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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 책의 내용과 나의 주관적 관점이 더해져 쓰여졌다.
엔트로피 법칙은
두 가지 열역학 법칙에 근거한다.
1. 우주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2.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한다.
태초의 우주가 생성됐을 때의 압축된 에너지와
현재 세계의 에너지 양은 같다.
예를 들어 나무가 종이가 되서 불타 없어져도 우주적 관점에서는 에너지의 총량은 그대로다.
에너지가 변환된 것 뿐이다.
엔트로피는 이 에너지가 변환 될 때 쓰여지는 비용같은 것이다.
나무가 종이가 되서 불타 없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수 많은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나무를 그대로 냅두면 인위적인 일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저엔트로피)
톱으로 썰고 인부를 고용하고 트럭을 몰고 배기가스를 분출하고 도로를 달리고 공장을 세우고
기계를 만들고 종이로 만들어서 불을 붙이기 까지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일들이 발생한다. (고엔트로피)
이로 인해 유용 -> 무1용, 질서 -> 무질서로 변환되면서 엔트로피(에너지변환비용)양이 증가한다.
무질서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은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뿐 아니라 가공음식, 볼펜, 기타 등등
여러 제품의 제조 과정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느껴진다.
그런데 책에 나온 유용->무1용한 것으로 된다는 말은 처음에 확 와닿지 않았다.
나무보다 종이가 나한테는 더 유용한 것 아닌가? 기타 제품들도.
그리고 그건 인간의 관점일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책에 나온 내용 중에 폐쇄계, 개방계에 대한 챕터가 있다.
예를 들면
향수 냄새가 있는 좁은 방은 향수 냄새로 가득할 것이다. (저엔트로피 = 압축적)
이 것이 공간이 넓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냄새는 퍼진다. (고엔트로피 = 흩어짐)
향수 본연의 유용함에서 무1용함으로 바뀌는 것이다.
저엔트로피는 압축적이고 본질적이다. 이것이 흩어졌을 때 본질적인 역할과 기능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이다.
나무의 본질적 역할이 다른 에너지로 변환되면서 무1용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질서가 발생한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왕권이나 도시 제도같은 것들도 엔트로피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고도의 질서를 갖춘 국가와 중앙 집권적인 도시들도 시간이 흐름과 인구 증가, 개발, 발전함에 따라 관리할 영역이 많아진다.
분쟁 발생량도 증가한다. 무질서가 만연해지는 것이다. 애초의 건국이념은 번영될 수록 지키기 어려워진다. (시간 흐름, 공간 확장->본질 희석)
인류 역사에서 명확한 진실은 흥망성쇠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쇠'에 해당할 때 엔트로피 분수령에 해당하는 시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분수령 = 어떤 사물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의 전환점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
새로움 개념, 에너지 변환 기술, 가속되는 엔트로피 증가율을 감당하지 못해 자연적으로 감속되는 현상들을 얘기했다.
그것은 전쟁일 수 있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 또는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 특정 하나 뿐아니라 복합적일수도 있다.
역사는 반드시 고엔트로피 사회에서 무질서의 정점을 찍은 뒤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그것을 인류는 '발전'이라고 부른다. 그로 인해 다시 또 새로운 무질서들이 생성된다.
현재 지구는 기후변화와 고도의 기술 경쟁, 무수한 정보들도 무질서가 만연하다. 누가봐도 고엔트로피 사회다.
정보의 본질적 의미, 정치인의 본질적 의미, 기술의 본질적 의미들이 희석되고 흩어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동전의 양면처럼 세상의 발전과 현상들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명확하고 많으니 (본질적 의미 희석,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무질서 증가)
내가 이 책을 긍정적으로 본 부분을 말해보겠다.
(이 책은 어떤 한 면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부분을 얘기한다고 해서 그것만이 내 관점의 전부는 아님을 밝힌다.)
1. 발전의 의미
우주발생 1일차를 생각하면 초고압축적일 것이다. 사건도 없다시피한 평온한 상태, (초초초저엔트로피)
이것의 본질적 의미와 역할은 뭘까?
그것이 무엇이든 우주적 시간으로 긴 영겁의 세월 거치면서 변환되면서 흩어지고 옅여지고 있다.
그럼 왜 우주는 가만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발전이라고 부르는 뭔가를 시작한걸까
우주를 생명체로 바라보면 오그라드는 면이 있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권태가 아닐까? (내 망상이다.)
조던 피터슨의 '질서 너머'란 책을 보면
질서과 무질서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방청소부터 하라'도 작은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혼돈(=무질서)으로 들어가야만 질서를 세울 수 있다고 했다. 그것에는 용기와 책임이 따른다고.
우주가 본질적 의미를 희생시면서 뭔가를 시작한 이유는
권태도 있지만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에서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해서 얘기한다.
쉽게 얘기하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인류는 숫자를 신봉했고,
숫자에 대한 탐구로 인해 과학이 발전했고 새로운 개념, 기술들이 탄생했다.
그로인해 숫자, 과학 발전은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였다.
생산성을 높은 가치로 여기던 산업혁명 시대에 여러 기술들로
새로운 질서들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인류에게 혜택을 준다고 여겼다.
혜택도 분명히 받았지만 그로인해 여러 문제들 또한 발생했다.
'요즘 애들'이란 책에 보면 베이비부머 세대의 생산주의 사상이 밀레니얼,MZ,세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나온다.
