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 미치히코, 이우연 역, 『조선 왕공족」, 파주: 백년동안, 2022.


1. 저자가 극우는 아니지만 상당히 오른쪽에 서 있다는 인상. 왜 역자가 이 책을 번역했는 지 알 것 같음.

2.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전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음

3. 저자는 왕공족들은 나라(국)보다 집안(가)을 더 중히 여겼다며 부정적으로 평가



1. 예전에 일본어 원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몇 년 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난해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서 읽어 봤어요. 근데 역자가 역자인지라...


2.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선과 악을 정해놓고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역사를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역사를 재구성하지 말고 역사는 객관적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는 저자가 완전히 극우는 아니지만 상당히 오른쪽에 서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역자가 이 책을 번역하기로 했나..


3. 공감이 가는 대목도 있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서 놀란 부분도 있었고, 전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그렇네요. 예를 들어, 저자는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입장을 굳힌 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해서 청나라와 제정 러시아의 그림자를 걷어낸 이후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니까 강화도조약 때부터 일본이 야욕을 보였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죠.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요? 한반도에 대한 방침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막대한 피해와 출혈이 뻔히 보이는 전쟁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벌인다? 굉장히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데요. 오히려 한반도를 (사실상의 식민지든 완전한 식민지로든) 어떤 형태로든 식민지로 삼는다는 방침을 정하고 이후 청나라,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각오를 하고 실제로 진행했다는 게 더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봅니다.


3-1. 또, 저자는 대한제국 군대해산에 대해서도 "규율이 없는 용병제를 고쳐 징병제를 시행하기 위한 과도기적 조치에 지나지 않고, 병합을 전제로 한 준비"(p.45)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모병제를 징병제로 전환하는데 반드시 군대를 해산할 필요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죠. 오히려 굉장히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견해에도 동의하기 어렵네요.


3-2. 또, 을사조약으로 '한국통감부'가 설치된 이후 초대 통감이 된 이토 히로부미가 궁금령을 선포한 목적이 "황제와 무당 사이에서 벌어지는 매관 행위와 외국인과의 모의를 방지하려는 목적"(p.38)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고종 시절 무당 진령군 사건이 있었고, 또 매관매직이 심각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이토가 궁금령을 선포한 이유는 저자가 "외국인과의 모의를 방지하려는 목적" 즉,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 외국인과 손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역시 저자의 견해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3-3. 그리고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이왕직이 편찬했다는 이유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조선왕조실록에 포함하지 않고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늬앙스를 보입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반환된 조선왕조의궤 반환에 대해서도 날이 서 있는 듯 합니다. 저자는 의궤들은 왕공종실록의 편찬을 위해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과 같은 제국주의적 침탈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일본이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을 편수해야 "의궤가 본래 의미를 가진"(p.236)다면서, 반환을 받고도 박물관 같은 곳에 전시만 해두면 한국이 돌려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주장합니다. 


특히 저자는 "상호주의가 존중되는 한, 반환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p.235)이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상호주의가 존중되는 한 반환이 옳다면, 상호주의가 존중되지 않으면 반환하지 않는 것이 옳을 수 있다는 의미 아닌가요? 그리고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상호주의는 무슨 의미일까요?


전반적으로 저자는 의궤 반환에 대해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에둘러 포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4. 다시 이 책의 본 주제인 왕공족에 대해 돌아가보면 저자는 왕공족은 기본적으로 나라(국)보다 집안(가)을 더 중히 여긴 일종의 매국노들이며 이들이 아니었으면 일본이 총칼 없이 '평화적으로' 한국을 식민지화 할 수 있었겠느냐고 비판합니다. 또, 일제 시대 왕공족들은 모두 방탕한 망나니거나 일본에 충성했던 자들이라며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특히, 의친왕 이건에 대해서 아주 신랄하게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건은 왕공족 중에서는 독립운동에 진심이었다고 알려져 있어서 좀 논란이 있을 듯 합니다.


또, 왕공족이라는 제도와 신분이 애매하게 등장한 것이라 구체적 사건을 접하면 어떤 게 처리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고종 묘비명에 '고종 태황제'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인가, 순종 장례식때 조기에 '순종황제'라고 적을 것인지, 순종 서거후 영친왕 이은이 이왕직을 계승할 때 그냥 '왕'이라고 할 것인지, '이왕이라고 할 것인지, '창덕궁 이왕'이라고 할 것인지를 두고 그때 그때마다 논쟁이 벌어졌다고 하네요.


5.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결혼에 대해서도 기존의 통설과 반대되는 주장이 실려 있어 흥미롭습니다. 이방자 여사의 회고록 등을 근거로 국가가 시킨 정략 결혼이라는 것이 통설이었으나 저자는 이방자 여사의 어머니인 나시모토노미야 아츠코의 일기와 궁내청 문건을 근거로 사실은 세간에 알려진대로 궁내성이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나시모토노미야가에서 주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나시모토노미야 가문에는 두 딸이 있었는데 황족이라고 하더라도 황족과 결혼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황족의 예로 대우 받고, 천황가에 다음가는 거액의 세비를 받고 있으며, 구 대한제국 황실의 정통"(p.123)인 이왕가에 관심을 갖고, 데라우치 조선 총독을 통해 비밀리에 혼담을 넣었고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궁내성(덴노)의 명령으로 결혼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방자 여사가 회고록에 그렇게 적은 것은 부모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움직였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방자 여사의 부친이자 훗날 전범으로 처벌 받기도 하는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도 영친왕과의 혼담을 알고 분노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로 봐서는 어머니 쪽이 단독으로 움직였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6. 219쪽에서는  "왕조 창업자 이성계의 통치는 『태종실록(太宗實錄)」"라고 적고 있는데 태조 실록의 분명한 오기입니다. 원서가 문제인지, 번역본이 문제인지는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