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봄밤, 채소밭 가에서, 초봄의 뜰 안에, 비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반주곡, 말복, 사치, 밤, 말 을 8월 18일 까지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댓글 20
1.팔자좋게 드러누워 대지의 감수성을 융화한다. 꿈같은 얘기들과 잠결에 내 뱉는 말 하나하나에 산만큼이나 힘을 부여하는데 독자로서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 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것이 선교사처럼 예지같은 분위기속에 믿음이 필요하다면 다른 이야기다. 그가 광야에 스스로 헌신 한다면 기꺼이 발 딛을 가치는 있을 것 같다. 이미 나는 여태 그의 잠언들을 꽤 읽어온 탓에 뜻 깊은 행들이 모인 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
1음시발(mw02658)2023-08-13 16:36
답글
2.서두르는 것에 대한 지양보다 느림의 미학을 말하는 것 같았다. 서둘다 라는 것은 고작 행하나 마다 밋밋한 서술어로 끝나지만 아름다운 느림의 표상들은 생동감있고 차분하여 따뜻한 봄밤과 같이 느껴졌다. 비록 규모가 큰 것이 눈 앞에 나를 방관하도록 종용하여도 그는 되려 차가움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언제 기어나와 분노를 터트려야 되는 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무거운 추를 매달고 그 관성을 느끼라고만 하여도 낭만적인 모습에 마냥 화낼 수도 없는 노릇인 듯 싶다. 그는 처음부터 계속 말하고 있었던 셈인데도 이런 마음을 품게됐다. 도닦는 심정이다.
1음시발(mw02658)2023-08-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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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언제 시골에 가서 만취가 돼서 술 깨려고 마을 한 바퀴를 돈 적 있다. 한밤중에 걷다보니 햇빛을 받을 땐 시끄럽게 제 모습을 자랑하던 밭과 논, 개울들이 그렇게 차분해졌던걸 보았었다. 이 기억 때문에 밤의 광경으로 시를 읽었다. 뭔가 노래로 지을 법 해서 검색해보니 진짜로 누가 자작곡을 유튜브에 올려놨다ㅋㅋ
1음시발(mw02658)2023-08-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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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명 뜰 시리즈 봄 버전ㅋ. 초봄 추위에 당연히 창문을 닫아놓아 밖을 못본다 했으면서도 해빙의 파편을 바라보고 있는듯이 얘기한다. 그래서 집밖의 풍경은 제쳐두어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봄이라 해도 그에겐 해빙보다 결빙의 파편이 어울리지만 자식과 아내는 그래도 시인의 마음에 화톳불을 피우는 듯 하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결빙해야만 한다. 오늘 따뜻한 바람이 불어도 찬 바람을 들여보내야 하는 처지, 번영과 황폐를 반복하는 밭과 같다. 이런 농간은 가히 사기라 하여 좋지만 공허한 느낌으로 남긴 고독이 아닐 것이다. 일전의 그의 시 ‘여름아침’에서도 밭고랑이 나오는데 경계를 지음과 동시에 화해시켜주는 표상으로써 해석했다. 일맥상통으로 여기서도 그런 분위기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닐
1음시발(mw02658)2023-08-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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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생각이 든다. 신을 인정하면서 무재주와 사기라 하면은 이런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그만의 표현일 것이다. 다만 그 깟 병아리와 파가 뭐라고 내게 따뜻한 미련이 남았다
1음시발(mw02658)2023-08-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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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탄생과 동시에 시대의 이념-종교-이 죽음만을 가르킨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삶속 바라본 이정표들이 모두 죽어야 귀결되는 것들을 가르킨다면 어느 길을 가야되나. 그래서 시인이 휴식을 제안하는걸까, 움직이는 건 비가 대신해주니 말이다. 나는 반농담조로 가끔 예술이 대신 살인해주고 자살해준다 라고 말한다. 이 시에선 비가 누군가의 종교가 돼주고 당신의 움직임을 제-8연2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무작정 모든 비애를 비에다 맡기고 휴식하는 건 그 다음이 없다. 생활에 안도해봤자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나같은 욕심쟁이들은 그 후를 예술에서 탐닉하는 법이다. 다만 그저 김수영의 비는 위로하는 시일 뿐...
1음시발(mw02658)2023-08-13 16:36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있다. 나의 몸이 솟아 구릉을 형성한다. 우리는 걷고 있다. 우리는 산등성이를 내려가고 있다. 이 두 행위는 동시적이다. 혼자 광야에 있으면서 우리로서 공동의 운명에 따르는 비기가 생겼나보다.. 간디급맞고요.이전 시들에 비해 더해진 반복적 음율이 광야와 하나 된(?) 나가 솟아오르는 듯한 운동적 시각감을 주었다.
