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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의 글을 읽을 때면 참 복합적인 감상에 빠진다. 그린의 글은 재밌지만, 재밌는 방식이 할리우드 영화의 그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재밌다. 실제로 영화화된 글만 수십개고, 이 <코미디언스> 역시 그런 글 중 하나다. (그 영화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지만.) 아마 그건 그레이엄 그린이 글에 재미를 불어넣는 방식이 영화의 플롯에서의 방식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국적인 배경에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내들과,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 그들을 두고 염문을 벌이다가, 마지막에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며 약간은 감동적이고 약간은 허무하기도 한 그런 결말과 함께, 빠밤. 하지만 이건 그린의 글을 너무 단순하게 요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는 그린이 함께 사용하는 재료들이 심상치 않다. 돌아가보자.



<코미디언스>의 배경은 20세기 중후반의 아이티이고, 주인공인 브라운은 출생이 다소 불분명한 모나코 사람으로 아이티에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아이티의 상황은, 원래도 그리 좋지 않았지만, 소위 "파파 독"이라 불리는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독재로 인하여 더욱 끔찍해져 가고 있었고, 브라운 역시 그런 아이티에서 탈출하고자 호텔을 매수할 사람을 구하러 미국을 찾았다가 결국 다시 아이티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에서 만난 존스와 스미스는 둘 다 요상한 사람으로, 자칭 군인 존스에게서는 허풍 섞인 범죄자의 수상한 냄새가 나고, 일단은 대통령 후보였던 스미스는 아이티에 채식주의자 센터를 세우려 한다. 그리고 아이티로 돌아온 브라운을 맞이하는 건 그와 불륜을 저지르던 대사 부인과, 더욱 더 처참해진 아이티의 독재정이다.



아이티의 독재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끔찍한지, 브라운과 일행들이 벌이는 일과 이야기는 희극적으로 비극이다. 별 일도 없이 구속되어 뇌물을 먹여야 하는가 하면, 허다한 날 장관이 바뀌며 처형당하고, 미국의 원조로 받는 약간의 식품은 분쇄되어 저질로 팔려나가며, 미국의 대통령 후보라는 말에 설설 기는 공무원들은 스미스에게 돈을 해먹을 사업을 제안하고, 그런 와중에 존스는 자신이 직접 이 아이티에서 대대적으로 사기를 칠 궁리를 한다. 이 토대 없이 아무렇게나 돌아가는 세상에서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형태로 살아간다. 제목의 <코미디언스>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어떻게든 뭔가가 이뤄지고 있다고 연기를 해보려고 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 광대나 다름 없다. 물론, 그건 아이티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기실, 아무리 아이티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도, 이 소설의 핵심은 저 코미디언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좌우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할리우드 식으로 비틀린 <암흑의 심연>과 유사한데, <암흑의>에서 아프리카라는 칠흑 속의 대륙에서 사람이 미쳐버리는 것과는 다르게 이 아이티라는 토대 없는 나라에서 사람이 토대를 억지로 만들고자 몸을 비트는 이야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풍선이 존스의 결말은 좋은 쪽이다. 화자 브라운은, 그렇지 못하다. 존스가 그의 코미디를 하나의 삶으로서 마무리 지은 것과는 달리 브라운은 존스를 파멸시킨 후 아이티에서 탈출해 여전히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암흑의>에서 아프리카에 잡아먹힌 커츠가 아프리카에 남은 것과는 달리, <코미디언스>에서 존스는 아이티에서 벗어남으로서 아이티에 완전히 속박되었다. 그곳에 남기고 온 빚이 있다는 생각이 가득하지만, 정작 그것을 갚을 이들은 더 이상 아무도 없는 탓이다. 아이티는 아무 것도 없음과 동치로 존재한다.



근현대의 역사를 훑어보며 아이티라는 이름이 어찌나 빠르게 등장했다가 어찌나 빠르게 사라지는지를 볼 때마다 참 놀라울 따름이다. 그 누구도 아이티가 최초의 근대적 독립 국가라는 걸 알지 못하고, 아이티는 그저 최악의 국가로 현존한다. 그 거대한 실패 뒤에 완전한 경제적 봉쇄와 당시 독립국이 결코 갚을 수 없었을 거대한 차관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알려져 있지 않고, 질식한 국가의 썩어가는 추악한 몸뚱이는 이곳에 공허로서 등장한다.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정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저 주변에서 그것을 승인하느냐일 뿐이다. <코미디언스>는 반어적으로 그런 교훈을 환기시킨다. 우리는 이 공허한 코미디언, 브라운과 다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