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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기에 좋은 책이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먼저 좋은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쁜 의미에 대해서 부언하도록 하겠다. <인간의>는 말 그대로 인류 역사에서의 흑역사를 다루는 책으로, 환경,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의 실패를 유쾌하고 우스운 필체로 다루고 있다. 구성 역시 그런 해학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구어체로 어떠어떠한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왜냐, 단순히 어떠어떠했기 때문이다, 하는 식이다. 그 이유에 들어가는 것들은 대체로 인간적인 사유들로, 실수, 인격적 결함, 욕망, 무지 등등이 있다. 예를 들면 호라즘이 칭키즈 칸에게 공격 당할 때까지의 서신 교환을 토대로, 호라즘의 멸망 및 칭기즈 칸의 무지막지한 진격의 원인은 당시 호라즘의 왕 무함마드 2세의 치졸함 때문이었으리라 이야기하는 식이다.



실제로 수많은 문제들은 생각 이상으로 사소한 원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의 가벼운 필체와는 별개로, 참사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이 도대체 누가 이런 참사를 일으켰냐 라는 질문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대체로 참사는 어떤 악의적인 주체 한 명의 지도보다는 그 지도가 중간 과정에서 누구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않거나 또는 애초에 그 지도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빚어지는 동안 그 누구도 이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곤 하며, 참사는 우리의 개입 바깥에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참사는, 반대로 누구의 의도도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 그 자체의 현상이다. 인류 문명이 고대의 치수부터 시작해 수많은 재앙들을 최대한 조절하거나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는 조금 성격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홀로코스트와 비슷한 규모로 벌어졌던 당시의 수많은 대기근 문제는 아무래도 홀로코스트가 조금 예외적인 사태임을 보여준다)



다루는 사례들 또한 누구나 흔히 알 법한 소재에서부터 잘 몰랐던 것들까지 꽤나 다양하게 망라한다. 개인적으로는 콜롬버스가 정말 '어느 정도로' 계산을 잘못해 항해 지원을 받지 못했는지를 처음 알았고, 유연가솔린에 대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납-범죄율 가설(유연가솔린으로 인해 증가한 혈중 납 농도와 당시 급증한 범죄율이 서로 상관 관계가 있다) 같은 게 진지하게 다뤄질 정도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후자에 대해서는 단순한 가설이기 때문에 이를 반박하는 연구도 많은 듯하다 - Debunking the lead crime hypothesis | by The Gift Of Fire | Medium) 적당히 재밌는 잡학사전을 보듯이 한 번 보기에는 딱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바로 그 부분 때문에 애매하기도 하다. 왜냐면 <인간의>는 여러 문제들을 매우 단순한 인간적 원인으로 축소시키기 때문이다.



저자 본인도 이따금 중간중간에 말하지만, <인간의>에서 다루는 많은 사건들은 사실은 그리 단순하게 원인을 규명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이를 테면 마오쩌둥의 "해로운 새"가 당시 문화대혁명 때 얼마나 많은 문제와 맞물려 있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다. 외교 문제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여러 외교 문제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는 <몽유병자들> 같은 두꺼운 책으로 나올 정도로 여러 가설과 복잡한 내부 문제들이 가득하다. 이것들을 깔끔하게 끊어내려면 아무래도 유쾌하고 다소 방관적으로, 사람 일이 원래 그렇지, 하는 시니컬한 마음이 있어야 할 테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되는 글을 묶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나무위키의 문서들을 짚어나가다보면 비슷한 책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전, 나무위키의 '잔 다르크' 문서와 관련해서 근거 없는 전략, 전술 정보들이 가득 적혀 있던 것이 어느 한 사람의 조작된 서술이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나무위키에 대한 개인적 신뢰도가 훨씬 더 떨어졌는데, 그러한 문서들에서 대체로 공통적인 것이 바로 이런 개인에게 온갖 사건의 원인을 몰아주며 사건과 사건들이 놀라울 정도로 인과적 관계를 갖는 스토리텔링이었다. 아마 <인간의>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처음부터 말했듯,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P. S. 제목에 당당히 붙어 있는 '흑역사'라는 용어가 건담 애니메이션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이제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신박'이라는 말이 얼마나 쓰일까 생각하며 서점에 검색을 해보니 이 또한 이미 책 제목에도 많이 쓰이고 있었다. 언어의 역사성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