익명(222.106)2023-08-13 22:52
답글
나와 우리. 정지감과 운동성이 동시에 따로이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 오늘은 나가 오롯이 감당하고 성취되는 지경인가 보다
익명(222.106)2023-08-13 23:26
2. 봄밤이란 제목에 부드럽고 풀어지는 이미지를 준비하고 읽었다. 김수영도 참.. 봄밤은 관심도 없다. 자신만의 봄밤도 예의 딱딱하다.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말라말라말라. 화자는 경전에 나올 법한 어법-신적 위치에서 계도하고 권고하는 어투로 상대를 자제시킨다.
익명(222.106)2023-08-13 22:57
답글
보이지 않는 청취인은 뭔가 새길을 발견할(한) 듯한 흥분에 차 있는 듯하다. 화자는 절제하라고 천천히라고 말하지만 달래는 음성도 이미 흥분을 감추고 달리고 있다.
익명(222.106)2023-08-13 23:00
3. 3. 이 시 기분 좋았다. 김수영 시 중 가장 음악적인 시인지 더 읽어봐야지만 3편 연속되니 이 시기 발견한 길이 혹시 시의 운율이었나 생각 들었다 1. 2처럼 반복의 후렴구는 2연 강바람과 자연스레 엮이어 바람에 바람을 간구하는 소리처럼 들리다 아니아니 모르겠다 하다 소리가 휘돌며 바람을 일으키는 듯도 한데 마지막 반전이 있다.
익명(222.106)2023-08-13 23:01
답글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반복의 음울로 기운을 독려하는 주술성이 있으나 기분은 이미 좋아 보인다.
익명(222.106)2023-08-13 23:03
나도 좀 드러누워야겠다
익명(222.106)2023-08-13 23:04
답글
1음시발(mw02658)2023-08-13 23:12
답글
매번 와줘서 고마웡
1음시발(mw02658)2023-08-13 23:12
덕분에 읽어봐서 고맙지
익명(222.106)2023-08-13 23:31
초봄의 뜰안에 : 뜰이 있는 ㄷ형태의 한옥 구조를 떠올려본다. 난간문이란 툇마루에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초봄의 뜰에 서면 집안 풍경이 안 보인다고.. 파를 좋아한다..
익명(222.106)2023-08-14 20:27
5. 비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김수영 시 중 가장 멋진 1연 중 하나다. 첫 행 6음절은 강력한 사운드 효과가 있고 /여보/라는 대상을 호칭하는 순간, 접힌다. 시가 접힌다. 입체 공간이 생기고 화자는 마치 배우처럼 무대에 서 있는 듯하다. 비가 오고 있다. 비는 움직이는 비애이다.
익명(222.106)2023-08-14 21:09
현대의 결의와 변혁도 다 비애다. 쓴이가 이데올로기를 들먹한 게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무수한 종교들의 움직임, 너무 많은 비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비는 움직임을 제어하는 힘-멈춤을 가지고 있어 비애로부터 더 나가볼 수 있다. 마지막 연은 연극 무대의 한장면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ㅉㅉㅉㅉ
1.팔자좋게 드러누워 대지의 감수성을 융화한다. 꿈같은 얘기들과 잠결에 내 뱉는 말 하나하나에 산만큼이나 힘을 부여하는데 독자로서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 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것이 선교사처럼 예지같은 분위기속에 믿음이 필요하다면 다른 이야기다. 그가 광야에 스스로 헌신 한다면 기꺼이 발 딛을 가치는 있을 것 같다. 이미 나는 여태 그의 잠언들을 꽤 읽어온 탓에 뜻 깊은 행들이 모인 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
2.서두르는 것에 대한 지양보다 느림의 미학을 말하는 것 같았다. 서둘다 라는 것은 고작 행하나 마다 밋밋한 서술어로 끝나지만 아름다운 느림의 표상들은 생동감있고 차분하여 따뜻한 봄밤과 같이 느껴졌다. 비록 규모가 큰 것이 눈 앞에 나를 방관하도록 종용하여도 그는 되려 차가움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언제 기어나와 분노를 터트려야 되는 지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무거운 추를 매달고 그 관성을 느끼라고만 하여도 낭만적인 모습에 마냥 화낼 수도 없는 노릇인 듯 싶다. 그는 처음부터 계속 말하고 있었던 셈인데도 이런 마음을 품게됐다. 도닦는 심정이다.
