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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y Tomes, 이춘입 옮김, 『세균의 복음: 1870~1930년 미국 공중보건의 역사』 (푸른역사, 2019)
1. '세균의 복음'이라는 독특한 제목에 이끌려 읽어봤습니다. 원제는 The Gospel of Germs이고 1998년 나온 책인데 한국어 번역본은 2019년에야 나왔네요.
2. 우리는 현미경 같은 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직접 세균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은 세균이 존재하고 그 세균들이 다양한 감염성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 손 씻기 같은 개인 위생에 신경 써야 한다는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류가 이런 '진리'를 당연하다고 여겨왔던걸까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와 상식은 "최근에 습득한 것이지, 결코 시공간적으로 초월적이지는 않"(p.36)은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19세기 등장한 이 '세균설'을, 우리가 눈으로 세균을 직접 볼 순 없지만 믿는다는 의미에서 종교에 비유합니다. 특히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19세기 중후반부터 20세기 초반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랬을겁니다. 물론 이러한 비유가 오로지 저자의 독창적인 작품은 아닙니다. 이미 1909년에 결핵 퇴치 운동의 팜플렛을 교리문답서, 보건 규칙(위생 수칙)을 계명 등 종교적 용어에 빗대어 표현한 사례들이 있었거든요.
3. 물론, '세균설'이 등장하자마자 지금과 같은 '의심할 여지 없는 정론'의 위치에 올랐던 건 아닙니다. '세균설'은 여러 방면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구세대 공중보건 개혁가들 역시 이 세균설을 불편해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세균에 노출되고 병에 걸리는 건 확률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도덕적이고 정직한 삶을 산다고 반드시"(p.95) 질병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4. 저자는 주로 공중보건과 예방의학적 관점에서 미국 현대사를 재조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어, 그 전까지의 (미국 가정의) 화장실은 빅토리아 시대의 기풍을 좇아 카펫으로 둘러 싸여 있고, 수세식 변기나 욕조, 세면대는 목조 장식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해요.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가는 모습인데, 세균설이 이러한 화장실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또, 저자는 남성들이 면도를 시작한 것 그리고 여성들의 치마가 짧아지기 시작한 것도 '세균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긴 치마는 "거리나 다른 곳에서 사악한 것을 묻혀 모르는 사이에 집으로 옮겨 와 가족 모두에게 퍼"(p.243)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점점 치마가 짧아졌다는 주장이죠. 일반적인, 그리고 대중화된 견해와는 전혀 다른 특색 있는 해석이어서 신선했어요. 물론 여전히 긴 치마를 입으며 건강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사람들이 있지만 당시 짧은 치마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비 위생적인 것은 아름다울 수 없다"(p.244)고 주장했죠.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위생론은 의심할 여지 없이 1900년대 초 치맛단이 꾸준히 짧아지는 데 기여했다"(p.24)고 평가합니다.
5. 질병, 특히 세균으로 인한 감염성 질환은 상당 부분 확률적 문제이기 때문에 특정 인종이나, 성별을 피해가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그 병'의 피해자가 될 수 있죠. 그래서 저자는 이런 감염성 질환을 막기 위한 운동은 "공통의 언어"(p.306)였고, "계급과 인종을 교차하는 다양한 협력의 장"(p.306)이었다고 말합니다.
결핵 퇴치 운동이 대표적이죠. 또, 저자는 결핵 퇴치 운동가들이 당시 새롭게 주목받던 광고와 상표를 적극 활용했다고 말합니다. 크리스마스 씰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더 나아가 결핵과 광고, 결핵과 상표라니 참 흥미로운 조합이죠.
6. 인류는 현미경으로 세균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었고, "마법의 탄환" 항생제를 발견한 이후로는 세균을 정복했다고 믿고, 환호했습니다. 1969년 미국 보건부 장관은 "감염병에 대한 책을 덮을 시간"(p.307)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죠.
그러나 저자는 이후 에이즈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균의 복음은 에이즈 시대에 다시 태어났다"(p.371)고 말합니다. 감염성 질환은 누구나 가리지 않지만 만약 "어떤 질병이 사회의 일부에게만 영향을 미친다면 […] 훨씬 더 극심한 적개심과 갈등을 야기한다"면서 "그것을 예방하려는 노력도 치명적인 편견에 말려들었다"(p.375)고 분석합니다.
7. 또, 저자는 세균설이 퍼지게 되면서 공중 위생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의 위생 즉, 가정 위생도 중요해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정 위생을 유지하는 막중한 임무는 대개 여성들에게 부여되었는데 이 새로운 임무는 아주 무겁고 가혹스럽기까지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일 자체가 고된 것도 있었지만 만약 집에서 누군가가 병에 걸리고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그건 가정 위생이 잘못된 탓이고 따라서 많은 여성들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저자는 "실험실에서 행한 파스퇴르의 업적은 중요하게 여기면서 공중보건 간호사와 주부의 통찰은 하찮게 치부하는 젠더적 지식 구분에 도전"(p.54)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시 (미국) 가정에 이런 균의 복음'을 전파했던 여성 지식인 자매들에 대한 시선도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가정학운동은 주창자들의 개인적·계급적 이드겡 더 많은 도움"(p.217)이 되었다면서요.
7. 원서 발간 20년 후 나온 한국어판을 위해 저자가 추가해준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에이즈느 "단지 시작일 뿐"(p.6)이라는 자신의 20년 전 경고는 SARS, 신종플루, MERS, 에볼라 등으로 "사실임이 밝혀졌다"(p.6)고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와닿았던 건 스페인 독감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 ‘새로운 공중보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고 있었던 바로 그때, 1918년에서 1919년의 전 세계적인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과거의 유물이라는 환상을 버리게 만드는 듯했다. 2,1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전 세계적인 유행병 시기 동안 […] 질병이 퍼질 수 있는 대규모 공공 집회는 취소되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때면 사람들은 얼굴에 마스크를 썼다. 생존자를 제외하고는 독감의 대유행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 상실이 고착되었던 전쟁 이후에, 이런 경험은 전염에 대한 불안과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강화시켰다. (pp.357-358)
한국어판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시대로 접어들었죠. 정말 이 부분은 뼈저리게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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