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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미들섹스>를 읽고 들었던 생각이 이번에도 먼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다시 또 삼대에 이르는 가문의 흥망성쇠를 잔혹한 정치사와 얽어 미국인 이민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런 글이구나, 하고.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미국 현대 소설 중 걸작이라는 것이 상당수 이런 형식인 것 같을 때 좀 염증이 인다. 아니면 내가 슬슬 미국 소설을 너무 붙잡고 살았다는 걸 인정하고 다른 책들을 더 보거나 독서를 줄여야 할 때일 수도 있을 테고. 좀 더 생각해보자면 이 공식이 일종의 제3세계 문학의 유일한 성공 루트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적당히 '우리'에게 낯선 도미니카니 나이지리아니 하는 곳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어떻게 여러 세대에 대한 이야기에서 사실과 환상을 섞어서 드러나는지를 적당히 설화처럼 화자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그런 글.



<오스카>에서 그 배경은 도미니카 공화국과 저주 '푸쿠'로, 제목에도 당당히 서 있는 오스카 와오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그의 삶과 그의 누나, 어머니, 조부의 삶을 되짚어가며 도미니카 공화국을 꽉 잡고 있던 독재 치하의 괴상한 현실과, 오스카 와오라는 찌질한 도미니카계 미국인이 이 독재정과 별개로 얼마나 우습고 추잡한 삶을 살았는지를 병치시켜 그 이국적인 저주와 독재를 미국이라는 용광로에서 탈신비화시킨다. 여기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알려질 만큼 끔찍한 정보와 SF, 판타지, RPG 등의 서브컬쳐에 대한 정보는 오스카 와오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사실상 동등하게 다뤄지며, 그 비극의 역사를 딛고 일어난 마지막 세대일 오스카 와오는 정작 그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이유로 이 미국 서브컬쳐의 세계 속에 매몰된다.



반면 그런 오스카를 궁극적으로 파멸에 이끄는 것은 결국 도미니카1스러움인데, <오스카>에서 몇 번이고 강조하듯 도미니카 공화국의 문화의 중심, 경제의 중심은 결국 섹스다. 남녀는 서로를 자빠뜨릴 기회만을 찾고, 핌프대디들은 팔아치울 여자를 찾아다니고, 독재자 트루히요조차 늘 새로 들일 애첩을 탐색한다. 오스카 와오는 비대한 체중으로 인한 외모로 인해 한 번도 여자와 교제해본 적이 없되, 늘 여자를 애타게 갈망하는 도미니카 사람 중 한 명으로, 그 우스꽝스러운 삶 속에서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여자에게 작업을 걸고 실패한다. 사실 이런 주인공을 진정으로 좋아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아마 내가 그 '도미니카1스러움'을 좋아하지 않고, 서브컬쳐를 좋아하지만 오스카가 좋아하는 종류의 서브컬쳐를 좋아하진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오스카>를 좋아하지 않았느냐 하면은 또 그건 아닌 게 참 묘하다. <오스카> 전체에 짙게 배어들어 있는 정사의 뻑쩍지근한 냄새에서 나는 조금 다른 걸 느꼈다. 연애는 결국 자기 안에서 바라는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투영용 스크린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들이 투영하는 그 욕망의 대상이 꼭 여자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신해철의 노래 <그대에게>에서 '그대'가 사실은 여자가 아닌 것과 비슷하다. 물론, <오스카>에서 나오는 수많은 여자들이 여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게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전혀 다른 것이 느껴졌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종류의 오스카 와오로서 나는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난 역사와 완전히 괴리되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전혀 통하지 않을 것을 사랑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스카 와오처럼 죽기 직전까지 동정으로 살아갈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