3.언제 시골에 가서 만취가 돼서 술 깨려고 마을 한 바퀴를 돈 적 있다. 한밤중에 걷다보니 햇빛을 받을 땐 시끄럽게 제 모습을 자랑하던 밭과 논, 개울들이 그렇게 차분해졌던걸 보았었다. 이 기억 때문에 밤의 광경으로 시를 읽었다. 뭔가 노래로 지을 법 해서 검색해보니 진짜로 누가 자작곡을 유튜브에 올려놨다ㅋㅋ
4.일명 뜰 시리즈 봄 버전ㅋ. 초봄 추위에 당연히 창문을 닫아놓아 밖을 못본다 했으면서도 해빙의 파편을 바라보고 있는듯이 얘기한다. 그래서 집밖의 풍경은 제쳐두어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봄이라 해도 그에겐 해빙보다 결빙의 파편이 어울리지만 자식과 아내는 그래도 시인의 마음에 화톳불을 피우는 듯 하다. 하지만 역시나 그는 결빙해야만 한다. 오늘 따뜻한 바람이 불어도 찬 바람을 들여보내야 하는 처지, 번영과 황폐를 반복하는 밭과 같다. 이런 농간은 가히 사기라 하여 좋지만 공허한 느낌으로 남긴 고독이 아닐 것이다. 일전의 그의 시 ‘여름아침’에서도 밭고랑이 나오는데 경계를 지음과 동시에 화해시켜주는 표상으로써 해석했다. 일맥상통으로 여기서도 그런 분위기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닐
까 생각이 든다. 신을 인정하면서 무재주와 사기라 하면은 이런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그만의 표현일 것이다. 다만 그 깟 병아리와 파가 뭐라고 내게 따뜻한 미련이 남았다
5.탄생과 동시에 시대의 이념-종교-이 죽음만을 가르킨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삶속 바라본 이정표들이 모두 죽어야 귀결되는 것들을 가르킨다면 어느 길을 가야되나. 그래서 시인이 휴식을 제안하는걸까, 움직이는 건 비가 대신해주니 말이다. 나는 반농담조로 가끔 예술이 대신 살인해주고 자살해준다 라고 말한다. 이 시에선 비가 누군가의 종교가 돼주고 당신의 움직임을 제-8연2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무작정 모든 비애를 비에다 맡기고 휴식하는 건 그 다음이 없다. 생활에 안도해봤자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나같은 욕심쟁이들은 그 후를 예술에서 탐닉하는 법이다. 다만 그저 김수영의 비는 위로하는 시일 뿐...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있다. 나의 몸이 솟아 구릉을 형성한다. 우리는 걷고 있다. 우리는 산등성이를 내려가고 있다. 이 두 행위는 동시적이다. 혼자 광야에 있으면서 우리로서 공동의 운명에 따르는 비기가 생겼나보다.. 간디급맞고요.이전 시들에 비해 더해진 반복적 음율이 광야와 하나 된(?) 나가 솟아오르는 듯한 운동적 시각감을 주었다.
나와 우리. 정지감과 운동성이 동시에 따로이 작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 / 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 오늘은 나가 오롯이 감당하고 성취되는 지경인가 보다
2. 봄밤이란 제목에 부드럽고 풀어지는 이미지를 준비하고 읽었다. 김수영도 참.. 봄밤은 관심도 없다. 자신만의 봄밤도 예의 딱딱하다.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말라말라말라. 화자는 경전에 나올 법한 어법-신적 위치에서 계도하고 권고하는 어투로 상대를 자제시킨다.
보이지 않는 청취인은 뭔가 새길을 발견할(한) 듯한 흥분에 차 있는 듯하다. 화자는 절제하라고 천천히라고 말하지만 달래는 음성도 이미 흥분을 감추고 달리고 있다.
3. 3. 이 시 기분 좋았다. 김수영 시 중 가장 음악적인 시인지 더 읽어봐야지만 3편 연속되니 이 시기 발견한 길이 혹시 시의 운율이었나 생각 들었다 1. 2처럼 반복의 후렴구는 2연 강바람과 자연스레 엮이어 바람에 바람을 간구하는 소리처럼 들리다 아니아니 모르겠다 하다 소리가 휘돌며 바람을 일으키는 듯도 한데 마지막 반전이 있다.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반복의 음울로 기운을 독려하는 주술성이 있으나 기분은 이미 좋아 보인다.
나도 좀 드러누워야겠다
매번 와줘서 고마웡
덕분에 읽어봐서 고맙지
초봄의 뜰안에 : 뜰이 있는 ㄷ형태의 한옥 구조를 떠올려본다. 난간문이란 툇마루에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초봄의 뜰에 서면 집안 풍경이 안 보인다고.. 파를 좋아한다..
5. 비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김수영 시 중 가장 멋진 1연 중 하나다. 첫 행 6음절은 강력한 사운드 효과가 있고 /여보/라는 대상을 호칭하는 순간, 접힌다. 시가 접힌다. 입체 공간이 생기고 화자는 마치 배우처럼 무대에 서 있는 듯하다. 비가 오고 있다. 비는 움직이는 비애이다.
현대의 결의와 변혁도 다 비애다. 쓴이가 이데올로기를 들먹한 게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무수한 종교들의 움직임, 너무 많은 비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비는 움직임을 제어하는 힘-멈춤을 가지고 있어 비애로부터 더 나가볼 수 있다. 마지막 연은 연극 무대의 한장면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