(요약= 번아웃)
발전은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문제가 발생하고 다시 또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현재의 모든 문제들도 새로운 질서를 향하는 과도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기대가 되기도 한다.
고통이 없이는 성취감도 없으며 슬픔이 있어야 기쁨과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고 느껴진다.
불행한 일을 겪어봐야 일상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
엔트로피 증가는 평온한 상태, 질서있는 상태에 대한 욕망을 일으킨다. 계속해서 발전을 요구한다.
그 증가율이 감당하지 못할때가 되면 분수령에 접어들고 자연적으로 감속기에 접어든다.
우주는 다 계획이 있다.
우주는 우주 발생 1일차 때보다 현재 역동적으로 살고 있다.
2. 유대감
개인적으로 여러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면서 가장 실행하기 어려웠던 것이 '감사하기'였다.
감사일기도 몇번 써봤지만 도무지 진심이 담기지 않고 억지로 써서 며칠 쓰다 말았다.
살면서 전혀 감사한적이 없지는 않으니 감사함을 느꼈을 때를 떠올려 보며
왜 감사함을 느꼈는지를 명상을 하면서 감사함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생각한 감사함은
'남이 나를 위해 어떤 수고스러움을 해줬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에 마음으로 빚을 갚는 느낌'이었다.
엔트로피를 보면서 한 사람이 현대 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지 알게 됐다.
앞서 애기했듯이 엔트로피 증가는 에너지를 변환비용이다. 에너지 변환과정에는 수 많은 상호작용들이 있고
여기에는 사람의 역할이 크다. 모두 현재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실들로 엉켜 있는 것이다.
물론 온전히 나를 위해 제품을 만들지 않지만 나를 '소비자'라고 생각하고 인류 발전의 혜택을 입은 '사람'으로 관점을 넓히고
(비록 에어컨을 쐬기 위해 더 큰 엔트로피가 발생했지만, 혜택은 혜택이다.)
너 넓혀서 높아지는 엔트로피 증가율이 요구하는 발전에 부응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다시 보답해야할 '인류'의 한 사람으로 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내가 새로운 개념, 과학적 기술을 만들 깜냥은 안된다.
조던 피터슨 말대로
방청소부터 작은 질서를 만들고 점차 역량을 키워 책임의 크기를 키우고
개인의 책임을 다하면 적어도
내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무질서의 양은 막을 수 있다.
내가 긍정적으로 본 부분을 요약하면
엔트로피 증가는 강력하게 인류 발전과 협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계속 해서 더 큰 퀘스트를 던져주는 것이다.
Q. 엔트로피 법칙의 미래는?
앞서 얘기한 것중에
우주 발생 1일차 본질적 상태 초저엔트로피 상태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의 본절직 의미는 뭐였을까? 어떤 의미가 흩어지고 있는걸까?
지금부터는 내 망상이다.
우주를 인간화시켜서 생각해보자.
저엔트로피는 죽음에 가깝다. 평온하지만 사건도 없다.
1일차때 사건이 발생한다. 이것은 '생명'이다. '존재'라고 부를 수도 있고,
나는 우주가 지루함을 벗어난 대신 또 다른 죽음을 향해
생명과 존재의 의미가 점점 희석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문호 과학자가 말했다.
(누가 말했던 상관없지만 이 분이 말했을 때 인상깊었기 때문에 언급)
점차 현실과 가상이 구분의 경계가 없어질 것이라고,
가상은 새로운 공간이 열리는 것을 뜻한다.
앞서 얘기한 향수 예시를 생각해보면
고엔트로피의 압축이 새로운 문이 열리면서
저엔트로피가 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행성의 테라포밍, 우주 함선 생태계
또한 고엔트로피의 압박과 자연적 분수령 시점의
저엔트로피를 향한 몸부림이다.
행성과 함선은 물리적으로는 이탈하지 않으나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한 세상에서
공간의 확장과 인간 육체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질서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의미를 더욱 희박하게 만든다.
수십년 후 데이터 속에서 태어나는 인간에게 생명의 의미는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란 책에서 '데이터교'에 얘기한다.
알고리즘이나 ai를 숭배하게 되리라는 현상을 뜻하는데
현재에도 그런 조짐은 보인다.
본질적 의미가 희석되는 세계에서 다시 믿을 건 숫자와 과학인 것이다.
호모데우스는 인간이 신처럼 된다는 뜻인데
신(=우주)의 본질적 의미인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갈아 넣어 만든 기술로 탄생한 슈퍼 휴먼이 어떻게 신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신(=우주)의 목적
결국 신은 스스로 생명과 존재의 의미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잃어버림으로써 생명과 존재의 귀중함을 느낄 것이다.
기적이 발생했다고 치고 인류가 만약 동시에 우주의 본질적 의미를 추구한다면 모든 엔트로피 증가홛동을 멈출 것이다.
생명과 존재 외에 것들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시 얘기하지만 평온함이면서 죽음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하는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를 따라잡는 것
발전이라 부르는 모든 활동, 그것을 지적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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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입갤한 거임? - dc App
잠깐 들렀어요. 눈팅은 가끔 했습니다.
엔트로피 이 책 너무 유사과학 같아서 읽다 말았는데
엔트로피를 과학영역에서만 다뤄야지 그걸 일반사회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으로 발전시키는 건 진짜 사이비임.
개똥철학 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