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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서 매켄 단편집을 읽었다. 어떤놈이 장기간 연체하는 바람에 그동안 빌릴 수가 없었다. 꽤 오래 기다려서 겨우 빌려다 읽은 건데,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움... 럽크가 극찬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읽다 보니 럽크를 비롯한 후대 공포소설가들이 영향을 받은 듯한 부분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스토리 자체보다는 이쪽으로 조금 이야기해 보고 싶다. 한 세 가지 특징이 가장 눈에 들어오던데, 이 부분만 정당히 정리해 놓는 게 좋아 보인다.
첫째는 코스믹 호러에 관한 부분이다. 코스믹 호러를 '미지에 대한 공포'로 정의하든, 아니면 '초월적인 존재에게 무기력하게 파괴되는 공포' 같은 걸로 정의하든 아서 매켄은 모두 포함되는 것 같다. 먼저 매켄의 소설에서 공포의 대상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끝에서 끝으로 가야 겨우 사건의 전말이 조금 드러날 뿐이고, 그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밝힌다기보다는 암시적으로 모호하게 전달되는 편이다. 게다가 이런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요소는 추리소설스러운 플롯으로 더더욱 강조된다. 철저한 조사와 합리적인 추론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지만, 사건의 전말에 도달했다 싶은 지점에서 다시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저번에 읽었던 <환상문학서설>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환상-경이 장르에 속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애쓰다가, 마침내 자연법칙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바라보고는 절망하고 초자연적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다. 또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는 <위대한 신, 판>에 잘 나타난 느낌이다. 정말 많이 짧게 요약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신인 판을 목격한 사람들이 공포로 미쳐서 자살하는 그런 사건을 다룬 단편인데, 이 '고대의 신', '신 앞에 선 자들의 공포' 이런 요소들이 럽크 크툴루 신화 등에 모티프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럽크의 <공포 문학의 매혹>을 보면 호러 문학의 기틀을 닦은 사람이 포라면 현대적인 코스믹 호러의 시초는 아서 매켄이라는 듯이 말하는데, 정말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로는 '중국식 상자'라고 불리는 작품 구성이 눈에 띄었다. 이 중국식 상자란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상자 안에 작은 상자가 들어있는 물건을 가리키는데, 이 상자처럼 메켄의 단편들도 단편 안에 짧막한 토막글이 여러 편 모여서 하나의 서사를 이루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 연작이 아니라 토막글 연작으로 한 편의 단편소설을 만드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꽤나 특이한 형식이 아닌가 싶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럽크의 <크툴루의 부름> 같은 작품도 그렇고, 요즉 즐기고 있는 리고티의 단편집에도 이런 구성의 단편이 몇편 실려 있다. 얼마 전에 번역한 <테아트로 그로테스코>도 여러 소문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등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매켄이 이런 형식의 원조인지는 몰라도, 나름 공포 문학계에서는 형식상의 모범이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은 조금 의문에 가깝긴 한데, 매켄 소설을 보면 대부분의 이야기가 작중 인물의 대사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주인공격인 인물이 직접 체험하면서 얻은 정보를 풀어내기 보다는 다른 인물이 썰을 푸는 걸 듣고 있는 그런 장면이 많다는 뜻이다. 일반 문학을 예로 들자면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에서 화자가 말로우의 말을 듣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만한다. 나는 이런 구조도 일종의 액자식 구성 같은 걸로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구조가 공포 소설에서 어떤 효과를 보여주는 것인지 조금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이런 의문은 메켄 소설만이 아니라 공포 소설 전반에 대한 의문인 것 같다. 이것도 가만 생각해 보면 다른 공포 소설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구성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발견한 고문서, 출간되지 않은 소설의 원고, 잘못 도착한 편지, 바다를 타고 내려온 병 속의 수기, 터무니 없는 헛소문 등의 형태로 전해들은 이야기가 점점 현실과 뒤섞이기 시작하는 이야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반 문학에서도 보르헤스나 존 바스 같은 작가들이 우려먹는 소재이기도 하다.
우선 알고 있는 이론이 <환상문학서설> 밖에 없으니 또 한번 우려먹어 보자면, 이런 액자식 구성으로 '망설임'을 조금 더 강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코스믹 호러의 특징이라고 하면, 환상문학에서 나타나는 자연과 초자연 사이의 망설임을 공포로 해석하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코스믹 호러 문학은 이 '망설임'을 강화시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는 꽤나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어 보인다. 허무맹랑하고 진위가 미심쩍은 이야기 속의 사건(초자연)이 점점 현실세계(자연) 속에 섞여 들어가면 둘 사이의 망설임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의 틀이 허물어지는 경험에서 공포를 이끌어내는 게 액자식 구성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런 액자식 구성을 조금 세련된 공포소설 작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도 해 보인다. 그러면 이 구조를 더 세련되게 발전시킨 작품은 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보르헤스나 바스 같은 사람들이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은 기법이기도 하니 공포소설에서도 분명 더 화려하고 정교하게 발전시킨 작품도 있을 것 같다. 바스처럼 메타픽션적인 이야기로 이야기 속 인물들 뿐만 아니라 독자들까지 불안에 떨게 만들만한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싶은데... 알 길이 없다. 또 이 기법을 더 전문적으로 분석한 글도 알아보고 싶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알 길이 없음ㅋㅋ
아무튼 매켄의 책은 무척 재밌었고, 조만간 2권도 빌려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권 사다가 소장하고 싶은데, 책값이 씹창렬이라 차마 구입하지는 못하겠다. 도서관이나 가도록 하자.
이정도로 극찬을 했으면 좀 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