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배수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책을 읽으면서 잡념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잡념이라는 게 꼭 텍스트가 담은 내용과 분명한 연관이 있지도 않다.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이미지랑 정서, 분위기 같은 게 찰흙처럼 뭉쳐져서 완전히 다른 모습의 생각이 되었고 나중 가서야 느지막이 인지되었다고나 할까. 또 배수아의 소설은 잠시라도 집중을 안 하면 완전히 미아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근데 그 느낌이 좋아서 나는 <훌>도 읽고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도 읽고 <뱀과 물>도 읽지 않았나 싶다.
<훌>은 내가 거의 한 달에 가깝게 점유를 했기 때문에 죄책감에 반납을 해버렸다. <뱀과 물>은, 내가 처음으로 읽은 배수아 소설이었는데, 당시에는 솔직히 이거 뭐야, 이상해, 작가가 그냥 아무 말이나 써도 그걸 읽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나보다, 하고 냅다 반납해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뱀과 물>은 배수아의 가장 최근 단편집이었다. 상당히 실험적인 영역에 들어와 있어서 입문하기엔 적절하지 못한 책이었던 거 같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는 독후감을 쓰는 이 시점에 유일하게 손에 들고 있는 배수아 책이다. 그래서 <푸사국> 위주로 이야기 하게 될 것 같다는 말... 아, 그리고 나는 돈을 아껴서 위 세 권을 모두 구입할 생각이다.
<뱀과 물>은 표지가 아주 인상적이다. 언젠가 편집자 k님의 유튜브에서 봤는데, 배수아 작가가 직접 고른 이미지라고 한다. 이미지라. 나는 배수아의 소설을 읽으면서 글이 만드는 이미지가 서사나 관념만큼이나,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둘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다음은 <푸사국> 서문에 실린 말이다.
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글은 더욱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 가득한 거리에서 걷고 있으면 떠오르는 것들. 엑스터시와 이미지.
<푸사국>은 배수아 작가가 데뷔 초에 엮은 단편집이고, 그래서 위의 생각은 뭐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을 수도 있다. 엑스터시, 그러니까 황홀경. 정작 <푸사국>을 읽을 때 내가 황홀경이나 그에 준하는 감정을 겪었거나 그런 인물들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배수아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 엑스터시를 내가 온전히 못 받아들였을 수도 있고. 오히려 그런 황홀경은 근작 <뱀과 물>을 읽으면서 구현됐던 것 같다. <뱀과 물>에서는 해체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어딘가 익숙한 타입의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악몽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내가 느낀 황홀경은 그냥 악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에 배수아는 자기가 한 말을 근 30년간 잘 지켜온 것이다.
시간 순서대로 한번 살펴보자. 90년대 <푸사국>, 00년대 <훌>, 그리고 10년대의 <뱀과 물>.
1. <푸사국>은 90년대를 사는 20대의 정취가 한껏 묻어난다. 내가 그때 살아본 적은 없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마음만은 스무 살이라는 엄마 말을 참고해 볼 때 나랑 가장 가까운 책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젊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푸사국>에서 배수아는 건조하고 울적한 이미지로 그걸 형상화한다. 걷고, 여행하고, 술과 담배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사촌을 위시한 가족 관계와 여성으로서의 자각, 그리고 불확실함과 안정 사이에서 다투는 매일매일에 대한 진술. <여섯번째 여자 아이의 슬픔>은 그걸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또 보다보면 결혼에 대한 배수아 작가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커리어와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 결혼 하셨나? 그건 모르겠다) 이런 고민들은 후기작으로 갈 수록 옅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수록작 <1988년의 어두운 방>은 배수아의 데뷔작이다. 워드 연습을 하다가 완성하게 된 첫 습작. 그러나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인 등장이었다고. 지금 봐도 그렇다. 신경숙과 은희경과 하루키와 윤대녕을 적절하게 배합해 놓은 카르파쵸... 그런 느낌이 든다. 책을 읽을 때 속발음을 안하는 편인데 자연스레 서울 사투리로 대화문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작가로서 경력이 영글지 않았을 때임에도 배수아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 탁월함을 뽐낸다. 그리고 특히나 마지막 문장을 뽑는데에 훌륭한 감각을 갖추고 있지 않나 싶다. 두 개의 끝맺음을 소개한다. 절대 스포일러가 아니다. 이것만 보고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한번은 정말로 남자아이가 일하는 구두 공장으로 찾아가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다. 불쌍한 짐승의 가죽을 벗겨내어 부드럽게 만들고 염색을 하여 구두를 만들고 있는 곳 말이다. 어두운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무 밑창을 단 신발을 신고 밥을 먹고 있는 불빛이 희미한 구두 공장의 구내식당에 남자아이와 함께 앉아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에 대해서 말한다. - 검은 늑대의 무리
포니테일의 여자아이가 얼굴을 돌리고 나를 보았다. 그리고 중국영화의 마지막. -인디언 레드의 지붕
이런 식이다. 이야기 종반부까지 이끌어 온 건조한 차가움을 끝맺는 솜씨가 가장 맘에 들었다. 요즘 2030을 다룬 사소설들에 지쳤다면 <푸사국>을 한번 봐 보면 좋겠다. 퍽 만족스러울 것이다.
푸사 사랑해
좋아용 오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