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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곰같이 어리석기만 했던 처녀가 그 마음을 잘 닦아서 나오는 것을 환웅이 보니, 비로소 하늘의 안 끝나는 마음을 그득히 그네 마음 속에 담아도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시고, 그러고 나니 그네의 으젓함에 환웅께서도 그리움이 생겨, 가까이 한 나머지에 곰 처녀는 마침내 애기를 갖게 되었는데, 그 이름이 당굴--단군(檀君)이었지요.

  당굴은 아주 먼 우리 옛말로 하늘이란 뜻이니, 사람은 언제나 두루 하늘다와야 한다는 속셈을 이 이름은 간직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늘다와야 하는 것이니까, 당굴(단군) 노릇으로 살자면 그 나이도 끝이 없어야 하는 것인데, 우리 처음 당굴님의 나이를 왜 일천 구백 여덟 살로 계산했느냐 하면, 그건, 사람의 살을 가진 목숨의 나이로서, 그 이름으로 왕 노릇을 한 그와 그의 후계자들의 이 세상 나이를 얼추 모다 합쳤던 것으로 보이는구먼요. 그 핏줄이 간절하기 작정이라면 여러 대를 고로코롬 합쳐 세도 좋기사 좋은 일이니까…….

  1920년 무렵까지도 이 "당굴"이란 이름으로 천대받으며 무당 노릇을 하고 다니던 식구들이 이 나라엔 어느 만큼 있었던 것인데, 지금은 눈 씻고 볼래야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인제는 뿔뿔이 홀로 되어 "떠돌이"란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남녀의 외토리들만이 남아 있소.

  이들도 멀리 멀리 안 가는 데가 없이 뻗쳐 가려 하며, 또 그런 하늘의 신바람도 간직하고 있는 점에서는 본래의 당굴과 아조 딴 것도 아니건만, 어느 때부터인지 속이 그만 텡 비기 시작하여, 거기 천만 가지 시름이니 뭐니 그런 걸 꼬작꼬작 집어넣어 채우고, 비칠비칠 헤매고 다니다가 어언간에 그만 그리 외토리들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지요.



-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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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시에서는 같은 주제를 다른 작품으로 변주처럼 거푸 사용한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가령 그의 「신부」는 10여 년 뒤 「몽블랑의 신화」에서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두 작품은 별도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으며 이는 시인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단군」 역시 이십여 년 전에 씌어진 그의 「한국성사략」의 변주와도 같은 시라는 인상을 준다. 고대와 현대의 정신적 흐름을 짤막하게 논평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군」은 기본적으로는 「하느님의 생각」, 「곰 색시」 등과 함께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에서 단군신화를 형상화한 연작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의 내용은 전형적인 이야기의 문체를 띤다. 주목되는 것은 후반부이다. 단군의 어원으로 불리는 '당굴'이 하늘이라는 의미라곤 하지만 이는 일종의 레토릭이고, 실제로는 무당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 중요하다. 고대에 '당굴'은 곧 임금의 역할과도 같았으나 개화 이후 그것은 천대 끝에 소멸되었다. 「한국성사략」에서 그 변화를 일본인 탓으로 그린 데 비해 「단군」에서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처리한 것은 눈길을 끈다. 서정주는 근대 이후 잃어 가는 정신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으나 이는 거의 언제나 그의 반근대주의적 태도에 대한 논란과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