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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모스코로 날아가는 러시아 여객기 화장실 속의 그 찐한 찌린내」
부다페스트에서 모스코로 날아가는
러시아 비행기 안에서 러시아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엘 들어갔더니
아 그 우리네 옛날만 같은
또 우리네의 시골만 같은
찐한 찌린내가 온몸에 풍겨들어서
'야! 이건 도스토예프스키의 찌린내구나!
그의 죄와 벌 속의
쏘냐의 찌린내구나!
마음에도 없는 괴로운 매음을 당하고
뒷간에 갔을 때의 바로 그 쏘냐의 찌린내구나!
레오 톨스토이의 부활 속의 카추샤 마슬로바의
시베리아 유형(流刑)중의 그 찌린내구나!
안타까운 뉘우침의 눈물 뒤의
그 쩌릿턴 찌린내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또
'이런 찌린내도 감추지 않고
다 냄새 맡게 해주어서 고맙구나
다 개방해 주어서 정말로 고맙구나'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다.
- 『늙은 떠돌이의 시』(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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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서으로 가는 달처럼…』의 모티프가 되는 70년대 후반의 세계 여행 이후, 서정주는 몇 편의 새로운 기행 시편을 발표하였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첫 세계 여행 때는 방문하지 못했던 러시아와 중국 등의 공산권 국가를 방문한 뒤 쓴 시들이라고 생각된다. 시인의 나이 70대 후반에 접어드는 90년대 초반에 씌어진 이 시들은 그의 열네 번째 시집 『늙은 떠돌이의 시』에 실려 있다. 이 시의 소재인 비행기 화장실 속의 '찌린내'는 서정주의 어법을 빌리면 '왜, 거, 있지 않아,' 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오게 하는 해학적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찌린내'를 맞닥뜨린 상황을 러시아의 개방과 연결 지은 마지막 대목의 솜씨가 이 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 시는 추에 대해 노래한 시이다. '찌린내'는 물론 추한 것이지만, '찌린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하는 것보다야 그것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태도가 낫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가 된다. 그것은 가령 자신의 과오를 덮어 놓고 잘못했다 말하지 않고 너스레 변명으로 오히려 자신의 '찌린내'를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던 서정주 자신의 삶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질마재 신화 때부터 맛탱이 간 서정주지만, 역시 그 실력 어디 안 가긴 하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