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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설마가 사람 죽인다고,

  혹시 모르니

  오늘은 각별히 조심해라."

  1960년 4월 19일 아침

  나는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안해

  내 큰자식 승해의 대학 등교길에

  이렇게 간절히 당부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날 경무대로 몰려가던 학생데모대의 선봉은

  돌연한 발포로 죽기도 했는데,

  내 아들은 그 도중에서 내 당부가 생각나

  통의동 골목으로 새어 살아왔대나.

  시(是)보담도 비(非)보담도 무엇보담도

  이것 하나 정말로 다행한 일이었다.



- 『안 잊히는 일들』(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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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에서 4.19는 근대 이후의 정치적 사건 가운데서도 가장 타성적 경향이 강한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위상의 절반 이상이 이른바 4.19 세대와 그 동조자들에 의해 아주 빠르게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4.19 세대에 의해 난공불락의 요새로 정립된 4.19의 이미지는 소설의 정신은 복합성의 정신이라고 말했던 쿤데라의 명제로부터 구만리장천 밖으로 떨어져 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기성세대의 쌍두마차였던 서정주와 김동리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입장에 처한 드문 작가들이었다.


사방으로 치이는 젊은 대학교 강사를 주인공으로 다룬 김동리의 단편 「바람아 대추야」는 4.19 당시의 현장을 그린 그 어떤 소설보다도 당대 사회를 객관적 거리에서 그리고 있다. 십여 년 뒤에 씌어진 「1960년 4월 19일」에서 서정주는 실제로 젊은 자식을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본 4.19를 그리고 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혁명의 당위성이라 할 수 있는 시비의 문제로만은 가려지지 않는 세상살이의 구체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소시민 근성'을 공격할지 모르지만 자식의 안전한 귀가가 무엇보다도 다행이었다는 실감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그러한 실감은 독자의 나이에 정비례할 것이다. 미당의 삶 또는 그가 실토하고 있는 삶에서 일관되게 발견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의 남다른 배려이다."라고 유종호는 『시와 말과 사회사』에서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