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의 초상〉 연재를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앞서 그 서문을 작성해 보려 합니다. 여기선 앞으로 〈잔의 초상〉을 위해 읽을 기본서와 잔 다르크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간추려 소개해 보겠습니다.
Joan of Arc: By Herself and Her Witnesses (Pernoud, 1990)
사실 잔 다르크에 대해 깊이 있게 읽어 보려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일전에 잔 다르크를 다룬 유튜브 쇼츠 영상에 달린 한 댓글을 본 기억이 나는데요. 바로 타임머신을 타고 600년 전 과거로 돌아가 잔 다르크를 인터뷰해 보고 싶단 댓글이었죠.
그런데 인터뷰 정도가 아니라 잔 다르크를 법정 심문한 기록이 지금까지도 프랑스에 남아있죠. 잔에게 파문과 화형을 선고한 재판에서 그 죄를 묻기 위해 그녀를 직접 취조 심문해 기록으로 남겼었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 잔이 죽은 지 20년 뒤, 잔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추진된 재심에선 잔의 이웃들, 지인들, 목격자들 115명을 불러 내 잔의 인생과 행적에 대해 취조 심문을 한 후 기록해 남겼구요.
그래서 잔 다르크에 대해선 보통 이 두 문헌, 즉 '잔 다르크 파문 재판록'과 '잔 다르크 복권 재판록'이 최고의 역사적 가치와 학술적 권위가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잔 다르크 본인과 그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직접적으로 기록한 일차 문헌이니까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도 잔 다르크를 다룬 희곡을 쓰기 위해 저 두 문헌들을 모두 읽어 봤다고 하지요.
문제는 이 두 문헌이 독자들이 읽으라고 쓴 책이 아니라, 유럽 중세 시대의 법정 기록 문서란 것이죠. 게다가 두 문헌 사이 존재하는 20년이란 세월의 간극 역시 충분한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이 두 문헌을 읽는 일반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좋고요.
그러면 여기서 '독자들을 위한 최고의 잔 다르크 전기는 과연 어떤 책일까?'란 질문에 대한 그림이 얼추 그려집니다. 두 법정 문헌에서 나온 갖가지 증언들을 편집 종합해 잔의 일생을 연대기순으로 펼쳐 보여주는 책 말이죠. 그러면서도 프랑스 중세사 부문의 권위자가 자신의 의견은 되도록 배제한 채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절제 있게 해설하는 전기면 딱일 거 같고요.
레진 페르누 (1909~1998)
네, 레진 페르누(Régine Pernoud)의 『Joan of Arc: By Herself and Her Witnesses』, 국역해 보자면 '잔 다르크 - 그녀와 그녀의 목격자들이 말하는'이란 제목의 이 책이 바로 그러합니다.
20세기 프랑스 내 최고의 잔 다르크 권위자 중 한 명인 사학 교수 레진 페르누가 무려 1962년(!)에 저술했고요. 그 후 1964년에 영국의 에드워드 하이암스가 영어로 번역을 해 영국 내 번역 관련 상까지 받았던 책입니다. 미국에선 1966년 최초 출간이 됐고요.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재출간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지금도 호평이 자자해 이 분야에선 현대의 고전 반열에 든 책입니다.
페르누의 잔 다르크 전기는 잔 다르크의 짧은 일생에서 그 분기점이 돼 준 주요 사건 및 주제들을 기준으로 각 단원들이 구성돼 있습니다. 〈잔의 초상〉은 이 책의 각 아홉 단원들에 대해 저의 에세이를 쓰는 식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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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당시 프랑스 왕국의 판도. 빨간색은 잉글랜드령 점령지, 파란색은 프랑스 아르마냑파의 영역, 짙은 노란 색은 프랑스 부르고뉴파의 영역입니다.
잔 다르크가 태어난 시기는 곧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 백 년 전쟁 시기였단 건 독자 분들도 다 아실 겁니다. 기본적으로 두 왕국 사이 복잡하게 얽힌, 왕가 혈통의 적통이 누구인가?를 놓고 싸운 왕위 계승 전쟁이었죠.
