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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있다. 기승전결 구조라 보면 된다. 책은 100세 시대를 사는 노인들을 조명하고, 문제점을 말하다가, ‘100세 시대에도 행복한 노년을 살 수 있는 길은 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희망찬 결말이다. 이 책의 원작은 EBS 다큐다. EBS는 훈훈해야 하지 않겠나.
이 책의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4부에서 나오는 훌륭한 어르신들의 조언과 말씀은 주옥같다.
나이 든 후의 나이 생활이 예술작품이 된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소설이나 영화를 만든다고 상상해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떻게 해야 내 삶이 더 아름답고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작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갈 삶 그자체입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장회익)
노인은 늙은 결과가 아닙니다. 살아온 것의 결과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허망하게 지 낼게 아니라 잘익은 열매처럼 점점 더 좋은 향기가 나고 좋은 영양가가 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호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그러나 이런 분들은 노인 중 정말 극소수다. ‘바람’직한 노인들은 샅샅히 뒤져야 찾아 낼수 있다. 세 수업>도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장회익님과 .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라는 얘기로 유명한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님을 겨우 찾아낸 것이다. 사실 실제의 노인을 글로 옮기는 것은 마치 한 인간을 살해하는 과정과 같다.
노인이 되는 과정은 대충 이렇다. 40대 이후 서서히 눈에 문제가 생긴다. 노안이 시작되고. 50대 쯤되면 각종 수치들도 나이를 먹는다. 혈압도 나이만큼 올라 ‘고’혈압이 되기 시작한다. 60대에는 근육이 줄어든다. 척수와 관절도 급속히 퇴화하기 시작한다. 70대 이후부터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신경과 감각세포가 사라진다. 누가 귀를 막기라도 한 듯 소리가 안 들린다. 안들리니 목소리가 커진다. ‘왜 이렇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지?’. 말이 안통하니 노인도 상대방도 말을 하지 않는다. 몸은 기능을 거의 다해가고, 얘기를 나눌 상대도 점점 없어진다. 지금은 작고한 작가 필립 로스는 <에브리맨>에서 실감나게 노년을 표현했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인터넷에서도 노인 학살은 어김없이 이뤄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전방위적이면서, 잔인한 언어로.
노인충. 고집셈. 냄새남. 소리큼. 태극기. 펄럭. 틀딱. 딱딱딱.
다행이라 해야되나. 당사자들은 이 학살의 현장을 직접 목격할수 없다. 노안 때문에. 그러나 느낄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혐오의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걸 포착하는 건 동물의 본능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이 홀로코스트 속에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근육이 헐거워져, 내리막 길을 조심히 내려와야되고, 경비원 자격증 시험을 위해 객관식 문제집을 풀고, 아파트 경비실에서 택배를 정리해야 되며, 경비를 보다가 자신의 얼굴에 날아들지 모르는 주먹을 대비하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겨우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책은 ‘바람직’하고 ‘창의적’인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아름다운 냄새를 내기 위해서는 베풀어야 한단다. 바람직해지고 창의적이고 독립적이 되면 행복한 노인이 될수 있다는 거다. 시인 메이 사튼이 그랬고 작가 마사 튜터가 그랬단다. 홀로코스트에서 싸우고 있는 노인에게 ‘창의적’이 되면 좋을 거라니. 창의적이다.
몇일 전 눈이 내렸다. 포털에 노인이 찍힌 사진이 눈에 띄었다. 노인은 폐지가 가득찬 쇼핑카트를 밀고 있었다. 눈이 내렸다.
(책은 잘 읽어놓고 삐딱한 리뷰가 나오게 돼서 의외다;)
바람직한 청년이 극소수니 당연히 바람직한 노인도 극소수지. 그리고 애초에 극소수가 아니었다면 거기에 '바람직하다'라는 문구가 붙을 수 있을까?
리뷰 참 좋네. 에브리맨도 급땡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