 중요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제 <정의론>에서는 외적/내적 회의주의의 다양한 가지와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반박이 주석에서까지 길게 적혀 있긴 하지만 이를 소개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음. (어차피 그건 읽어보고 알아야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