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오궁, 백지운 역, 『혁명후기』, 파주: 글항아리, 2016.
1. 문혁에 대해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책
2. 공감가는 부분도 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음
3. 중국의 유명 작가이자 지식인이 쓴 책이 맞나 싶은 부분도 있음
1. 이 책은 중국 현대사의 뜨거운 감자인 문화대혁명에 대해 조금은 색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책입니다. 흥미로운 관점도 있고,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저는 대체로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려웠고, 또 술술 읽히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2. 저자의 아버지는 지주의 아들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국민당에도 참가해보았고, 중일전쟁 시기에는 공산당을 선택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기간 중 우파로 비판을 받고 자살합니다.
이 무렵 중학생이던 저자는 학교 홍위병에 가입하고 베이징에 가 마오쩌둥을 만나기 위해 증명서가 필요했지만 당시 그의 아버지가 받아온 증명서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저자는 이런 증명서는 화장실에서 휴지로나 쓰라며 아버지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해 여름 그의 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몇 천 번이나 되돌아가 괜찮다며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너무 늦었다며 아버지께 미안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이런 배경 탓일까요? 저자는 문혁과 홍위병에 대해 다소 긍정적입니다.
3. 저자는 문화대혁명이 오롯이 마오쩌둥 개인의 문제라는 관점에 반대합니다. 당시 소련과 같이 마오쩌둥에 직접 반대하거나, 마오쩌둥이 없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도 문혁 같은 극좌 현상은 일어났다면서 그렇다면 신이 마오쩌둥을 복제해 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 보낸 것이냐며 비판합니다.
또, 문혁을 "큰 미치광이가 수억 명의 작은 미치광이들을 대동하고 부린 난동"(p.98)으로 보는 시각에도 부정적입니다. 그런 식의 해석은 어떤 지혜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죠.
사실 문혁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노선투쟁설, 권력투쟁설 등입니다. 훗날 마오는 류사오치(당 부주석, 국가주석)와 덩샤오핑(당 총서기)이 자신을 실제 업무에서는 소외시키고, 자신이 말을 하지 않기를 바라고, 회의 때면 늘 자신과 떨어져 앉았다면서 자신을 죽은 조상 모시듯 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권력에서 소외되었다는거지요.
한편으로 마오가 보기에 문혁 이전에 류-덩이 추구했던 노선은 자본주의 노선이었습니다. 특히 스탈린 사후 소련에서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한 것도 마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류와 덩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주자파가 자신이 죽고 나면 언제라도 자본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던거죠. 그러니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주자파들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이것이 노선투쟁설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학설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문혁 초기에 이미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실각했는데도 이후로도 문혁은 계속 지속되었으니까요.
마오가 없었어도 문혁은 일어났을 것이라거나 문혁은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있어온 '흔한 역사'라는 관점은 이 책의 저자 한사오궁만의 독특한 견해는 아닙니다. 역시 문혁에 대해 다룬 책인 『백 사람의 십년』에서도 문혁은 수천 년 중국 역사에서 이어져 온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문혁이 없었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말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4. 저자는 홍위병에 대해서는 긍정적입니다. 문혁 시절과 홍위병에 대해서는 많은 회고록들이 나온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기존의 회고와 연구들과 달리 홍위병들은 상당히 규율이 잡혀 있었으며 일반적으로 홍위병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는 왜곡된 거것이라 주장합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동안 극히 일부 홍위병들의 사례가 침소봉대되어 와전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보다는 저자가 우연히 착한 홍위병들만 만났거나 또는 저자의 기억이 왜곡되었거나 어쩌면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더 높을겁니다.
예를 들어, 저자는 5위안으로 전국 여행을 시작했는데 집에 와서는 7위안이 된 걸 자랑한 홍위병 친구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러면서 길에서 만난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주었을 것이라면서요. 하지만 정말 마음씨 좋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돈을 주었을까요 아니면 당시 대부분 홍위병들처럼 돈이 될만한 물건이나 돈을 슬쩍한, 어두운 뒷이야기가 있었을까요?
또, 한 작가가 자신에게 문혁 시절 하방을 했을 때 돈을 갈취당햇다고 하소연했는데 그보고 "누가 그더러 현금인출기가 되라고 했나? 누가 그더러 관료나 민중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 만큼 수입이 많으라고 했나?"(p.186)라면서 공격적으로 비난합니다. 피해자에게 너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믿을 수 없는 논리는 차마 이 사람이 중국의 유명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5. 일반적으로 마오의 사망으로 문혁이 끝났고 이후 덩샤오핑이 '마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후계자' 화궈펑을 몰아내고 나서야 중국의 개혁개방, 경제성장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고 부릅니다. 중국의 공식 역사 해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른 견해들도 제기됐습니다. 우선 덩샤오핑이 개혁 개방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정책을 추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총설계사'라는 표현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덩샤오핑도 이 점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대신 덩 자신의 역할은 지방 지도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시도한 개혁 개방 정책들이 유지되고 확대될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성공한 정책들은 전국적으로 확대되도록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중국 정부나 당에서도 큰 이견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개혁 개방의 시점을 화궈펑 집권기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또, 화궈펑의 경제 정책이 불가능한 목표를 잡은, 마치 마오의 '대약진'을 연상케하는 '양약진'이라 이름으로 비판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후 중국 경제는 천윈(당 부주석) 등 보수파 간부들이 '양약진'이라 비판했던 화궈펑 시절의 목표를 초과 달성했었으니까요.
저자 역시 1972년을 기점으로 이미 그때부터 잉여생산품이 늘어났고 시장경제가 조금씩 성숙하고 있었다면서 문혁 시절에 이미 경제 (고속) 성장의 기틀이 갖춰져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6. 그 시대를 살아가지 않은, 그 곳에서 살아가지 않았던 우리에게 문화대혁명이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시대입니다. 하루 이틀 진행된 일이 아니라서 짧게 보면 2~3년, 길게 보면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된, 그래서 더 믿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저자는 큰 정부에도 비판적이지만 큰 자본에도 비판적입니다. 작은 정부, 작은 자본, 큰 사회여야 한다거죠.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중동에서는 종교에 대한 언론 표현의 자유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미국에서 특정 인종을 조롱하면 큰일이 난 것처럼 소란을 피우니 어찌 미국에 진정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냐는 식이지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네
흥미롭긴 한데 딱 그 정도인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닥이더라고요.
전 중화 문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문혁에는 크게 비판적인 입장이긴하지만, 동시에 당대 중국 무산계급 청년들이 문혁이 그리 열광한 이유도 궁금하긴 합니다
당시 마오는 엄청난 개인숭배를 받았고 그 때문에 그의 말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의 말 만 마디에 맞먹는 정도였던 게 컸던 것 같아요. 재밌는 건 그 개인숭배를 조장했던 게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그리고 국초부터 여러 가지 정치 운동(삼반오반운동, 반우파투쟁, 사청운동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핍박받고 공격 받았는데 그 때문에 당 간부들에 반감을 샀던 사람들이 많았던 배경도 있고요. (조반파)
홍위병도 수많은 정파가 있는데 하나로 뭉뚱그려서 말하는 건 좀 웃기긴 함
보황파, 조반파로 나뉘기도 하죠. 근데 그걸 감안해도 저자의 논리는 동의하기 어렵더라고요.
홍위병 극좌파를 다룬 책이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