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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알려진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초판 출간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메리 셸리의 작품이다. 영국인인데 스위스 제네바가 주로 배경인 것은 작가의 여행체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설의 도입부와 마무리 배경이 배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항해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의 영향일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뛰어넘긴 어려운 법인데, 평범한 일상의 경험에서 환영받지 못한 괴물을 창조해 낸 것은 문학사에 SF 소설의 시작을 알린 비범한 점이다.


서두에 '잘 알려진'으로 묘사한 이유는 고전의 특성상 이 책을 읽는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제목이 프랑켄슈타인이니 괴물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괴물은 이름이 명명되지 못했다. 그저 피조물(the Creature) 일 따름이다. 책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창조자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따라서 철저하게 괴물은 그것, 괴물로만 남게 되었다. 파롤 없는 랑그인 셈이다. 하지만 나도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괴물=프랑켄슈타인'으로 생각되기 마련이다. 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대중매체에서 유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대부분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 되었고, 창조주의 이름은 잊혔다. 아니, 이름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프랑켄슈타인은 작가 자신인지도 모른다. 10대의 나이에 유부남이었던 퍼시 비시 셸리와 제네바로 여행을 떠났고, 주변의 커다란 비난을 받았다. 소설 서사 역시 꿈도 희망도 없다. 주인공은 외적인 추함에 의해 배척당하여 원망 가득한 피조물의 손에 사랑하는 이들 모두를 잃고 비참하게 죽는다.

이 소설은 당대에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평가는 박했다. 하지만 현대에 SF 소설의 사조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았으며, 여성 및 성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재평가 받는 분위기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도 사랑받지 못한 자들은 넘쳐난다. 무명(無名)의 괴물은 스스로 글을 깨칠 만큼 지적이었고, 초인적인 힘에도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추하게 생겼다는 이유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배척받았다. 그의 고통은 당신이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않았다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아래는 밀턴의 <실낙원>을 인용한 소설의 서문이다.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은 괴물의 절규와 다를 바 없는 적절한 경구이다.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들으며 가사를 음미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스팅의 Englishman in New York을 들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