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 페르누의 『잔 다르크 전기』는 첫 장에서 잔 다르크의 출신과 유년기를 다루며 시작합니다. 페르누는 이 챕터에서 고향 마을 동레미에서의 잔의 생활과 에피소드들을 이웃 주민들의 증언들을 빌려 묘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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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의 고향 마을, '동레미'의 전경


잔 다르크의 고향 마을, 동레미의 이웃들이 증언하는 잔은 전형적인 중세 후기 프랑스 농촌 시골 마을의 소녀였습니다. 집에서 물레질이나 바느질 같은 가사를 하며 주로 시간을 보냈고, 종종 아버지를 따라 밭 일을 돕거나 소 떼들을 돌보며 지내곤 했다네요.


복권 재판 증언들 중엔 잔이 '밭에서 쟁기를 끌곤 했다(allant à la charrue)'란 표현이 있어 '잔 다르크 천하 장사설'이 현재까지도 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프랑스어는 '밭에서 하는 노동'의 숙어적 표현일 뿐이라고 하네요.


일부 문학 작품들에선 그리스도교의 상징적 메타포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잔을 양 치는 목동 소녀로 그리기도 했습니다만, 잔은 양 치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고 합니다. 동레미는 목축을 해도 소를 키웠지 양을 치는 마을은 아니었습니다. 잔 네 집 역시 소들을 키웠죠.


마을에서 잔과 그 가족들, 즉 마을 이장격 직책을 맡고 있었던 아버지 자크 다르크와 어머니 이자벨 로미, 그 외 형제자매들(피에르, 자크맹, 쟝, 카트린)에 대한 평판은 좋았던 편이었습니다. 품행 방정하고, 성실하고, 신앙심 깊은 가족들이란 증언들이 많습니다. 특히 잔에 대해선 구호품으로 가난한 이웃들을 자선하고, 병자들을 잘 간호해 주던 선량한 소녀였단 진술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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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베르몽 성당


그렇다고 해서 잔이 마냥 착해서 '순한 어린 양 같은 신앙인' 타입은 또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깐지고 자기주장과 자기 고집이 강해 당돌하게 제 할 말 다 하고 사는 타입이었죠.


교회 종을 울리는 교회 관리원 아저씨가 제 시각에 종을 울리지 않으면 그 어린 소녀 잔이 중년 아저씨에게 왜 일을 제대로 안 하냐고 다그치기도 했답니다. 앞으로 종소리를 제때 잘 울리면 양모 옷감을 선물로 주겠다고 거래를 제안하기도 하면서요.


파문 재판에서 논란이 됐던 마을 어귀의 신수(神樹), 즉 '숙녀들의 나무(Ladies' Tree)' 혹은 '정령들의 나무(Fairies’ Tree)'에서 또래들이 축절(祝節)을 즐기며 놀 때, 잔이 자기는 노래는 불러도 춤은 안 추겠다 해서 또래들 사이에서 뒷담(!)을 까인 적도 있다고 하네요.


한 번은 누군가 잔에게 그녀도 모르는 결혼 약속을 받았다고 주장해 송사에 휘말린 적도 있는데요. 잔은 동레미에서 40km 가까이 떨어진 툴이란 도시의 재판정까지 직접 행차, 그 재판에서 승소했습니다. 아마도 전란의 시기, 잔의 미래가 걱정됐던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중매를 서 딸을 일찍 결혼 시키려다 생긴 해프닝으로 추측됩니다.


잔의 고집과 당돌함은 루앙시의 파문 재판정에서 특히 돋보였습니다. 그 살벌했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바느질과 물레질만큼은 루앙시 그 어떤 여자들보다 더 잘 할 거라 자신하기도 했고요. 아르마냑파를 지지하던 동레미 마을에서 유일한 부르고뉴파 지지 성향인 이웃 아저씨, '지라르댕 데피날'이 참수돼 죽길 바랐다고─물론 '하느님이 원하신다면'이란 전제를 달긴 했지만─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무려 친잉글랜드, 부르고뉴파 성향의 종교 재판관들과 성직자들로 가득했던 그 재판정에서 말이죠.


당시 프랑스는 두 당파, 즉 잉글랜드의 헨리 6세를 지지하는 친영 성향 부르고뉴파와 도팽 왕세자를 지지하는 아르마냑파, 이 둘로 나라가 완전히 쪼개진 상태였습니다. 두 당파 사이의 분열과 반목 심리는 왕가와 귀족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잔의 증언에 따르자면, 동레미의 젊은이들이 이웃 부르고뉴파 '막세' 마을의 젊은이들과 시비가 붙어 패싸움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패싸움에 참가했던 이들 중 일부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었다네요.


사실 동레미 마을은 '육지의 섬'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동레미 마을이 속해 있던 보쿨뢰르시는 프랑스 동부 변경 지대에 위치해 있었는데, 프랑스 동부는 보쿨뢰르 지역을 제외하곤 모두 잉글랜드령 혹은 부르고뉴파 소속이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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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레미 마을의 지도


동레미는 '뫼즈'란 이름의 강을 낀 마을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약탈과 습격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마을 주민들이 강 가운데 어느 섬에 대피소까지 차려 종종 피신을 하곤 했다 합니다. 그도 모자라 한 번은 잔 네 가족을 포함한 마을 주민 전체가 뇌프샤토란 인근 마을로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


잔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집착하게 된 건 본인의 성격적 원인도 있었겠지만, 암울했던 난세가 그녀를 그렇게 만든 면도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무엇보다도─가족 포함 마을 사람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그녀만의 비밀, 바로 그 목소리, '천사들의 계시'가 아마 가장 주요한 원인이었을 테죠.


