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재독 삼독하고 요약해서 정리함.



1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태아일 떄 한 몸이었다가 태어나면서 분리된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분리 불안이 있다.


2 즉, 인간은 분리의 '고독'에 괴로워하는 존재다. 그래서 그걸 잊기 위해 술먹거나 마약하거나 섹스하거나 군중을 따라하거나 창조적인 일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상황을 도리어 악화시킨다.


3 분리 불안의 해답은 인간과 인간의 결합. 곧 '사랑'이다. 사랑은 받는게 아니다. 주는 거다.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머, 자신의 슬픔 ㅡ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모든 표현과 감정을 상대에게 주는 거다. 그럼으로써 상대도 자신의 살아 있는 것을 나에게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은 인간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리고 동료가 되게 하는 능동적인 힘, 인간을 타인과 결합하는 힘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4 사랑은 상대를 걱정(care)하는 것이고, 상대에게 책임감(responsibility)을 느끼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respect)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어떤 상태인지 민감하게 아는 것(knowledge)이다.


5 그런데 우리는 은연중에 사랑을 거래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아서, 서로의 매력과 부를 살피고 자신이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을 고르는 조건을 만족해야 비로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거래라고 볼 경우,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기껏해야 '받은 만큼 준다'는 자본주의의 공정한 거래 윤리를 희망할 수 있을 뿐이다.


6 탐욕스러운 물질지상주의 정신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예외적으로 이 정신에 맞서서 성공적으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사랑은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합리적인 대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랑은 분리 불안의 유일한 해답이다.


7 그렇다고 사랑의 구체적인 기술을 알려준다는 것은 넌센스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자기 혼자서 몸소 겪어야 하는 개인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의 기술은 개인 각자가 사랑의 실천을 통해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럼 어쩌라고? 가르쳐준다는 것은 구라였냐? 아니다. 침착해라. 구체적인 기술을 가르쳐주진 못해도, 인류가 그동안 발견해온 그 기술의 전제 조건은 가르쳐줄 수 있겠다.


8 사랑의 기술의 전제조건을 말해보자. 그것은 규칙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인생을 거친 '훈련'이다. 일종의 자기 수련이다. 또한 기술을 습득하는데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등, 상대나 나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어린아이는 계속 시도하며 조금씩 고쳐나가서 결국 어느 날엔가는 쓰러지지 않고 걷는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기술을 습득하는 것에 대한 '최고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상대의 표현에 민감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불안이나 근심이 아니라, 상대가 보내는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빈틈없는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이다.






한 줄 요약: 강형욱이 강아지 분리 불안 치료하듯이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