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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은 표지에서 시작된다. 옛 일본 요괴 그림에 나올 법한 그림체로, 요상하게도 태아와 근육, 장기 등에 대한 근대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다. 이 글이 의고적인 필체로 쓰인 현대의 기담집임을 미리 알리는 셈이며, 삶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담한 필체로, 불쾌할 정도로 깊게 들어오며 선악을 딱히 상정하기 힘든 자연 그 자체를 기이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엠브리오 기담>과 <라피스 라줄리 환상> 같은 단편에서 요상하게 섞여 있는 서양 단어는 이런 단어들이 아예 이질적인 실제 옛날과는 달리 작중에서 주인공 이즈미 로안이나 다른 이들에 의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쓰이며 이 단편집의 기묘한 불균형을 더해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담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기담과 추리 소설 사이의 크나큰 차이는, (추리 소설이 현대에 들어서 다소 초현실적인 현상들을 함께 포함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두 장르 모두 어떤 이상 현상 혹은 사건을 포착하여 독자에게 보여주되, 후자가 어떻게든 이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에 비해 기담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따금, 이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그라지기도 한다. 또는 사건의 주체가 요괴와 같은 어떤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의 일부로 환원되기도 한다. 기담의 기묘함은, 이런 일이 어떻게 현실에 있을 수 있느냐는 어이없음과 그럼에도 이것과 현실 사이에 분명하게 갈라지지 않는 기분 나쁜 그럴듯함과 공존한다.
<끝맺음>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편이자, 이 책에서 제일 뛰어난 글이며, 책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글이다. 이전의 단편들이 기묘함과 아련함을 함께 안겨주는 반면, <끝맺음> 이후의 글들은 <얼굴 없는 산마루>를 제외하면 훨씬 더 잔혹하고 불쾌하다. 그러나 그 불쾌함은 <끝맺음>의 자연스러운 불쾌함보다는 덜할 테다. <끝맺음>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온갖 무생물과 동식물이 사람 형태를 띠고 있는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 마을에서는 나무 무늬조차 사람의 얼굴 같고, 물고기들은 그물에 걸려 사람 같은 형태로 비명을 질러대다가 불에 구워져 식탁에 올라온다. 물론 완전히 사람처럼 생긴 것은 아니다만, 로안의 짐꾼에게는 그들을 먹지 못할 정도로 충분히 비슷하게 생겼다. 그는 이들을 먹는 것을 거부하다가 굶주려 점차 제정신이 아니게 되고, 굶주림의 끝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무언가 먹을 것을 찾는다. 여행길에 음식을 줬다가 계속 따라오느라 이름까지 붙여줬던 닭이 그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는 닭을 잡아서 산채로 뜯어 먹는다. 사람처럼 생긴 물고기를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물론 이 단편은 채식주의에 대한 어떤 은유도, 철학적 실험도 아니다. 그러나 <끝맺음>이 기담의 형태로 연장시키고 있는 소재는 사람들이 육식에 대해 느끼는 사람만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닌 것에서 보는 사람의 속성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저 상대와는 전혀 무관한 자기 안에서만의 울림은 아닐까? 그런 물음을 긍정하듯, <엠브리오 기담>에는 탈인간적인 기담들이 가득하다. 하다 못해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 같은 단편에서 소재로 쓰이는 저주 받은 빗조차, 애초에 그 빗에 저주를 건 주체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기이한 현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든, 결국 이 틀 자체는 결코 인격적이지 않으며, 당연히 현상에 선악을 물을 수도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코즈믹 호러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인간에게 무관심한 공포에 대한 글이다. 아니, 사실 공포조차 아니다. 유진 섀커의 글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는 인간의 인지 도구로서의 철학과, 철학이 도달할 수 없는 탈인간적인 세계 사이의 갈등 사이에서 빚어지는 공포를 다루는데, <엠브리오 기담>은 그런 기획조차도 약간 부족하다고 타이르는 듯하다. 그저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약간 포기하는 듯한 납득. 공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세상에서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 발생하지만, 바로 이 예상 자체가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넓어진 것이다. 그 예상이 무너지는 것은 <암흑의 심연>이 다루는 공포와 광란을 낳고, 예상의 포기는 <엠브리오 기담>의 이즈미 로안이 보여주는 흥미와 감탄을 낳는다. 매번 길을 잃는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예상 못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예상하지 않은 탓이다.
P. S.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동안 굳이 말하지 않은 사실 하나. <엠브리오 기담>은 괴상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GOTH: 리스트 컷 사건>을 쓴 오츠이치가 다른 필명으로 쓴 책이다. 다른 기분과 다른 컨셉으로 약간 아기자기하게 써보려던 <엠브리오 기담>에서조차 이따금 그 불쾌함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오츠이치 책들은 좀 고어스럽던데 이것도 그런 느낌으로 불쾌한 묘사가 많음?
그닥 그런 편은 아님 대체로 담담한 필체에 약간 동화적인 묘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