* * *

페르누는 잔 다르크의 출신에 관해 널리 퍼져 있는 한 루머를 반박하며 이번 챕터를 마무리합니다. 바로 '잔 다르크 왕족설'입니다. 잔 다르크가 사실은 프랑스 왕국의 왕비인 바바리아의 이자보와 오를레앙 공작 사이의 불륜에서 태어난, 왕가의 감춰진 사생아라 주장하는 루머입니다.

저자는 해당 루머가 어째서 말이 안 되는지 아주 구체적인 예시들을 들어 논박합니다. 날짜 및 나이 상의 여러 문제점들, 사생아를 전혀 감추지 않았던 중세의 풍습과 그 실제 사례 같은 것들 말이죠.

사실 전 이 부분이 마음에 잘 와닿진 않았습니다. 잔이 왕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라, 2023년을 살아가는 한국 독자로서, 이제는 사람들이 그런 루머가 있었는지 잘 알지도 못하게 된 진부하다 못해 지루한 음모론 같아 보여서 말이죠. 이 책이 쓰인 1960년대 프랑스에선 해당 루머가 다소 간에 가십거리 수준은 됐었나 싶기도 합니다.

오히려 전 '왜 여주인공은 공주 아니면 거지 둘 중 하나여야만 하나?'라고 일갈했던 버나드 쇼를 따라서, 왕족설 루머의 정반대 위치에 서 있는 잔 다르크의 잘못된 이미지들 중 하나를 이 자리를 빌려 논파해 보려 합니다.

바로 대중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잘못된 이미지, '빈농의 딸 잔 다르크'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잔 다르크 네 집은 절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빈농은커녕 어떻게 끼니는 그럭저럭 때우던 평범한 소작농 수준도 아니었습니다. 상당한 부농 집안이었고요. 예스러운 비유를 들자면 천석꾼 수준의 전국구급 거부는 아니었지만, 그 마을에선 알아주는 동네구급 부자, 고을 백석 지기 정도는 됐습니다.

근거는? 잔 다르크네 집안이 소유했던 토지 규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페르누는 자신의 또 다른 저서(Joan of Arc: Her Story)에서 잔의 부모가 마을에 약 50 에이커 정도의 토지를 소유했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50 에이커는 평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6만 평쯤 됩니다. 보통 조선시대 천석꾼들이 논 20만 평 혹은 그 이상 정도를 소유했던 걸 감안하면, 잔 네 집 재산의 규모가 어느 정도 일지 감이 오시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프랑스는 국토 면적 및 경작 가능 지대 모두 조선보다 몇 배씩은 더 넓은 데다 주요 재배 작물도 달라 둘을 그대로 놓고 비교하긴 어렵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 학자 프란시스 기스에 따르면, 중세 유럽에서도 30 에이커(a virgate) 정도의 토지 소유 여부가 부농의 기준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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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의 생가입니다. 위 그림은 생가가 보존됐던 옛날의 그림이고요. 아래 사진은 잔 다르크 생가가 세월의 풍파로 훼손되고 일부 흔적만 남은 최근의 모습입니다.


잔의 가족은 방이 몇 개는 딸려 있는 꽤 큰 벽돌 기와집과 그 내부의 각종 가구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현금도 소유하고 있었다 합니다. 마을을 지나는 투숙객들을 돌봐 줄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여력도 있었다 하고요.


사실 잔 다르크 왕족설과 빈농설은 그 내용은 정반대라도, 루머의 동기 차원에선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역사는 바뀌지 않을 것이고 바꿀 필요도 없으며, 인간의 삶이란 주어진 세상에 순응해 최대한 자기 욕망을 멋지게 실현하다 가는 게 최선이란 현대 사회의 대중적 기대와 인식 말이죠.


잔 다르크가 사실은 숨겨진 왕족이었단 얘기는 결국 애초부터 기적 같은 건 없었고 잔 다르크는 마스코트, 꼭두각시밖에 안됐단 이야기와 직결되죠. 그녀의 활약들은 정치권력들 간 게임 논리와 중세의 광신적 문화가 기획한 허상에 불과했단 의미고요.


잔 다르크가 빈농이었을 거라 기대하는 심리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자수성가형 판타지, 출세 스토리와 이어집니다. 변방 무일푼 소녀의 신세 역전 이야기에 대한 감정 이입이 스며 있는 거죠. 노력을 하고,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세상이란 기대감과 함께 말이죠. 다만 어둡고 미개한 중세가 그녀를 불속에 내던 진 게 비극일 뿐이라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진상을 알면 알수록, 잔이 받았던 고통엔 한 개인이 그 개인이 속한 사회의 폭력적 정치권력과 시대의 미개성 앞에 꺾여 버린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과연 역사의 법칙은 변할 수 있을까?' 혹은 '인류는 그 본성에 내재돼 있는 어둠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와 같은, 보다 더 본질적이고 '딥한' 질문들이 남아 있달까요.


다음 글에선 잔이 계시로 받았다는 '사명'과 그녀의 출가에 대해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