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는바가 많다...짧은 책이지만 건진게 많았음. 일단 난 역사를 좋아함. 단편적인 사실조차도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 특히 정치나 경제같은 거대한 구조와 시스템에대한 역사적 서술보단 미시사를 좋아함. 예를들어 이 책에는 개방골절이 오랫동안 불치의 부상이라고 나와있음. 뼈가 부러졌기 때문은 아님. 뼈가 부러지는것 자체는 폐쇄골절의 치료법이 히포크라테스의 저서에도 나와있을만큼 엄청난 문제는 아니었던것임. 문제는 뼈가 피부를 찢고 튀어나오는 경우. 무균법과 소독법이 없었으므로 큰 상처가 나는 개방골절은 감염때문에 신체를 보존할수가 없었음. 개방골절이 생기면 그부분을 아예 절단하든지, 아니면 죽든지 둘중 하나였던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개좆같은일 아니냐 지붕에서 일하다가 발 잘못디뎌서 떨어져서 발목이 부러졌는데 살고싶으면 발모가지를 그냥 잘라야된다고? 신이시여 소리가 절로 나옴.
이런식으로 그 시대의 실상을 작은 정보를 통해서 추측해볼수 있기 때문에 미시사적인 개별 지식들은 항상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거대한 세계를 감지하게 해줌.
한편 사상적으로도 감명받았는데, 예를들어 클로드 베르나르라는 프랑스의 생리학자는 1813년생이고 1878년에 죽었음. 이 사람은 생명이 외부와 분리된 내부의 좁은 영역에서 작동하는것을 설명했는데 이를 위해서 내부환경이라는 개념을 사용함. 그리고 이 개념이 발전된것이 오늘날의 항상성 개념. 항상성과 항상성이 정의하는 '내부' 는 생물학에서 정말로 중요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엄청나게 심오한 개념임. 언뜻 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별것 아닌 개념 같지만, 과학 개념의 상당수가 그렇지. 개념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것이 적용되고 설명할수 있는 대상의 크기는 무한에 가깝지. 한 에세이에서 사용된 도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설명하려는 대상/설명하는 이론의 비율이랄까. 반대로 많은 철학 이론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 비율이 0에 한없이 가깝다 할수 있지. 왜 굳이 철학을 까내리느냐면, 사실 까내리고싶은건 아니고 단지 세상에대한 우리의 지식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것뿐이랄까. 베르나르의 항상성 개념의 대상/이론 비율은 무한에 가까운데, 그에 반해 베르나르의 이름은 거의 알려져있지 않음. 아니 솔직히 나도 이 책에서 완전 처음 들었는데, 책깨나 읽고 유식하다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일듯. 평범한 사람들이야 말할것도 없고. 반면 실제로 세상의 무엇도 설명하지 못하고 단지 열심히 하셨을뿐인 수많은 철학자들의 대상/이론 비율 0에 가까운 주장들은 어떤가? 너무나도 유명하고 숭배되고 있지 않나? 우리는 정말로 이 세상에 대해서 알고싶은게 맞는걸까? 그게 아니라 사실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되어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그 소망대로 설명하는 이를 지지하고 숭배하는것은 아닐지?
또 이 베르나르가 한가지 더 기똥찬 이야기를 하는데 실험실에서의 실험자의 태도에 대한것임. 이 사람의 비유를 빌리자면 실험실에 들어갈때 '생각' 이란것은 모자와 같은것이어서, 들어갈때는 벗어두고 들어가고 나올때 다시 써야하는것이라 함. 이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냐. 실험에 영향을 줄수 있는 각종 요소들, 편향을 배제하기 위해서, 실험실에 들어갈때 생각을 놔두고 들어가라는거야. 들어가서 기계적으로 계획된 절차만을 수행하고 나온 다음, 실험실 밖에서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라는거지. 현대 과학의 방법론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사상인데, 이런 생각을 이 시대 사람이 했다는게 꽤나 놀랍지. 참고로 니체는 1844년생... 니체랑 비교하려는게 아니고 1813년생이 얼마나 고릿적 사람인지를 상기시키고싶어서.
그 밖에는 고대 전인주의에서 근대 환원주의로, 다시 전간기 전인주의로, 그런데 또다시 2차대전 이후 의학혁명이 일어나면서 환원주의로, 그러다가 또다시 의과학의 발전세가 수그러들고 생활환경과 인프라, 경제를 강조하는 수평적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고개를 든 전인주의로, 전체와 부분 사이를 오가는 사상적 흐름도 재미있었고.
그리고 또 읽기전에는 생각도 못한 수확이 하나 있는데, 옮긴이 박승만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는것.
역주가 50개정도 있는데, 이 역주를 읽다보니까 이 사람 이 분야에대한 내공이나 열정이 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검색해봤는데 이름에서 풍기는 인상이랑 달리 되게 젊은 사람이더라? 얼굴만 봐선 30대초반 같은데... 카톨릭대 의대 인문사회학교실 조교수더라. 참고로 카톨릭대에는 박승만이 두명 있더라. 젊은쪽이 이 책 번역한 사람임. 아무튼 이런 학보 인터뷰도 있고 (http://www.cuk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466) 읽어보니까 책을 상당히 많이 읽은거같더라. 뭐 역사+인문학 연구자니까 당연한거겠지만, 역주 보면 저자의 오류까지도 지적할 정도로 제대로 공부하고 번역한 느낌임. 그냥 부수입 느낌으로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많은 전문가들이랑은 느낌이 달랐음. 어쩌면 이 사람은 나중에 유명해질지도? 아직 책을 낸건 없는거같은데 이런 사람이 내는 책이라면 읽어보고 싶다 생각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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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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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임
개방골절은 여전히 응급이다잉
그렇긴하지. 근데 죽느냐 아니면 팔 자르느냐의 무엇도 고르기 싫은 선택을 강요받지는 않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