장장 백 년이 넘게 이어진 이 전쟁은 몇 차례의 격전과 소강 상태가 이어져 오다, 1415년 잉글랜드의 왕 헨리 5세가 프랑스에 결정타를 먹이는 데 성공합니다. 프랑스 아쟁쿠르에서 열린 전투에서, 헨리 5세가 절대 열세의 잉글랜드군으로 프랑스 왕국군에 사상자 기준 10배 이상의 피해를 입히며 완승을 거두게 된 것이지요. 승리한 잉글랜드는 수많은 프랑스 귀족들을 포로로 삼고 프랑스 북부 절반가량을 점령합니다.
사실 외적에게 참담하게 깨지기 이전에도 프랑스 왕국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1392년, 당시 프랑스의 왕이었던 광인왕 샤를 6세의 정신 질환 발작이 시작된 이래 왕가와 궁중 내 권력 암투와 부패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1348년 창궐해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파생 전염병들이 수십년째 그치지 않는 상황이기도 했죠.
헨리 5세를 다룬 넷플릭스의 영화, '더 킹'
헨리 5세는 샤를 6세와 1420년 트루아 조약으로 화친을 맺으며, 샤를 6세의 딸 카트린 공주와 혼인을 해 아들 헨리 6세를 낳게 됩니다. 또한 헨리 5세는 프랑스 동부에 그 영지를 둔 부르고뉴파의 수장 선량공 필리프와도 동맹 관계를 맺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가 막히게도, 그로부터 2년 뒤인 1422년, 헨리 5세와 샤를 6세가 연이어 병사해 줄 초상을 치르게 됩니다. 잉글랜드는 헨리 5세의 갓난 아들 헨리 6세에게 프랑스 왕국의 계승권이 있다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샤를 6세의 생존한 유일한 아들, 왕세자 도팽은 자신이 프랑스 왕가의 적통이라 역설했지요.
이제 왕국은 잉글랜드 왕국 및 친잉글랜드 당파인 부르고뉴파의 북동부 그리고 왕세자 도팽을 지지하는 아르마냑파의 남부 이 둘로 쪼개진 채 극심한 내전 상태로 치닫게 됐습니다. 결국 1428년 가을엔 잉글랜드-부르고뉴 연합군이 남부 프랑스로 진격하기 위한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인 오를레앙시로 진군, 그곳을 포위해 공성전에 돌입했지요.
망국의 암울한 기운이 을씨년스럽게 역력하던 1429년의 프랑스, 그 해의 봄.
변방 시골 마을 동레미 출신의 17세 소녀, 자네트가 사람들 앞에 등장합니다. 천사로부터 오를레앙에서 왕국을 구하란 계시를 받았다는 외침과 함께 말이죠.
글을 살짝만 다듬어서 재작성해 봤어. 사실 초록창 블로그랑 이곳에 동시 연재를 하고 있는데, 초록창 블로그는 그래도 존댓말을 쓰는 게 통상적이고 여기는 반말이 근본이라 대체 글을 쓸 때 어떤 쪽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 그래도 안정성이 보장되는 초록창 블로그가 기본이 돼야 한다 생각이 들어서 글 자체는 존댓말로 계속 연재를 하려고 함. 그래도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란 말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여기선 발제 개념으로 앞으로 댓글 만큼은 반말로 남기려고 함.
백년전쟁의 배경에서 왕위 계승은 매우 부차적인 문제 중 하나였음
https://gall.dcinside.com/m/war/3513216
그리고
덜 중요하지만 아쟁쿠르 전투의 규모도 본문의 설명보다는 큼.
왕위 계승 문제가 전쟁의 원인에 있어 실질적 측면에선 부차적일 수 있어도 그 명분 측면에선 가장 메인 아니었을까. 본 프로젝트의 목적은 '백 년 전쟁사' 보단 '잔 다르크' 개인에 대한 평론이라, 아무래도 서술 방향을 전쟁의 명분 쪽에 촛점을 맞췄음. 아쟁쿠르 전투의 규모에 관해선 내가 희생자 규모를 총병력 규모로 잘못 읽고 기재했네 -_-;; 지적 고맙고 바로 수정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