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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파르나소스산과 나의 대응
- 달과, 라트무스 산자락에 잠들어 있는 양치기 청년 엔디미온의 사랑에 대해서」
라트무스 산자락의 양치기 청년 엔디미온을
달의 여신 씨레네가 사랑해
그가 밤에 잠들어 있으면
그 머리맡에 다가와서
그 눈뚜껑과 입술에 입을 맞추고
또 맞추고, 맞추고,
그러다간 그 자는 얼굴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드디어
그녀의 아버지인 신장(神長) 제우스에게 졸라
그 엔디미온을 항시 잠들어 있는 신으로 만들고,
그녀는 밤마다 그 자는 얼굴에 입을 맞추러
하늘에 떠온다는 그리스의 그 이야기가
그리스가 만든 이야기 중에서는
평화해서 제일 좋아 보인다고,
잔인한 창칼에 찔려 흐르는
불쌍한 피가 안 보여서 좋다고,
내가 그리스의 시의 산 파르나소스 보고 말했더니
그 산의 주신(主神) 푀부스 아폴로는
나를 그만 깡그리 무시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얼떨떨 잘 들리지 않아 그러는지
그의 구식 기타 뤼라만을 둥둥거리고 있었고,
그의 졸개 아홉 명의 시신(詩神) 중에는
내게 반가운 얼굴을 보이는 자도 있긴 있었으나
그들의 그 너무나도 고혹적인 살의 아름다움 때문에
거기 묻혀 그 소리는
내게는 또 잘 들리지 않았네.
- 『산시』(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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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시적 변화는 흔히 '피'를 정화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된다. 20대의 선언적 작품에서 '이마 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멫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 있'다고 말하던 그는(「자화상」) 나이를 먹어 가면서 오히려 그 '피'로부터 멀어지는 일에 골몰하기 시작한다. 시인의 나이 50대를 전후하여 이 작업은 자화자찬으로 완수될 것처럼 이야기되기 시작한다. 그는 신화적 인물의 입을 빌려 '피가 잉잉거리던 병'으로부터 완치되기를 노래한 데 이어(「사소 두번째의 편지 단편」), 이미 이별에는 '박사가 된' 피를 향해 '홍역 같은 이 붉은 빛깔과/ 물의 연합에서도 헤어지자'(「무제」)며 마지막 일격 같은 발언을 날린다. 근 삼십 년에 걸친 그의 피를 정화하는 작업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족적 해탈에 불과한 도로아미타불이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인이 '피'와의 이별을 선언한 이후에도 삼십 년을 더 살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의 후기 시가 50대 이후의 자족적 해탈 속에서도 더러 그것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깨지는 않았다는 것을 몇 편의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 파르나소스산과 나의 대응」은 옅게나마 그 점을 보여준다. 시인이 희랍 신화에서 가장 좋다고 여긴 엔디미온의 설화에서 물론 피의 냄새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멀쩡한 청년에게 마법스런 방부제를 뿌린다는 요약된 내용에서 뒤틀린 탐미주의의 혐의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으로 시상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뤼라'와 '시신(詩神)'이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아폴론과 그의 수하들 또한 예술가들로 지칭된다. 그러나 땅과의 너무 먼 거리 때문인지 화자에게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인지 그들은 화자의 생각에 쉽사리 공명하지 않는다. 시인이 '피'에 대한 무작정의 거부가 또 다른 한계를 가질 수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리라고 생각된다.
잔혹한 동화같네. 서정주도 만들어진 잔혹한 평화지만 마음이 놓았던거 같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 비판하지 않았을까 라는 걱정이 보이는 시노.. - dc App